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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9 (화)

    이슈 미술의 세계

    총상·정체성·불안한 시대…“그림은 치유였다” 래리 피트먼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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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야·디킨슨 오마주, 폭력의 시대 조명
    ‘야상곡’ 연작에선 치유의 우주 담아
    한남동 리만머핀 서울서 내달 27일까지


    매일경제

    래리 피트먼의 ‘야상곡 #1’ <리만 머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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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5년 강도에게 총상을 입고 네 차례 수술대에 올랐던 화가는 40년이 지난 지금도 폭력의 시대를 바라본다. 콜롬비아에서 자라고 미국으로 이주한 이민자 출신이라는 정체성과 불안정한 정치 현실, 그리고 몸에 새겨진 상처까지. 래리 피트먼(73)의 삶을 구성하는 요소는 10년 전 완성한 연작 ‘카프리초스’와 ‘야상곡’에 응축돼 있다.

    서울 용산구에 있는 리만 머핀 서울은 두 연작을 묶은 전시 ‘카프리초스와 야상곡’을 12월 27일까지 선보인다. 전시는 고통, 정체성, 정치적 현실을 관통하는 피트먼의 그림이 오늘의 시대와 어떻게 호응하는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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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래리 피트먼의 ‘카프리초스 #2’ <리만 머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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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의 첫 장을 여는 ‘카프리초스’는 스페인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의 판화 연작 ‘로스 카프리초스’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업이다. 고야가 인간의 위선, 사회적 부패, 폭력을 고발했다면, 피트먼은 그 비판을 오늘날로 끌어온다. 화면에는 폭발, 단절된 신체, 도미노 패, 가면 같은 얼굴 등이 등장하며 뒤틀린 시대의 감정을 시각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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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래리 피트먼의 ‘카프리초스 #8’ <리만 머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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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에 에밀리 디킨슨의 시구가 테두리를 따라 흐른다. ‘그들은 눈송이처럼 떨어졌네’와 같이 남북전쟁의 죽음을 다룬 구절은 폭력이 반복되는 오늘날에도 울림을 준다. 작가는 최근 미국 정치 상황을 언급하며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파시스트 대통령이 등장했다”고 비판했다. 또 전 세계 곳곳에서 강화되는 극단주의와 배타적 현실이 이 연작을 다시 소환해야 할 이유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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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래리 피트먼의 ‘야상곡 #6’ <리만 머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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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프리초스’가 외부 세계의 폭력성을 이야기한다면 ‘야상곡’은 그와 정반대의 정서를 드러낸다. 피트먼은 “밤은 하루의 피로를 내려놓고 자신에게 돌아가는 시간”이라고 말했다. 작가는 이 연작을 우주의 형태로 풀어낸다. 별빛, 알, 새를 닮은 생명체가 어두운 화면에 떠오르며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든다. 기존 작업이 화면을 빼곡히 채우는 방식이었다면, 이 연작에서는 여백을 남긴 구성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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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래리 피트먼의 ‘야상곡 #5’ <리만 머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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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트먼의 작업을 구성하는 핵심 축 중 하나는 정체성이다. 그는 콜롬비아인 어머니와 독일계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11살까지 콜롬비아에서 자랐다. 게이이기도 하다. 라틴 아메리카의 가톨릭 문화권 정서와 미국식 자유주의, 성소수자 정체성이 뒤섞인 배경을 지녔다. 이같은 정체성은 그의 작품 속 메시지에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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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일 래리 피트먼이 서울 한남동 리만 머핀 서울에서 ‘카프리초스 #8’을 설명하는 모습. <정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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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다른 축은 피트먼이 겪은 신체적 고통이다. 그는 1985년 강도로부터 복부에 총상을 입고 2018년까지 수차례 재건수술을 받았다. 이번 전시에 등장한 작품들은 수술을 하고 회복하던 시기에 그린 것이다. 최근 열린 기자 간담회에 참석한 피트먼은 “괴로워하기보다 살아남아 다행이라 생각했고, 그림은 내게 치유였다”고 설명했다.

    전시를 위해 방한한 피트먼은 한국 근현대 미술을 둘러본 소감을 전했다. 그는 “김환기 작품은 수십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놀라울 정도로 신선하다”고 밝혔다. 과거의 회화가 오늘날에도 새롭게 읽히는 방식은 이번 전시의 성격과도 자연스럽게 맞닿는다. 그는 “2015년에 그린 연작이지만, 오히려 지금의 세계가 이 작업을 더 필요로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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