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철의 연필은 턴테이블 바늘…낮은 음역에 디테일한 음악"
리안갤러리 서울서 신경철 개인전 '라이트 비트윈 에어'
신경철 작 'T-HERE-WSP202402' |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작가 신경철(47)은 시력이 나빠지자 12년 전 렌즈 삽입술을 했다. 이후 빛에 매우 예민함을 느꼈고, 실내에서도 선글라스를 써야 하는 상황이 됐다. 작가는 예민해진 시각으로 포착한 세계를 그림으로 풀어내기 시작했다.
빛과 공기의 떨림까지 표현하는 신경철의 개인전 '라이트 비트윈 에어'(Light between air)가 서울 창성동 리안갤러리 서울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내 눈에 보이는 세상은 겹쳐 보이기도, 분산돼 보이기도, 흐릿하고 파편화돼 보이기도 하다"며 "내가 보는 그대로의 풍경과 빛을 사람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신경철 작 'T-HERE-SBP250652'(위)와 'T-HERE-SBP250602' |
작가는 보통 한 작품에 바탕색과 그 위에 올리는 주된 이미지 색, 두 가지만 쓰는 것이 특징이다.
먼저 캔버스에 여러 차례 석회칠을 하고 말린 뒤 흰색, 금색, 은색, 베이지색 등 바탕색을 선택해 밑 작업을 한다.
이어 직접 촬영하거나 인터넷에서 찾은 풍경을 활용해 컴퓨터그래픽으로 이미지를 만들고, 이를 참고해 물감을 칠한다. 기존의 물감을 조합해 파스텔톤의 색을 만들어 사용한다.
작가는 색을 모두 칠한 뒤, 그 경계를 따라 연필로 선을 긋는다. 밑그림을 먼저 그리고 색을 채우는 일반적인 방식과는 반대다.
작가는 "연필 라인은 빛에 의해 만들어진 굴절과 흔적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작가의 회화는 금속 안료의 반사 효과와 물감층의 반투명한 질감, 명암의 미묘한 떨림이 어우러져 보는 각도에 따라 색이 드러났다 사라지기도 한다. 작품에 멀리 떨어지면 보이는 숲의 형상은 다가갈수록 흐려지며 추상화로 전환된다.
신경철의 드로잉 작품들 |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의 드로잉 작품도 선보인다. 목탄을 이용해 종이에 숲을 그리고 파스텔을 이용해 은은하게 반사되는 빛을 표현했다.
작가는 "회화 작업을 할 때는 책상에 앉아 정확한 자세로 집중해 그려야 하는데, 드로잉은 자유롭게 몸을 쓰면서 작업할 수 있어 해방감을 느낀다"며 "목탄은 힘을 가하는 정도에 따라 굵기가 달라지는데 이런 감각을 느끼며 손이 가는 대로 진행했다"고 말했다.
작가의 조형 작품도 만날 수 있다. 작가는 항상 팔레트에 색을 조합해 사용하는 데 쓰고 남은 물감이 굳은 형상을 본떠 알루미늄 조각으로 제작했다. 매끄럽지 않은 가장자리는 빛에 의해 흔들리는 풍경의 잔상을 연상시킨다.
신경철 작가 |
유진상 계원예술대학교 교수는 "신경철이 물감의 얼룩을 따라 연필 작업을 하는 것은 마치 턴테이블의 바늘이 레코드판의 홈을 따라가며 소리를 내는 것 같다"며 "그가 만들어내는 그림은 음역이 낮으면서도 변화가 디테일한 음악 같다"고 말했다.
전시는 12월 30일까지.
laecor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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