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시간을 그리다 두번째 이야기·한국 현대 디자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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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 서울, 작품이 되다 = 공주석 지음.
건축을 전공하고 건설업체에서 30여년간 재직한 저자가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설계한 서울의 유명 건축물과 그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준다.
광화문 인근에 있는 교보생명 본사 사옥부터 동대문디자인플라자까지 프랭크 게리, 안도 다다오 등 22명의 거장이 디자인한 건축물을 다룬다.
책에 따르면 서구 건축가들은 서울에 한국적 아름다움을 투영한 건물을 만들고자 했고 이를 통해 호평받았다.
영국 출신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미술관, 카페, 도서관, 업무시설로 이뤄진 미래지향적 공공문화공간을 목표로 아모레퍼시픽 본사를 설계할 때 가장 먼저 고민한 것은 조선백자의 절제된 아름다움과 여백의 미를 어떻게 표현할지였다.
그래서 그는 '공중에 떠 있는 하늘 정원'으로 유명한 공간을 구현했다. 정육면체로 된 아모레퍼시픽 본사 건물의 3면을 뚫어 5층, 11층, 17층에 5∼6층 규모의 공간을 연출한 것이다.
오픈된 거대한 정원은 경치를 집 안으로 끌어들이는 한옥의 발상을 적극적으로 도입한 결과다. 절제된 설계 속에서 예술성을 살리기 위해 노력한 치퍼필드는 2023년 건축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받았다.
반면 건축주의 의향 때문에 한국의 미를 관철하지 못한 사례도 있다. 바로 교보생명 본사 사옥이다. 이 건물은 교보생명그룹 창업자인 신용호 회장이 일본에서 주일 미국대사관 건물을 보고 감동하면서 시작됐다. 그는 독창적이고 상징적인 건축물을 세우기로 결심하고 미 대사관을 설계한 시저 펠리에게 설계를 의뢰했다. 펠리는 광화문·보신각 인근이라는 상징성을 고려해 미국대사관과는 다른 한국 전통적 요소를 반영한 설계안을 제안했지만, 신 회장은 일본에서 봤던 대사관 이미지를 모방하고자 했다. 신 회장을 설득하지 못한 펠리는 결국 건축주의 의견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다만 그는 건물 1층에 대형 아트리움을 조성하고 지하에 서점을 설치해 미 대사관과는 기능적인 차별점을 만들어냈다.
청아출판사. 4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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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 두번째 이야기 = 이장희 지음.
용산, 서울로 일대, 한강 주변, 대학로 등을 중심으로 서울 거리 풍경과 공간에 깃든 역사를 저자의 스케치와 함께 소개한다.
책은 용산구 청암동에 있는 옛 용산 수위관측소에서 근대사의 아픈 단면을 살펴보는 것으로 시간 여행을 시작한다. 이 관측소는 일제 강점기인 1924년 한강변에 최초로 세워진 철근 콘크리트 건물인데 일본인이 많이 거주하던 지역의 한강 범람을 예측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한다. 이 구조물의 수위는 11m까지만 표기돼 있지만 1925년 여름 을축년 대홍수 때는 용산의 한강 수위가 12.74m에 달해 일대가 물바다가 됐으며 서울에서만 600여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대학로로 이동하면 1956년에 문을 연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다방인 학림(學林)다방이 있다. 지금은 비엔나커피로 유명한 이 카페는 1981년 전민학련(전국민주학생연맹) 대학생들이 첫 모임을 했던 곳이다. 신군부가 민주화운동을 탄압하며 학생운동 조직을 반국가 단체로 몰고, 고문과 가혹행위를 하며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벌했던 학림사건이라는 명칭도 이 다방 이름에서 유래했다. 책은 민중운동의 대부인 백기완(1932∼2021) 선생이 매일 학림다방에서 베토벤의 '운명'을 들었다며 그가 늘 앉던 자리를 소개하기도 한다.
문학동네. 4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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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현대 디자인사 = 김종균 지음.
일제강점기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디자인사를 7개 시기로 나눠 정리했다.
책은 엽서, 회화, 포스터, 공예품, 출판물, 건축물, 가전제품, 자동차 등 각 시대에 만들어진 여러 사물을 통해 개별 디자인이 지니는 특징을 소개하고, 미학적 차원을 넘어 정치적 의미를 도출한다. 특히 사회 제도, 정책, 교육, 소비문화 등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가운데 디자인이 당대 사람들에게 어떤 인식을 형성했는지를 생생하게 포착한다.
일제 강점기는 전통 예술의 시련기였다. 예를 들어 대한제국 왕실이 1908년 '공예 전통의 진작'을 목표로 내걸고 설립한 한성미술품제작소는 일제 강점기에 조선 왕실의 일을 맡아보던 관청인 이왕직(李王職)이 운영을 담당하면서 그 명칭이 이왕직 미술품제작소, 조선미술품제작소로 변경됐다. 특히 일본인이 개입하면서 왕실 공예품 전승이 아닌 일본인 취향의 관광 기념품이나 수출용 공예품을 만드는 곳으로 변질했고 1937년에 결국 폐쇄됐다.
군사 정권 시절 디자인은 선전의 도구이기도 했다. 1970년대에는 민족정신 고취라는 명목으로 선전용 '민족기록화' 시리즈가 제작됐으며, 새마을운동 등 정권의 입맛에 맞는 소재를 다룬 작품이 국전에서 대거 수상했다. 당시 국전에서 어떤 작품이 상을 받는지에 따라 미술계 인식이 달라지는 분위기가 있었다. 일례로 향토색이 뚜렷한 민예품을 늘어놓은 정물화가 대통령상을 받으면 이후에는 비슷한 주제의 정물화 출품이 증가했고, 추상 미술이 대통령상을 받으면 추상 미술이 구상 미술보다 우월하다고 인식하는 경향이 생겼다고 한다.
책은 한국 디자인계가 2000년대 디자인 선진국 대열에 진입했지만, 여전히 관(官)이 의제를 주도하는 경향이 있었고 2010년대에 들어서 비로소 탈산업화·다원화가 시작됐다고 평가한다. 산업 편향적이던 경향을 벗어나 삶과 문화를 이야기하는 생활 문화로 자리매김했다는 것이다.
안그라픽스. 546쪽.
sewon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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