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주기 앞두고 출간
독일 포츠담에서 송두율과 만난 리영희(오른쪽) |
(서울=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작은 일은 남자 쪽이건 여자 쪽이건 어느 것을 따라도 무방할 것이니 서로 양보하는 미덕이 해결해줄 것입니다. 그러나 결정적 순간의 큰일에서 의견 차가 생긴다면 신랑은 반드시 신부의 의견을 따르기 바랍니다."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은 1975년 9월 27일 서울 퇴계로 2가의 결혼회관에서 최영희 여사와 부부의 연을 맺을 때 주례로 나선 리영희(李泳禧·1929∼2010) 전 한양대 교수가 "인생의 선배로서 경험적으로 드리는 충고"라며 이렇게 당부했다고 회고한다.
언론인으로 학자로 암울한 시대에 등불 역할을 하고 '전환시대의 논리'(1974), '8억인과의 대화'(1977), '분단을 넘어서'(1984),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1994) 등의 저서를 남긴 리영희의 이처럼 인간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는 단행본 '나와 리영희'(창비)가 고인의 15주기를 앞두고 출간됐다.
책 표지 이미지 |
책은 유 관장 외에도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소설가 황석영·정지아,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 교수,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도쿄대 명예교수, 이철 재일한국양심수동우회장 등 32명이 지닌 고인에 대한 기억을 소개한다.
리영희는 '실천하는 지성' 등으로 불렸고 무겁고 진지한 이미지로 대중에게 각인됐지만 지인들의 기억 속에서는 그의 색다른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경비행기 운전이 취미인 신완섭 군포 리영희기념사업회 운영위원장은 경비행기에 리영희 선생을 태웠던 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선생님 비행기도 한번 타보시겠습니까"라는 제의에 리영희는 "마누라 모르게 탑승해보는 걸로 함세"라고 답했다고 한다.
하지만 얼마 후 리영희의 집을 찾아갔을 때 부인 윤영자 여사는 남편의 경비행기 탑승을 이미 알고 있었다. 신 위원장은 "저보고는 비밀에 부치라 하시고 정작 당신은 자랑하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던 것 같다"고 추측한다.
리영희는 독일 유학 중 방북 이력과 조선노동당 가입 등이 문제가 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 됐던 송두율 전 교수에게 2003년 보낸 서신에서 건강을 염려하기도 했다.
기자시절의 리영희 |
"새해에는 밝은 태양 아래서 자유인으로 만납시다. 오직 건강에만 마음을 쓰시오. 건강을 잃거나 상하면 모든 것을 잃으니까요."
송 전 교수는 "리 선생은 불편한 몸을 이끌고 공판정을 찾았고, 남편의 구명을 위해 낯선 서울에서 밤낮으로 동분서주하는 아내를 따뜻하게 위로해주고 용기도 북돋아 주셨다"고 책에서 전했다.
1960년대 후반 리영희와 조선일보에서 함께 근무한 이력이 있는 신홍범 전 한겨레신문 논설위원은 당시 고인이 외신부장으로서 베트남 전쟁에 비판적 태도를 취했던 것에 주목한다.
그는 "리영희 선생이 남긴 가장 큰 업적 중의 하나는 베트남전쟁의 진실을 파헤친 것"이라며 "베트남전쟁을 비판적인 시각에서 다룬다는 것은 당시 이 전쟁에 5만명의 전투부대를 파병하고 있던 박정희 정권에 대한 도전이나 다름없었다"고 회고한다.
리영희재단 기획. 368쪽.
sewon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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