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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5 (금)

    한국 AI 발목 잡는 '족쇄'…"데이터 수집 단계에서 좌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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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저작권·개인정보법 모호성에 스타트업 '속앓이' 역차별 우려도

    [디지털데일리 이건한기자] 한국 AI 산업의 성장과 사용자 개인정보보호라는 두 축의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해 국내법의 불명확성부터 속히 개선해야 한다는 법조계와 산학 전문가들의 제언이 나왔다. 26일 국회의원 스타트업 연구단체 '유니콘팜'과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주최한 '국회 AI 대전환, 선언에서 실행으로' 토론회 참석자들은 국내 AI 산업이 데이터 활용이라는 첫 단추부터 저작권법과 개인정보보호법의 모호한 규제 안에 갇혀 있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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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날 토론회에서 이기대 스타트업 얼라이언스 센터장은 "지금 우리 스타트업 대표들은 GPU 부족이나 클라우드 비용보다 학습 데이터 수집 단계에서 발생 가능한 민·형사상 책임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한국에서 창업하느니 차라리 미국으로 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고민이 깊어지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어 "AI 스타트업이 없으면 국가적 AI 전환을 누가 하느냐"고 반문하며 국내 AI 스타트업들이 마주한 위기 상황을 경고했다.

    ◆ "무엇이 합법?" 저작권과 개인정보법의 모호성

    주제 발표를 맡은 방성현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AI 기업들이 직면한 법적 한계를 '저작권'과 '개인정보'라는 두 가지 축으로 분석했다.

    방 변호사는 AI 학습과 서비스를 위한 저작권법 관련 조항 중 "국내 현행법의 '공정 이용' 조항은 미국과 달리 판례가 부족해 사업자에게 법적 확실성을 주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안으로 일본이나 싱가포르 모델을 언급하며 "저작물의 '적법한 접근'을 전제로 상업적 이용까지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TDM(텍스트·데이터 마이닝) 면책 규정 도입이 가장 적절한 대안"이라고 제안했다.

    개인정보보호법에 대해서는 일부 개선이 필요하다고 봤다. 방 변호사는 개인정보보호법 제15조 6항에 포함된 '정당한 이익(*)' 조항에 대해 "정보 주체의 권리보다 명백하게 우선해야 한다"는 엄격한 요건 탓에 기업은 오히려 데이터를 활용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그는 "사후 판단이 어려운 '명백하게'라는 요건은 사실상 사업을 하지 말라는 것과 다름없다"고 꼬집었다.

    * 개인정보처리자의 정당한 이익을 달성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로서 명백하게 정보주체의 권리보다 우선하는 경우. 이 경우 개인정보처리자의 정당한 이익과 상당한 관련이 있고 합리적인 범위를 초과하지 아니하는 경우에 한한다. *

    ◆ "데이터 50%가 날아간다"... 현장의 힘 빠진 목소리

    종합 토론에서는 실제 데이터를 다루는 기업들의 고충이 쏟아졌다. 신재민 트릴리온랩스 대표는 "LLM(대형언어모델) 개발을 위해 웹에서 수집한 100테라바이트 규모의 데이터가 있어도 개인식별정보 필터링 과정에서 약 절반이 날아간다"고 밝혔다. 신 대표는 "이는 학습 데이터의 양과 질을 심각하게 저하시키는 요인"이라며 학습 목적의 데이터 활용에 대한 예외 조항 신설 필요성을 어필했다.

    AI 기반 채용 솔루션 기업 두들린의 정일권 CPO는 현행법에서 개인정보 사용 '동의' 확보의 현실적 어려움을 토로했다. 정 CPO는 "지원자의 이력서를 AI 학습에 활용한다고 고지하면 동의율이 급락하고 고객사(채용 기업) 역시 반대한다"며 "해외 서비스들은 링크드인 등 공개 정보를 자유롭게 활용해 AI를 고도화한다. 반면 국내 기업은 시작조차 못 하는 역차별을 겪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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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I 학습은 식별 목적 아냐" vs "유연한 연성법 필요"

    학계와 입법 전문가들은 규제 패러다임의 전환을 주문했다. 김현경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는 "애초에 개인정보 제도는 기업이 개인을 (상업적 이유로) 무분별하게 식별하는 것을 규제하기 위한 것"이라며 반면 AI의 학습(Input, 데이터 입력) 단계는 식별이 목적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데이터 활용의 근본적 취지 자체가 다르니 규제 적용에 대한 인식도 달라져야 한다는 의미다.

    김 교수는 "현재 상황은 불합리한 경쟁 구도를 만들기도 한다. 이미 대규모 학습을 마친 글로벌 빅테크들은 미래의 소송 리스크만 안고 있다. 그러나 후발주자인 국내 신규 기업들은 학습조차 편히 시작하지 못한 채 발목만 잡힌 형국"이라고 분석했다.

    김형진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법률의 구체화보다는 유연성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김 조사관은 "법률 단계에서 모든 상황을 명확히 규정하기보다는 '정당한 이익'과 같은 일반 조항을 유지하되 행정부의 가이드라인 같은 '연성법(Soft Law)'을 활용한 불확실성 해소가 더 합리적인 방안"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 역시 실무적으로 해석이 어려운 정당한 이익 조항의 '명백하게'라는 문구 개정 필요성에는 동의했다.

    정부와 국회 관계자들도 사태의 시급성에 공감하며 법 개정 의지를 내비쳤다. 양청삼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정책국장은 "정당한 이익 조항의 명백하게 문구가 장애 요소임을 공감하며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한 "현재 국회 계류 중인 AI 특례 법안(일정 요건을 갖추면 개인정보를 수집 목적 외로 활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의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의 조속한 통과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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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 유니콘팜 공동대표인 더불어민주당 김한규 의원은 "국회가 업계의 필요성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반성을 하게 된다"며 "개인정보의 산업적 활용과 규제 변경에 대해 깊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유니콘팜 연구책임인 조국혁신당 이해민 의원 역시 "기술 관련 법·정책은 현업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또한 무엇보다 입법부와 현업의 공고한 소통 채널 마련이 중요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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