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는 애플 역사에서 가장 혼란스럽고 극단적인 시기였다. 초기 매킨토시의 성공과 스티브 잡스의 복귀 사이에 놓였던 이른바 ‘공백기’ 동안 애플은 방향성을 잃은 채 헤맸고, 결국 공동 설립자의 돌아온 구원에 의존해야 할 정도로 상황이 악화됐다.
1990년대 애플은 여러 문제를 안고 있었다. 판매가 어려운 제품을 만들어내던 연구 조직, 문서를 새로 정의하고 기존 맥OS를 대체한다는 명목으로 추진하던 소프트웨어 개발 프로젝트 등 결실 없는 시도도 많았다. 하지만 그런 혼란과 과잉의 시기 속에서도 의미 있는 성과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91년 12월 2일, 지금으로부터 34년 전 등장한 퀵타임(QuickTime)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멀티미디어의 초기 단계
40세 미만의 세대라면 ‘멀티미디어 이전’ 시대를 기억하기 어렵다. 한때 컴퓨터는 오디오와 비디오 처리 능력이 매우 떨어졌다. 필자는 한때 애플 II에 연결된 모뎀 수화기를 통해 레드 제플린의 ‘Black Dog’ 초반 10초를 재생하려고 플로피 디스크에 파일을 내려받는 데만 30분을 쓴 적도 있다. MP3 시대와는 거리가 멀었다.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에 이르러서야 디지털 오디오는 매킨토시에 본격적으로 정착했다. (당시 PC는 삑 소리를 넘어선 기능을 사용하려면 별도의 사운드카드를 장착해야 했다.) 이후 과제는 비디오, 정확히는 오디오와 비디오의 동기화였다. 당시 매킨토시는 초당 몇 프레임만 재생해도 부담을 느낄 정도로 성능이 제한적이어서 사실상 슬라이드쇼에 가까웠다. 또한 비디오를 인코딩·디코딩하는 코덱은 복잡하고 비용도 많이 들었으며, 다양한 포맷이 난립해 파일 호환성까지 떨어졌다.
애플은 모든 기능을 새로 만드는 대신, 필요에 따라 다양한 코덱을 사용할 수 있는 멀티미디어 제작 및 재생용 프레임워크를 구축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그 핵심에는 여러 오디오·비디오 스트림을 담을 수 있는 컨테이너 파일인 ‘퀵타임 무비(QuickTime Movie)’ 혹은 MOV가 있었다.
초기에는 혼란도 적지 않았지만, 필자는 생생하게 기억한다. UC 버클리 캠퍼스 지하에서 빠른 매킨토시 앞에 앉아 처음 MOV 영상을 재생했던 순간, 그리고 캡처 카드에 연결한 실시간 영상이 맥 화면에 디지털 형태로 나타났던 경험은 당시로서는 충격적이었다.
물론 이는 그 시대 기준으로도 매우 기초적인 단계였다. 애플이 퀵타임 2.0을 발표했을 당시 지원했던 영상은 320×240 해상도에 초당 30프레임이었다. 지금 기준에서는 낮은 품질이지만, 당시 TV 표준 화질의 절반 수준의 본격적인 풀모션 비디오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여전히 갈 길은 멀었다.
CD-ROM의 시대
퀵타임의 등장 시점은 이보다 더 적절할 수 없었다. 맥과 PC에 CD-ROM 드라이브가 확산하면서 개발자는 기존 하드 드라이브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대용량 오디오·비디오 파일을 광디스크에 담을 수 있게 됐다. 맥과 윈도우 모두에서 사용할 수 있었던 퀵타임은 백과사전, 영화 데이터베이스, 게임 등 CD-ROM 기반 콘텐츠의 핵심 엔진으로 자리 잡았다.
애플은 CD-ROM 시장의 특성에 맞춰 퀵타임에 다양한 인터랙티브 기능을 추가했다. 또한 창의성이 폭발하던 시기, 애플은 사진을 이어붙여 360도 환경을 구축할 수 있는 퀵타임 VR(QuickTime VR) 개발 키트를 선보였다. 그중 가장 널리 사랑받았던 콘텐츠는 아마도 엔터프라이즈의 주요 공간을 360도 파노라마로 구현한 ‘스타 트렉: 넥스트 제너레이션 인터랙티브 테크니컬 매뉴얼(Star Trek: The Next Generation Interactive Technical Manual)’ CD-ROM이었을 것이다. 현재는 아이폰 파노라마 모드 한 번이면 구현되는 장면이지만, 당시에는 수십 장의 사진과 느리지만 강력한 파워맥(Power Mac)이 필요했다.
데스크톱 출판 시대부터 맥은 늘 미디어 제작의 중심에 있었다. 퀵타임은 맥의 위치를 비디오 분야까지 확장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고, 1998년의 파이널 컷 프로 인수로 그 흐름은 더욱 강화됐다. 당시 애플은 비디오 업계를 위한 ‘퀵타임 라이브(QuickTime Live)’라는 자체 컨퍼런스도 개최했다.
인터넷 시대의 퀵타임
인터넷의 등장은 퀵타임의 역할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CD-ROM은 용량은 제한적이었지만 데이터 전송 속도는 안정적이었다. 인터넷은 사실상 무한한 저장 공간을 제공했지만, 초기에는 극도로 느린 속도를 통해 영상을 전송해야 했다.
애플은 네트워크 속도에 맞춰 서로 다른 화질을 제공하는 퀵타임 스트리밍 서버(QuickTime Streaming Server)를 개발했지만, 인터넷 멀티미디어 스트리밍 초기 시장의 주도권은 리얼오디오(RealAudio)를 만든 리얼네트웍스(RealNetworks) 등 다른 기업으로 넘어갔다. 애플은 퀵타임을 일종의 멀티미디어 브라우저로 발전시켜, 영화 예고편 등 퀵타임 포맷 영상을 제공하는 인기 사이트들과 연결하는 기능을 제공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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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 사용자에게 퀵타임은 주요한 영상 도구였다. 기본 제공되는 퀵타임 플레이어(QuickTime Player) 외에 유료로 업그레이드하면 퀵타임 프로(QuickTime Pro) 기능을 사용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오디오·비디오 트랙을 추가·편집하며 영상 파일을 다양하게 조작할 수 있었다. 단순한 플레이어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매우 강력한 도구였다. 하지만 맥OS 카탈리나가 32비트 앱 지원을 중단하면서 클래식 퀵타임과 함께 퀵타임 프로 지원도 공식적으로 단종됐다. 현재 맥에 탑재되는 퀵타임 플레이어 X(QuickTime Player X)는 다른 프레임워크를 기반으로 하므로 클래식 퀵타임에서 지원하던 다수의 코덱을 사용하지 못한다. 맥OS 카탈리나의 등장은 곧 퀵타임 시대의 종언을 의미했다.
여전히 건재한 퀵타임의 유산
다만 퀵타임의 시대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최근 애플 파크에서 열린 행사에서 비전 프로용 몰입형 영상을 담당한 전문가들은, 현재 몰입형 영상의 표준 포맷 역시 본질적으로 퀵타임 컨테이너 구조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오늘날 인터넷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영상 컨테이너인 MP4 파일 역시 오디오·비디오·기타 정보를 하나로 담는 구조를 갖고 있다. 이는 MPEG-4가 퀵타임 포맷을 기반으로 설계됐기 때문이다.
34년이 지난 지금 퀵타임은 애플의 오래전 지나간 시대를 상징하는 기술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오늘날의 컴퓨팅 세계 전반에 깊게 스며든 기반 기술이다. 1990년대 초 혼란스러웠던 애플의 여러 발자취는 잊고 싶지만, 퀵타임만큼은 지금도 충분한 가치를 인정받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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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son Snell editor@itwor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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