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장인 기술에 CAD/CAM 결합한 '시스템 오더'로 맞춤 정장 혁신
"기초기술 확실히 익힌 뒤 로봇 관리·조정 능력 더해야"
연합뉴스와 인터뷰하는 백운현 명장 |
(서울=연합뉴스) 박현수 기자 = "기술 하나만 제대로 익히면 100세 시대에 평생 일자리 걱정 없이 살 수 있습니다."
1975년 스페인 국제기능올림픽 양복 부문 금메달리스트이자 대한민국 양복 명장으로 동탑산업훈장을 수훈했으며 50년 넘게 한 길을 걸어 온 국내 대표 테일러 백운현(72) 명장. 그는 3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은퇴할 나이인 70대에도 월 1천만원 수익을 올린다며 이같이 말했다.
파주중학교에 다니다 집안 형편 때문에 중퇴한 그는 미군 부대 주변에 양복점이 몰려 있어 자연스럽게 '옷 짓는 일'에 눈을 떴다.
이후 서울로 올라와 은사 모선기 선생 밑에서 재단과 봉제 기술을 익혔으며, 지방 기능대회를 거쳐 18세에 전국기능대회에서 1위를 차지했고, 20세에는 세계무대에서 금메달이라는 꿈을 이뤘다.
제자들과 포즈 취한 백운현 명장 |
"당시엔 금메달을 따지 못하면 한국에 돌아오지 않겠다는 각오로 나갔습니다. 어린 나이에 양복 한 벌로 한국 기술의 수준을 보여줬다는 그 자부심이 지금도 제 삶을 떠받치는 힘입니다."
세계대회 우승은 그의 삶을 단순한 재단사를 넘어서게 한 변곡점이 됐다. 조선호텔 앞 최고급 양복점에서 재단을 배우고, 20대 중반에는 자신의 양복점을 열었다.
원단회사 광고 모델로 TV에 출연하며 하루 수십 벌의 주문을 소화해야 했지만, 그는 "돈보다 좋은 옷을 만들겠다"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강남 압구정·양재동 스포타임 등지에서 상류층 고객을 상대로 한 벌에 수백만 원, 수천만 원대 양복을 지으며 '3천만 원짜리 양복'의 주인공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IMF 외환위기와 경기 침체, 기성복과 수입 브랜드 확산으로 전통 맞춤 양복 산업은 급격히 위축됐다. 5만 명에 이르던 재단사들은 하나둘 가게 문을 닫았고, 그가 오랫동안 심사위원을 맡았던 양복 기능대회도 지원자 부족으로 결국 폐지됐다.
1974년 전국기능경기대회 박정희 대통령과 백 명장 |
그는 "한국 소비자들은 외국 브랜드에는 수백만 원을 쓰면서 정작 국내 명장들의 손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는다"며 "양복 기술은 사양 산업이 됐지만, 그 기술 자체는 여전히 평생 자산"이라고 했다.
2007년 정부로부터 양복 명장으로 공식 인정받은 뒤 그는 침체된 산업을 살리고 기술의 가치를 전하기 위해 현장보다 교육과 사회공헌에 더 많은 시간을 쏟았다. 교도소 재소자에게 기술을 가르치기도 했고, 장애인 기능대회 심사위원으로 참여해 선수들이 세계대회 금메달을 따는 데 도움을 줬다. 2023년 프랑스 국제장애인기능올림픽 심사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그가 개발한 시스템 오더는 수천 명의 체형 데이터를 분석해 만든 기본 패턴에 각 고객의 치수와 취향을 더해 제작하는 방식이다. 컴퓨터 설계(CAD)와 자동 재단(CAM)을 활용해 생산성을 높이면서도, 중요 공정에서는 여전히 장인의 눈과 손으로 맞춤형을 점검한다. 수제 양복과 기성복의 장단점을 접목한 시스템이다.
"수제 양복은 한 벌 만드는 데 일주일이 넘게 걸립니다. 지금 시대에는 그렇게 해서는 가격이 비싸서 서민들이 입을 수가 없어요. 기술과 로봇 시스템을 결합해 더 많은 사람에게 '제대로 맞는 옷'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대한민국 명장 인증패 |
백 명장은 현재 제자들과 함께 '뮤토 테일러'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서울에 본점을 두고 부산, 대전 등 전국 13곳에 지점을 운영하고 있다. 내년에는 20개로 늘리는 것이 목표다.
그는 산업 현장에서 로봇과 인공지능(AI)이 사람 일을 대신하는 현실을 언급하며 "세상이 변할수록 더욱 기초 기술을 확실히 익힌 뒤 로봇을 관리하고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을 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야 걱정 없이 일자리를 잃지 않는다는 그의 말에는 후배 세대를 향한 애정이 묻어났다.
다문화 학생들 대상 특강하는 백운현 명장 |
인터뷰 말미에 그는 "좋아하는 일을 찾아 남 탓하지 말고 최고가 될 때까지 파고들라"고 주문했다. "손흥민, 김연아 선수가 하루아침에 된 것이 아니듯, 기술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공부는 못했지만, 평생 손에서 바늘을 놓지 않았어요. 그 시간이 모여 오늘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백 명장은 "국가와 사회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으니, 남은 생은 기술을 나누는 데 쓰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떤 직업을 택하든 '평생 흔들리지 않는 자기 기술' 하나만큼은 꼭 갖고 살아가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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