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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9 (화)

    이슈 미술의 세계

    깨트려 쌓은 돌에 위태로운 삶이…"균열은 생명 불어넣는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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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탈리아서 활동하는 조각가 박은선…3년 만에 국내 개인전

    '무한 기둥'부터 신작 '생성·진화'까지 조각 22점·회화 19점

    연합뉴스

    박은선 개인전 전시 전경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는 박은선 개인전 '치유의 공간' 전시 전경. 2025.11.11. laecorp@yna.co.kr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꿈을 좇아 무작정 이탈리아로 떠난 조각가 박은선(60)의 20대는 너무나 가난했다. 당장 내일 먹을 빵이 없어 굶어야 할 상황이었다.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일자리를 찾아 나서야 했지만, 그는 그날도 작업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날 작품 1점이 팔리면서 3개월을 버틸 수 있는 돈이 생겼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나고, 다시 돈이 떨어지자 이번에는 작품 2점이 팔려 6개월을 버틸 수 있었고, 다시 6개월 뒤에는 3점이 팔려 9개월을 버틸 수 있는 돈이 생겼다.

    이렇게 어려운 시절을 견디며 이어온 조각 작업은 박은선의 정체성이 됐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많은 사람이 커다란 돌을 쌓아 올리는 내 작품을 보고 불안하고 위태로워 보인다고 하는데 내 삶이 낭떠러지에 서서 불안하고 위태로웠기 때문에 이런 작품이 나오는 것"이라며 "하지만 그 중심에는 단단한 심이 박혀 있어 절대 쓰러지지 않는 안전함이 숨겨져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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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은선 작가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조각가 박은선이 11일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는 개인전 '치유의 공간'에서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25.11.11. laecorp@yna.co.kr


    돌을 깨트리고 틈을 벌려 쌓는 것도 박은선 작품의 특징이다.

    작가는 "멀쩡한 돌을 깨트리고, 힘들게 벌려 틈을 만드는 작가는 나뿐일 것"이라며 "그 틈과 균열이 내겐 숨통이다. 꽉 막힌 것에 신선한 생명의 공기를 불어넣는 작업이다"라고 말했다.

    박은선의 개인전 '치유의 공간'(Spazio della Guarigione)이 12일부터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린다. 3년 만에 열리는 국내 개인전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의 대표 연작 '무한 기둥'(Colonna Infinita)부터 새로운 연작 '생성·진화'(Generation.Evoluzione), 구체를 배열해 사각형 형태를 구현한 '정육면체'(Cubo) 등 조각 22점과 회화 19점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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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은선 작 '생성·진화'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는 박은선 개인전 '치유의 공간'에 전시된 '생성·진화'. 2025.11.11. laecorp@yna.co.kr


    가장 먼저 관람객을 맞는 작품은 '생성·진화'다. 높이 3m 30㎝에 달하는 대형 조각으로 화강석으로 만든 3개의 조형물을 아슬아슬하게 쌓아 올린 작품이다. 맨 아래 조형물은 정육면체에 가까운데 살짝 구형이 드러나는 형태이고, 맨 위의 조형물은 구형에 가깝지만 사각의 흔적이 남아 있는 모습이다. 조형물마다 작가의 특징인 균열이 드러나 있다.

    작가는 "사각 속에서 생명을 상징하는 구가 태어나 진화하는 모습을 표현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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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은선 작 '무한 기둥 - 확산'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는 박은선 개인전 '치유의 공간'에 전시된 '무한 기둥 - 확산'. 2025.11.11. laecorp@yna.co.kr


    미술관 2층에 전시된 '무한 기둥 - 확산'은 돌을 구형으로 만들어 쌓아 올린 작품이다. 특이한 점은 돌 속을 파내 8㎜ 두께로 얇게 만든 다음 그 안에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을 설치해 돌이 가진 자연의 빛이 도드라지도록 했다.

    코로나19 대유행 시기에 제작한 작품으로 작가는 자연의 돌이 만들어내는 불빛으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 만들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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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은선 작 '정육면체'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는 박은선 개인전 '치유의 공간'에 전시된 '정육면체'. 2025.11.11. laecorp@yna.co.kr


    '정육면체'는 유색 대리석으로 292개의 구체를 만든 뒤 와이어에 하나씩 연결해 천장에 매달았다. 매달린 구체의 높낮이를 정확히 계산해 정육면체를 만들었다. 천장에 매달린 조각을 밀면 돌과 돌 사이가 부딪히며 '짜랑짜랑' 하는 소리가 난다.

    작가는 "내 작품에서 구는 여성을 사각형은 남성을 상징하는데, 한 작품에서 남녀가 함께인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다"며 "관람객들이 돌을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만지고 소리로도 들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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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은선 회화작품 '무제'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는 박은선 개인전 '치유의 공간'에 전시된 회화작품 '무제'. 2025.11.11. laecorp@yna.co.kr


    전시에서는 그의 회화 작품들도 만날 수 있다. 마(麻)로 짠 캔버스에 먹이 스며들게 해 그린 작품이다. 검은 먹으로 그린 화면에 균열을 만들어 그의 대표 연작 '무한 기둥'을 표현했다.

    작가는 "돌을 깨트리고 공간을 여는 조각적인 행위를 캔버스에서도 한 것이어서 나는 이 작품도 조각이라고 생각한다"며 "예전에는 전시장을 조각과 벽으로만 채웠는데 어느 순간 벽이 큰 공백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회화작업으로 공백을 채워보려는 시도"라고 설명했다.

    미술관 야외 정원에서는 그의 대표 연작 '무한 기둥'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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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은선 작가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조각가 박은선이 11일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는 개인전 '치유의 공간'에서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25.11.11. laecorp@yna.co.kr


    경희대 조소과와 이탈리아 카라라 국립예술아카데미를 졸업한 박은선은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탈리아 3대 갤러리인 콘티니 갤러리의 전속 작가이며, 피에트라산타 두오모 광장, 로마 콜로세움 고고학 공원, 피렌체 미켈란젤로 광장 등에서 개개인전을 열며 국제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지난 5월에는 미켈란젤로를 비롯해 헨리 무어, 호안 미로, 살바도르 달리 등 세계적인 작가가 작업해 '조각의 성지'로 불리는 이탈리아 피에트라산타에 자신의 이름을 건 미술관 '아틀리에-뮤지엄 박은선'을 열기도 했다.

    내년 10월에는 전남 신안군 자은도에 '인피니또 미술관'(Infinito Museum)이 문을 열 예정이다.

    전시는 내년 1월 25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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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틀리에-뮤지엄 박은선' 개관
    [연합뉴스 자료사진]


    laecor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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