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튼홀대 경제학과 조교수이자 전 보스턴 연준 금융경제학자인 다니엘 잔잘라리는 4일(현지시각) 파이낸셜타임스(FT) 칼럼에서 암호화폐·디지털 지갑 논의에서 핵심은 토큰 규제가 아니라, 디지털 지갑을 누가 설계하고 통제하느냐이며, 이 구조가 개인의 온라인 자유와 권리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했다.
디지털 지갑은 단순히 암호화폐 토큰을 보관하는 장소가 아니라 신원을 확인하고, 금융 및 사회, 심지어 정부 시스템과 연결해주는 소프트웨어 플랫폼 전체를 뜻한다.
비트코인 [사진=로이터 뉴스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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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페이 같은 기존 지갑 서비스는 은행·카드사·다른 빅테크와 경쟁을 벌이는 구조라 영향력이 일정 부분 견제되지만, 암호화폐 지갑은 중개자를 거치지 않고 이용자를 블록체인 네트워크와 탈중앙화 앱에 곧장 연결한다.
잔잘라리는 이 때문에 지갑 설계자가 "누가 디지털 경제에 들어올 수 있는지, 어떤 조건으로 거래·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지"를 사실상 정하게 되고,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까지 결합될 경우 한 지갑 안에 금융·개인·공적 정보가 통합되면서 일상생활 전반의 룰을 설계할 막강한 권력이 소수에게 집중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리플(Ripple)처럼 블록체인과 전통 결제망을 잇는 '하이브리드 지갑'이 잘 설계될 경우 속도와 상호 운용성을 높이면서도 단일 주체의 시장지배력을 제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암호화폐 지갑이 경제로 들어가는 사실상의 "새 관문"이 되고, 소수 사업자가 이를 장악할 경우 소셜미디어·모바일 운영체제에서 이미 본 것과 비슷한 플랫폼 독점이 재현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잔잘라리는 따라서 미국이 "토큰을 어떻게 분류할지"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디지털 지갑·디지털 신원 인프라를 누구의 가치와 어떤 경쟁 구조 위에 설계할지에 정책 초점을 옮겨야 한다고 강조한다.
구체적으로는 프라이버시와 상호운용성에 대한 개방적·투명한 기준을 정부가 정하되, 기술·서비스 설계는 민간 경쟁에 맡기고, 국가는 기술을 직접 통제하기보다 경쟁과 이용자 권리를 보호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국제적 사례는 엇갈린다. 중국은 2020년 디지털 위안 기반 국가 지갑을 출시해 국가 안보·치안 기관이 거래·신원 데이터에 직접 접근할 수 있도록 했는데, 결제 정보가 사실상 국가 감시 체계의 일부로 편입될 수 있다는 우려를 키운다.
반면 유럽연합(EU)은 정부가 보증하는 '디지털 신원 지갑'을 통해 회원국 간 상호 운용성을 높이되, 중국처럼 국가가 개인의 모든 결제·신원 정보를 들여다보는 모델은 피하는 쪽을 택했다.
자잘라리는 미국이 디지털 신원 체계를 경쟁과 개인 자유 원칙에 기반해 주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제화 과정에서 정부는 기술을 통제하기보다 경쟁과 권리 보호에 집중하고, 민간 기업이 혁신과 설계 경쟁을 펼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워싱턴의 진짜 시험대는 암호화폐를 어떻게 부를지·어떻게 규제할지가 아니라, 디지털 결제 인프라에 대한 감독이 미국인들의 온라인 자유를 지켜낼 수 있느냐 여부"라고 강조했다.
kwonjiun@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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