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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5 (금)

    “돈으로는 못 산다”…최소 100만 엔 지원도 효과는 미미 [해외실험실: 지방소멸대응 ①-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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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방 이주 시 최소 100만 엔 지원
    취업·소득 격차 등으로 효과는 미미해
    “자금 지원 아닌 '삶의 조건' 초점 맞춰야”


    해외실험실
    한국 사회나 기업이 직면한 심각한 위기나 도전, 정부의 정책 과제 중에는 해외에서 이미 겪은 경우가 많다. 이에 해외 사례를 통해 한국이 앞으로 어떤 상황에 직면하게 될지, 특정 정책을 펼쳤을 때의 경제적 부작용은 무엇인지 등을 파악해보고자 한다.


    이투데이

    사진은 일본 도쿄 신주쿠 거리에서 사람들이 걸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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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행정안전부는 최근 2022년부터 2031년까지 매년 1조 원 규모로 지역에 배분하는 지방소멸대응기금에 대해 기존의 시설 조성에서 탈피해 실질적 인구유입이 큰 사업 중심으로 재원을 배분하기로 했다. 일본도 한국과 비슷하게 인구 감소와 지방소멸을 막기 위해 각종 ‘돈 풀기’ 실험에 나서고 있지만 구조적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일례로 4일 세계경제포럼(WEF)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도쿄권으로의 인구 집중을 완화하기 위해 2023년부터 자녀 1명당 지급되는 지원금을 종전의 30만 엔에서 최소 100만 엔(약 940만 원) 이상으로 확대한 지방 이주 지원책을 펼쳤지만 눈에 띄는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 지원책은 최근 10년 중 5년 이상 도쿄 23구에 거주했거나, 수도권에서 23구로 통근한 가구가 대상이다. 이들이 지방으로 이주해 △지역 중소기업에 취업하거나 △원격근무로 이전 직장을 유지하거나 △이주 지역에서 창업하면 가구당 기본적으로 100만 엔을 받을 수 있다. 여기에 자녀 수만큼 100만 엔씩 추가돼 두 자녀를 둔 4인 가족의 경우 최대 300만 엔까지 지원받는다. 소득 제한은 없지만 이주 지역에서 최소 5년을 거주하지 않으면 지원금을 반납해야 한다.

    정부 관계자들은 해당 인센티브 강화로 2027년까지 최소 1만 명을 수도권 밖으로 유도하는 것을 기대했다. 인구 3700만 명이 몰려 있는 수도권의 부담을 줄이고, 인력 유출이 심각한 지방에 젊은 세대를 유입시키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초기 통계는 기대와는 거리가 있었다. 정착 지원금을 비롯한 수도권 집중 완화·지방 활성화 프로젝트가 일부 지역의 인구 감소세를 다소 누그러뜨린 측면은 있지만, 전반적 효과는 미미하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실제로 일본 총무성이 지난해 발표한 ‘주민기본대장 연계 국내이동 보고서’에 따르면 전년보다 순전입이 증가한 지역은 도쿄, 지바, 오사카 등 단 세 곳에 그쳤다. 특히 도쿄는 29년째 순유입이 이어졌으며 반대로 나고야권은 12년 연속 순유출을 기록했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의 카케가와 우노 일본리서치센터 연구원은 정책 효과가 확인되지 않은 이유로 취업에 대한 어려움과 도·농간 소득 격차, 5년 이상 의무 거주 요건 등을 꼽았다. 금전적 혜택을 받으려면 가구 구성원 중 최소한 한 명이 창업·이직·원격근무를 해야 하는데 일본 고용구조가 대면 노동에 기반을 두고 있는 데다가 취업의 기회가 도쿄에 집중돼 있다. 또 2022년 기준 도쿄의 월평균 소득은 37만5500엔인 반면 아오모리현은 24만7600엔에 불과하다.

    100만 엔이 소득 감소분을 보충할 수 있지만 대부분 이주비용, 새집 마련, 자녀 학교 교육 및 교육프로그램 등을 고려했을 때 빠르게 소진되는 경우가 많다.

    정책 효과를 떨어뜨리는 또 다른 요인으로는 5년 이상 의무 거주 요건이 지목된다. 5년을 채우지 못하고 이사하면 지원금을 뱉어내야 한다. 이는 장기 정착을 유도하기 위한 장치지만, 실제로는 제도 참여를 망설이게 하는 억제 요인으로 작용한다. 경제 상황이 바뀌거나 직장을 잃었을 때, 혹은 개인 사정이 생겼을 때 도쿄로 돌아갈 수 없는 경직성이 젊은 가구의 선택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지방 이주 정책이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단발성 현금 지원을 넘어 광범위한 취업 지원, 원격근무 기반 확충, 보육·교육·의료 인프라 개선 등 촘촘한 접근을 통해 가구가 비슷한 생활 수준을 유지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본의 사례는 지방소멸 대응을 추진 중인 한국에도 정책의 성패는 ‘돈’이 아니라 ‘삶의 조건’을 얼마나 바꾸느냐에 달려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다는 평가다.

    [이투데이/변효선 기자 (hsbyu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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