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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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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장사 대우 스님이 한학자 총재에게 바친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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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일 서울 중구 필동. 한국종교협의회 회관 이전 개소식이 열린 자리에서 뜻밖의 광경이 있었다. 전북 정읍 내장사 회주 대우 스님이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의 한학자 총재를 위해 헌시를 발표한 것이다. 불교의 고승이 타 종단 지도자를 향해 존경과 사랑을 담은 시를 발표했다는 사실은 종교계에 적잖은 울림을 준다.

    대우 스님이 낭독한 창작시는 ‘사랑의 어머니 한학자’였다. 제목부터가 단정하고 따뜻하다. 시는 ‘사랑의 어머니, 평화의 어머니/어머님이 이 땅에 오심은 인류의 희망이요 우리의 축복입니다’라는 서두로 시작한다. 이 한 구절만으로도 시인이자 수행자인 스님이 한학자 총재의 삶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다.

    내장사는 단풍 명소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보다 오래된 역사와 깊은 신앙의 터전으로 유명하다. 그런 대우 스님이 통일교 지도자를 향해 헌시를 썼다는 것은 종교 간의 경계를 넘어선 ‘존경의 표현’이자 ‘화합의 메시지’로 읽힌다.

    대우 스님의 시는 한 총재가 구금 중인 삶의 현실을 시종 ‘눈물의 헌신’으로 그려낸다. 스님은 이렇게 노래한다. ‘평화 없는 세상에 평화 주시려고 오신 평화의 어머니/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아픔/누구에게도 보일 수 없는 눈물에/잠 못 드는 밤이 얼마이셨던가요.’ 이 구절에서 스님은 한 총재의 헌신과 작금의 고통을 신앙의 눈물로 해석한다. 그 눈물은 단지 한 여인의 눈물이 아니라, 시대와 인류를 품은 구원의 상징으로 승화된다.

    이런 표현은 불교에서 자주 쓰이는 ‘대자대비(大慈大悲)’의 정서와 맞닿아 있다. 사랑과 자비, 평화와 구원이 종교적 언어를 달리하지만 결국 한 진리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스님은 시로써 전하고 있는 것이다. 시의 중반부는 ‘어머니의 눈물’에 대한 찬가로 이어진다.

    ‘어머니의 눈물은 봄 동산의 꽃비이시며/어머니의 눈물은 대지의 젖줄이시며/어머니의 눈물은 영혼의 미소이십니다’ 이 부분에서 스님은 눈물을 생명력의 원천으로 노래한다. 그 눈물은 인간의 고통을 씻어내는 자비의 빗줄기이자, 평화를 꽃피우는 봄비와도 같다. 이렇듯 시 전편은 눈물·사랑·평화라는 상징어로 엮여 있으며, 수행자의 언어와 신앙인의 마음이 조화롭게 녹아 있다.

    흥미로운 점은 대우 스님과 한 총재가 직접적인 인연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스님이 통일교 인사가 수장으로 있는 한국종교협의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점 외에는 개인적 교류도 알려진 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님은 이날 개소식에서 시를 낭독하며, 한 총재를 ‘사랑과 평화의 어머니’로 공경의 뜻을 표했다. 이는 종단을 초월해 ‘종교 간 존중’의 실천이자, 한국 종교계의 성숙한 연대 의식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종교 간의 갈등과 오해가 여전히 남아 있는 우리 사회에서 한 불교 승려가 타 종단의 지도자를 향해 진심 어린 시를 바쳤다는 사실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것은 한 편의 시 낭독으로 그치지 않고 서로 다른 길을 걷는 신앙인들이 ‘사랑’과 ‘평화’라는 공통의 가치로 만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대우 스님은 시의 말미에서 이렇게 마무리한다. ‘어머니 당신이 우리의 사랑입니다/어머니 당신이 우리의 평화입니다/어머니 당신이 우리의 희망입니다.’

    세계일보

    정성수 종교전문기자


    마치 모든 종교의 근본이자 인간 존재의 뿌리인 ‘사랑’과 ‘자비’를 되새기는 기도문처럼 들린다. 아무리 불교가 가슴이 넓은 종교라고 하지만, 이 정도면 인간 영혼의 근원에 닿는 깊이를 보여준다. 스님의 이 헌시는 신앙의 울타리를 허물고 인간과 인간이 서로에게 전해야 할 감사와 존경의 의미를 일깨운다. 그것은 곧 우리가 지향해야 할 평화의 언어이기도 하다.

    ‘밝은 곳보다는 어두운 곳에/보이는 곳보다 보이지 않는 곳에/손이 되고 등불이 되어 주신 어머니…눈물나도록 고맙고 감사합니다/말문 막히게 미안하고 부끄럽습니다’ 이 마지막 구절은 대우 스님이 한 총재를 통해 본 인류애의 표상인 동시에 오늘을 사는 모든 종교인과 시민에게 던지는 물음이기도 하다. ‘사랑과 평화는 어디서 오는가?’ 그 답을 찾아 나선 스님의 시심(詩心)이 11월의 단풍처럼 오래도록 마음에 머문다.

    정성수 종교전문기자 hulk1983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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