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산도 풍경, 동물, 사람 담은 흑백 신작 80여점 공개
노순택 작 '흑산 #DFJ0201' |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1801년 정약전은 천주교를 믿은 죄로 흑산도로 유배된다. 아우인 정약용은 "저는 형님께서 가시는 흑산(黑山)을 현산(玆山)이라고 부르겠습니다"라고 말한다.
흑(黑)이나 현(玆) 모두 검다는 뜻이지만 흑은 현실적이고 외형적인 검정을, 현은 신비롭고 오묘한 검정의 어감이 있다. 정약전의 참담한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흑산이 아닌 현산이라 말한 것이다.
흑산이라는 이름은 바닷물이 푸르다 못해 검푸른 빛이 돌아 멀리서 보면 산과 바다가 모두 검게 보인다는 데서 유래했다.
노순택 작 '흑산 #DFE2601' |
검은 바다의 섬 흑산도의 자연과 사람을 사진으로 담은 노순택(54)의 개인전 '흑산, 멀고 짙고'가 서울 사직동 '공간풀숲'에서 열리고 있다.
작가는 전남 신안의 섬 중에서도 가장 먼 곳, 망망대해 한가운데 선 흑산도를 흑백 필름으로 촬영한 신작 80여 점을 내놨다. 흑산도의 자연 풍광에서 시작해 동물과 사람의 삶으로 시선을 확장하며 섬의 대서사시를 그린 작품들이다.
여기에 1만5천자 분량의 작업 노트도 더했다. 섬의 다층적인 면을 새롭게 제시해 이해를 돕는다.
노순택 작 '흑산 #FS001' |
대표 작품은 '팔폭병풍'으로 흑산도의 절경을 병풍에 담았다. 병풍들은 서로 이어져 있으면서도 장면마다 단절이 느껴져, 연결과 고립이 공존하는 신안 바다의 섬들을 떠올리게 한다.
칠흙같이 검고 강한 물살이 두려움을 주는 흑산의 바다와 몰아치는 파도를 견뎌내는 검은 바위, 그 위에서 한적하게 노니는 새와 산양들도 만날 수 있다.
노순택 작 '이판덕 1936년 쥐띠, 진리마을' |
작가의 렌즈는 이곳에 사는 사람들로 향한다. 작가는 흑산에서 삶을 일구는 사람들을 찍고, 그들의 사연을 글로 적어 작품 옆에 붙여놨다.
흑산도 진리마을에서 작가가 만난 이판덕(89) 할머니는 오랜 노동으로 굽은 허리를 펴지 못하지만 아흔이 다 된 지금까지도 바가지를 끌며 파래와 미역, 물김을 따고 있다. 작가는 할머니의 굽은 허리를 보며 "바가지 안의 먹거리를 향해 거룩한 기도를 올리는 것처럼 보였다"고 적었다.
노순택 작 '두싼 왈폴라, 35세, 곤촌마을' |
흑산도 곤촌마을에서 만난 두싼 왈폴라(35)는 스리랑카인 노동자다. 2015년 처음 흑산도에 들어와 4년 10개월을 일하다 스리랑카로 돌아갔고, 코로나19 대유행이 끝난 뒤 한국으로 돌아왔다. 우럭 양식장에서 일하는 그는 내년 1월이면 스리랑카로 돌아가야 한다. 고국에서 무슨 일을 해야 하나 고민이다. 양식장도 그를 대신할 노동자를 구해야 한다.
노순택 작가 |
작가는 각종 집회·시위 현장 등 한국 사회의 이데올로기 갈등을 기록해 온 다큐멘터리 사진가다. 2004년 '분단의 향기'를 시작으로 '얄읏한 공'(2006), '붉은 틀'(2007), '비상국가'(2008), '망각기계'(2012) 등 국내외 개인전을 열었고 같은 제목의 책들을 펴냈다. 2014년에는 사진작가 최초로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을 받았다.
전시는 오는 29일까지.
laecor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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