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간 140종 폭증한 트렌드 서적
"올해 주춤, 독자는 등을 돌렸다"
한국만의 '연례 트렌드 문화'
해외 트렌드서 4~5년 장기 전망
용인 시내 한 서점에 트렌드 서적이 하나의 코너를 이루고 있다. 서믿음 기자 |
2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5년간 트렌드 관련 도서 출간 종수는 꾸준히 증가했지만 판매량은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 교보문고 기준으로 2020년 약 80종이던 출간 종수는 지난해 134종까지 늘었고, 올해는 140종을 넘길 것으로 보인다. 반면 판매 신장률은 2021년 42%대를 정점으로 올해 11월 기준 5%대까지 급락했다.
국내 트렌드 분석서의 출발점은 2007년 김난도 서울대 명예교수가 펴낸 '트렌드 코리아 2008'이다. 다음 해의 트렌드를 10개의 키워드로 제시하는 방식이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고, 연말 출간되면 기업의 사업계획에도 참고될 만큼 영향력을 인정받았다. 흥미로운 스토리텔링 방식은 대중적 인기를 끌었고, 이후 연말·연초마다 다양한 분야에서 트렌드 분석서가 쏟아지는 문화로 이어졌다.
이런 현상은 해외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렵다. 해외 트렌드 전망이 대체로 4~5년을 내다보는 중장기 예측에 집중하는 반면, 한국은 매년 단위의 전망서를 정기적으로 발간하고 이를 베스트셀러로 소비하는 거의 유일한 시장이다. 해외 출판계와 교류가 많은 한 관계자는 "스토리텔링 성격이 강한 책들이 기업의 사업계획서에까지 인용된다는 점이 해외에서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홍순철 BC에이전시 대표도 "트렌드 코리아 성공 이후 매년 다수의 유사서가 쏟아지는 구조가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의 해석은 엇갈린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는 "소비자학 기반 분석이 실제 기업 실무에 활용되며 자생적인 시장이 형성된 것"이라며 "한국형 히트 콘텐츠 사례"라고 평가했다. 반면 장은수 출판평론가는 "한국 사회의 빠른 변화와 불안이 결합된 결과"라며 "트렌드에 이름을 붙여 서사화해 읽는 문화는 발전 동력이면서 동시에 불안을 키우는 요소"라고 분석했다. 이어 "트렌드는 원래 중장기 개념이어서 해외에서는 몇 년에 한 번 발간될 뿐이며, 사회가 비교적 안정적이라 한국만큼 필요성이 크지 않다"고 덧붙였다.
일부 전문가들은 트렌드서가 실제 시장을 움직이는 '자기 충족적 예언(Pygmalion effect)'으로 기능한다고 설명한다. 홍 대표는 "자주 거론된 키워드가 실제 트렌드처럼 소비되며 예언 효과가 발생한다"며 "결국 한국 사회의 불안과 성과 압박이 반영된 현상"이라고 말했다.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의 종합 베스트셀러 1위 기록은 2021년 이후 하락했으나, 지난해 2주 연속 1위에 이어 올해는 9주 연속 1위를 기록하며 다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한 서점 관계자는 "지난해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영향으로 순위가 일시적으로 낮아졌고, 올해는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며 여러 요인이 작용한 것 같다"고 관측했다.
한 출판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시기의 불확실성 속에서 전망서 수요가 급증했지만 최근엔 피로감이 쌓이며 독자 이탈이 두드러진다"며 "다만 올해처럼 불확실성이 큰 시기에는 트렌드서가 다시 주목받으며 불안 심리가 되살아나는 면도 있다"고 진단했다.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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