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용 절감을 위해 하청에 의존하는 구조가 확산하면서 안전 관리에 공백이 생기고, 이로 인해 현장에서는 신호수 배치나 안전 교육 같은 기본 절차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지난 17일 경남 거제 한화오션 조선소 야드에서 발생한 지게차 사고 모습. 지게차 포크가 트럭 운전석과 뒷좌석 옆유리를 관통했다./독자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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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럭 창문 뚫고, 작업자 덮치고… 반복되는 지게차 사고
27일 고용노동부와 조선업계에 따르면 지난 17일 한화오션 거제사업장 야드에서 이동하던 7톤(t) 지게차가 업무용 트럭을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지게차의 포크(짐을 싣는 발 부분)가 트럭 측면을 뚫고 운전석과 뒷좌석 내부를 관통했다. 포크가 간발의 차로 운전자와 동승자를 비껴가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고 한다.
사고 직후 한화오션 노조는 사고가 난 작업에 투입되던 지게차 18대에 대해 작업중지권을 발동하고 사측에 트럭 운전자와 동승자의 트라우마 상담을 비롯한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했다. 최근 유사 사고가 빈번하고 이번 사고는 인명 피해만 없었을 뿐 잠재적 위험이 크다는 점을 노조는 중지 근거로 들었다.
지게차 가동이 멈추면 자재 운송이 끊겨 선박 건조 공정이 일시 중단된다. 사측은 지게차 운전사와 신호수 간 손동작 표준 신호 교육, 무전기 지급 등 재발 방지 대책안을 내놨고 노조는 다음날 사고 지게차를 제외한 나머지 지게차의 작업 중지를 해제했다.
이번 사고는 김희철 한화오션 대표가 근로자 사망 사고 이후 “뼈를 깎는 심정으로 안전 관리 체계를 강화하겠다”고 약속한 지 한 달여 만에 발생했다. 한화오션 사업장 내 지게차 사고는 지난해 15건, 올해 8건 등 계속되고 있다.
한화오션에서 지게차 사고가 발생한 같은 날 오후 중견 조선 기자재 업체 DK 사업장에선 지게차와 충돌한 60대 근로자가 숨졌다. DK는 한화오션과 삼성중공업 등의 물량을 수주해 선박 블록을 제작하는 회사다. 16t 지게차가 이동하는 과정에서 작업자를 발견하지 못하면서 압사 사고가 났다. 노동부는 DK에 대해 부분 작업 중지 명령을 내렸고, 경찰은 중대재해처벌법 및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여부에 대해 수사 중이다.
이 같은 지게차 사고는 조선소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다. 조선업인권침해대응연대의 실태 조사에 따르면, 지난 5월 23일 전남 영암군 대불산단 내 마린텍에서는 16t 지게차가 운행 중 작업자를 발견하지 못하고 충돌해 작업자가 사망했다. 지난해 12월에도 울산 신한중공업 야드에서 후진하던 지게차에 작업자가 부딪혀 숨졌다.
현장에선 인명피해로 이어지지 않은 경우 쉬쉬하는 경향이 있어 실제 사고 사례는 더 많을 것으로 본다. 삼성중공업의 경우 지게차 사고 건수를 공개하지 않았다.
◇ 신호수 배치·교육 규정 ‘형식적 운영’… 비숙련 인력 투입 빈번
조선소 현장에서는 잇따르는 사고가 기초적인 안전 규칙을 지키지 않아 발생한 인재(人災)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지게차는 적재물에 시야가 가리고 사각지대가 넓어 운전자가 주변 위험을 스스로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산업안전보건기준은 작업 반경을 통제할 유도자(신호수) 배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그러나 근로자들은 신호수가 배치되지 않거나, 배치되더라도 교육 부족으로 운전자와 호흡이 맞지 않아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한화오션 거제조선소에서 일하는 직원 A씨는 “하청업체 노동자의 50% 이상이 1년을 채우지 못하고 퇴사하는 등 인력 교체가 매우 잦다”며 “그러다 보니 원청과 하청 모두 신호수 업무에 대한 교육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현장에 투입된 신호수와 장비 운전 인력의 숙련도가 떨어져 안전 수칙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비용 절감을 위해 안전이 뒷전으로 밀리는 관행도 문제다. 한 중견 조선소에서 지게차를 운전하는 B씨는 “배를 직접 만들지 않는 신호수나 안전 인력 배치는 최우선 감축 대상이 된다”며 “전문 교육은 고사하고, 용접이나 다른 업무를 하던 작업자에게 갑자기 신호봉을 쥐여주고 현장에 투입하는 ‘땜질식 배치’가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전담 인력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는 현장 시스템이 결국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설명이다.
이에 작업자들은 조선소가 안전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지게차 한 대당 전문 신호수가 한명씩 배치된 HD현대중공업은 지게차 사고가 올해 0건, 지난해 1건으로 상대적으로 적었다.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 일하는 C씨는 “4년 전부터 지게차 작업 시 전담 신호수 배치를 의무화하고 작년 사망 사고 이후 기계에 바퀴 끼임 방지 가드 등 안전 관련 투자가 늘면서 많던 사고가 줄었다”며 “다른 업무와 겸직하지 않고 오직 신호 업무만 보는 전문 인력을 지게차마다 한명씩 배치하고, 이를 어길 시 즉각 작업을 중지시키는 원칙이 현장에 자리 잡은 결과”라고 말했다.
호황에 따른 생산 제일주의 역시 사고 위험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화오션의 또 다른 현장직 근로자 D씨는 “액화천연가스(LNG)선 물량이 쏟아지면서 작업 속도에 대한 압박이 심하다”며 “야드에 작업자가 밀집해 있다 보니 지게차 인체 감지 센서 경고음이 쉴 새 없이 울려 사실상 ‘소음’ 취급받는다. 결국 제대로 된 교육 없이 시간에 쫓기는 상황에서 안전장치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무력화되는 셈”이라고 전했다.
◇ 전문가들 “보여주기식 점검으론 한계… 원청 안전 책임 강화해야”
전문가들은 연쇄 사고를 끊기 위해선 원청의 안전 책임 의무를 강화하는 실효성 있는 대책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상 지게차 등 하역기계를 5대 이상 보유한 사업장은 기계를 사용하는 작업자에게 16시간 이상의 특별안전보건교육을 실시해야 하지만, 외국인·단기 인력이 많은 하청 현장에선 언어 장벽과 인력 공백 우려 등으로 교육이 사실상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는 “다단계 하청 구조가 만연한 조선업 특성상 인력과 예산이 부족한 영세 하청 업체에 안전 관리를 온전히 기대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정부가 산업안전 감독관을 늘려 사전 점검을 강화한다고 해도, 기업들이 현장 점검 때만 기준을 맞추는 식이라 한계가 뚜렷하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이어 “원청이 인건비 등 비용을 아끼기 위해 위험 업무를 외주 줬더라도, 그에 따른 안전 관리 책임까지 회피해서는 안 된다”며 “실질적인 자금력과 권한을 가진 원청을 하청 근로자에 대한 안전 교육과 신호수 관리를 직접 챙기도록 법적·제도적 의무를 강화해야만 반복되는 사고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최지희 기자(he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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