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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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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간]웃음과 위로, 사람냄새 가득한 이야기…'삶은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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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시스


    [서울=뉴시스] 최희정 기자 = "대출대에 놓인 책 목록이 한 사람의 '인생 서사'처럼 읽힐 때가 있다. 이것이야말로 나이듦이 내게 선물한 소중한 사유이자 통찰이다." (프롤로그 중)

    신간 '삶은 도서관'(싱긋 출판사)은 도서관 노동자가 들려주는 웃음과 위로, 그리고 사람 냄새 가득한 이야기다.

    저자인 인자는 1996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해 시인이 되었고, 대학 졸업 후 광고 홍보인으로 일하며 두 딸의 엄마로 치열한 일상을 살아왔다. 늦은 나이에 공공기관에 입사해 도서관 노동자가 된 그는 책으로 가득한 서가 안쪽에서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 책은 모든 것이 완벽한 '정배열'로 정돈된 공간인 도서관을 배경으로, 그 질서정연한 궤도를 자꾸만 이탈하며 방황하는 '오배열'된 우리 모두의 불완전한 존재를 따뜻하게 긍정한다. 이는 마치 유쾌하면서 다정한 응원가처럼 독자들의 마음에 울려퍼진다.

    특히 이 책이 빛나는 지점은 중년 이후 삶을 바라보는 시각에 있다. 노화와 상실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아니라, 세월이 차곡차곡 빚어낸 고유한 품격으로 삶의 후반부를 바라보게 한다.

    "젊었을 땐 무심히 지나쳤던 그 모든 순간이, 중년이 된 나는 자꾸만 더 알고 싶어졌다. 어쩌면 늙어간다는 것은 표정만으로 마음을 읽고, 감탄사 하나로 한 사람의 생을 어림하는 진짜 초능력자가 되어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나는 나이듦이 선물한 이 놀라운 감각에 '프라이드 에이징(Pride Aging)'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기로 했다. 늙음을 부정하는 대신, 자기 존재를 존중하며 깊어질 용기를 응원하는 마음이다." (6쪽)

    책은 도서관에서 마주한 웃음, 삶, 노동, 추억, 그리고 나이듦을 다섯 개의 서가로 나눠 담았다.

    저자가 포착하는 도서관의 일상은 완벽한 'A컷'이 아닌, 예상치 못한 'C컷'들로 가득하다. 어린이가 찾는 '젓가락 달인'을 '젓가락 살인'으로 잘못 듣고, 이용자의 성을 '곽'에서 '강'으로 오해하며 벌어지는 소동들은 폭소를 안긴다. 그러나 작가는 자신의 실수와 불편함까지도 인간적인 공감 소재로 승화하며, "완벽한 기능보다 인간적인 실수가 주는 여유와 공감의 가치"를 역설한다.

    도서관의 정숙을 깨는 유쾌한 소동은 끊이지 않는다. 독한 냄새만 남기고 홀연히 사라지는 '방귀 마스터'에 대한 동료들의 은밀한 고충, CCTV 사각지대를 이용해 몰래 사랑을 속삭이는 '이팔청춘 연애 커플'을 단속하는 이야기, 정수기 컵이 너무 작다며 반짝이는 '스뎅 사발'을 고집하던 어르신, 글자를 모름에도 책을 거꾸로 들고 읽던 할머니의 초롱초롱한 눈빛까지, 도서관이 정적인 공간이 아닌, 온갖 사연이 부딪히는 '인생 극장'임을 보여준다.

    "어느 날, 시 쓰는 어르신이 케이크 한 상자를 사오셨다. 규정상 받을 수 없다고 정중히 사양했지만, 어르신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알고 보니 팔순을 자축하는 케이크였다. 가족과 다름없는 도서관 직원들과 꼭 함께 나누고 싶다고 하셨다." (90쪽)

    "도서관은 누군가에게 단순한 쉼터를 넘어, 사회와 연결되는 마지막 끈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명절에도 문을 열어달라던 어르신의 한숨은 고립의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달라는 간절한 외침이었을 것이다." (114쪽)

    ☞공감언론 뉴시스 dazzling@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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