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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9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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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야끼니쿠 드래곤' 정의신 "고향집이 세계유산인 작가 나뿐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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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일한국인의 삶 그린 '야끼니꾸 드래곤'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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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야끼니꾸 드래곤' 공연 사진. 예술의전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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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신 연출이 6일 예술의전당에서 인터뷰 하고 있다. 예술의전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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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이낸셜뉴스] ‘자이니치(zainichi, 在日)’라는 단어는 본래 ‘일본에 거주하는 외국인’을 뜻한다. 그 단어에는 평생 ‘타자’로 호명된 재일한국인의 숙명이 깃들어 있다. 소설 ‘파친코’의 재미교포 1.5세대 작가 이민진은 재일한국인을 자신의 소설을 통해 “단지 피해자가 아니라, 스스로의 삶을 만들기 위해 싸워온 사람들”로 재조명했다.

    재일한국인 2.5세 연출가 정의신 역시 재일의 역사와 정체성을 무대 언어로 옮겨왔다. 재일한국인인 故최양일 감독의 영화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 ‘피와 뼈’의 대본을 쓰기도 한 정 연출은 일본의 대표적인 재일한국인 극작가 겸 연출가다. ‘야끼니꾸 드래곤'은 2008년 예술의전당 개관 20주년과 일본 신국립극장 개관 10주년을 기념해 초연한 그의 대표작이다. 재일교포의 삶과 정체성이 섬세하게 녹아있는 사실주의 연극의 정석이다.

    1970년대 곱창집 배경 재일한국인의 삶 그린 '야끼니꾸 드래곤'

    ‘야끼니꾸 드래곤’은 1970년대 일본 간사이 지방의 한 곱창집을 배경으로, 전쟁으로 한쪽 팔과 아내를 잃은 아버지 용길과 그의 가족이 가난과 차별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이야기를 그린다. 곱창집은 ‘용(龍)’을 따서 ‘야끼니꾸 드래곤’이라 불린다.

    정의신 연출은 지난 6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만나 “전쟁 후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살던 집성촌, 국유지를 사서 직접 집을 짓던 풍경은 실제 아버지의 이야기”라며 “극 중 마을이 무너지고 공원이 되는 설정도 실화”라고 말했다.

    세계문화유산인 히메지성이 있는 효고현 히메지시 빈민촌에서 나고 자란 그는 이날 “고향집이 세계유산인 작가는 나뿐”이라며 웃었다.

    작품의 무대가 곱창집인 이유는 ‘파친코’와 유사하다. 정 연출은 “‘파친코’가 재일 한국인의 생존, 정체성, 차별의 역사와 얽힌 상징적 공간이라면 1970년대 당시 곱창이나 야끼니꾸는 가난한 노동자, 재일한국인을 상징하는 음식이었다”고 말했다. 지금은 일본 사람들이 즐겨 먹지만, 그 시절엔 저렴한 내장을 파는 서민의 공간이었다는 것이다.

    이 작품은 지난 2008년 예술의전당과 일본 신국립극장이 공동 제작했으며, 2011년 재연에서도 전 회차 매진을 기록하며 양국에서 인기몰이했다. 이번 공연은 한일 수교 60주년을 기념하며, 14년 만에 다시 한국 관객을 만난다. 14년이면, 강산이 한번은 훌쩍 변한 시간이다.

    정 연출은 “일본에서 한국 문화나 케이팝에 대한 관심이 높지만, 재일한국인의 역사나 삶에는 여전히 무관심하다”고 말했다.

    올해 재일한국인 이상일 감독의 영화 ‘국보’가 1000만 명을 넘기며 일본 역대 흥행순위 2위에 올랐지만 정 연출은 “이감독이 젊은 세대에겐 희망의 상징이 됐다"면서도 "재일한국인에 대한 관점이 바뀌었다고 체감하진 않는다”고 답했다.

    특히 재일 교포의 수가 해마다 줄고 있어 이들이 밀집해있던 오사카도 예전 같지 않다고 한다. 그는 “숫자는 줄고 일본 국적 취득도 늘어나 접점은 더 줄어들고 있다”며 “도쿄 관동대지진 학살 위령비 논란처럼 역사를 희미하게 만드는 시도도 보인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세계는 전쟁 중..이주 및 난민 이슈와 공감대”

    최근 드라마 ‘파친코’나 영화 ‘미나리’와 같은 디아스포라 서사가 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전쟁과 분쟁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봤다. 이어 “이주와 타향의 이야기는 어느 순간 누구나의 현실이 될 수 있다는 불안이 있다”며 “최근 호주와 미국에서 ‘야끼니꾸 드래곤’ 리딩 공연을 올렸을 때, 관객들이 이러한 맥락에서 작품을 읽어냈다”고 전했다.

    정의신의 창작 동력은 늘 ‘마이너리티(소수자)’였다. 그는 “현대사회의 그림자를 떠받쳐온 사람들의 삶을, 사라지기 전에 기록하고 싶었다”며 “가난한 극작가 중에서도 나 같은 길을 걸은 사람은 드물다. 그래서 재일한국인의 삶을 비롯한 소수자의 이야기를 계속 써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부연했다.

    '야끼니꾸 드래곤'과 함께 그가 집필·연출한 '파마야 스미레', '예를 들어 들에 피는 꽃처럼'은 재일 한국인 3부작으로 불린다. 1950~70년대까지 일본 현대사의 뒷면이나 폐광이 공항 건설지로 바뀌는 과정에서 가난한 노동자와 재일한국인이 떠받친 역사를 무대에 담았다. 그에게 연극을 만든다는 것은 재일한국인의 존재를 증명하는 행위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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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년 만에 연극 '야끼니꾸 드래곤'을 국내에 선보이는 재일교포 2.5세 정의신 연출이 6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예술의전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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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웃음이 있어야 눈물이 깊어진다

    ‘아끼니꾸 드래곤’에는 용길 전처의 두 딸과 재혼한 아내 영순, 그리고 영순이 데리고 온 딸과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막내아들까지 여섯 식구가 북적북적한다.

    이번 공연에서는 막이 오르기 20분 전부터 배우와 악사들이 무대와 객석을 오가며 미리 관객을 맞이한다. 고기를 굽는 냄새, 흥겨운 연주가 어우러진 프리쇼(Pre-show)를 통해 관객은 곱창집 손님으로 초대된다. 무릇 웃음이 있어야 눈물이 깊어진다. 이 작품 역시 마찬가지. 그는 차별과 아픔의 이야기를 다루나 “‘엔터테인먼트’적 요소를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일 배우들이 함께 무대에 오르는 것도 특별하다. 정 연출은 “이건 단순한 한일 공동제작이 아니라, 일본인·한국인·재일한국인이 모두 필요한 작품”이라며 “언어와 국적의 벽을 넘어 즐기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 작품에서 막내 아들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관객이 각자의 해석을 스스로 찾아가길 바랐다. 그는 “막내아들은 가족의 바라보는 관찰자와 같다. 관객이 어떤 감정으로 토키오를 바라보는지, 어떤 의미로 가족을 읽어낼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공연은 11월 14~23일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에서 열린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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