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석 케임브리지대 교수 |
현대 문명의 역사를 좀 크게 본다면 인류는 항상 에너지에 굶주려서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라고 해도 큰 과장은 아니다. 인구는 계속 늘어나고, 그 많은 인구가 옛날에는 없었던 물건들을 만들어 소비하고, 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활동을 개발해서 즐기는데, 그것이 다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다. 점점 많은 에너지를 확보하는 것이 문명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 요건이 되고, 기존의 에너지 자원이 고갈되면 다른 종류의 자원을 개발해 왔다. 인간은 나무를 벌목하여 생태계를 파괴하고, 그 다음에는 화석연료를 대량 발굴하여 공해와 기후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풍력이나 태양열 등 친환경적 에너지 자원은 아직 한계가 있고, 핵분열을 이용한 원자력은 큰 사고가 날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방사능을 뿜어내는 부산물들을 처리할 해결책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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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미래의 꿈 핵융합발전
프랑스에 거대 연구시설 건설
한국도 개발과 건설에 참여해
같이 누릴 국제협력의 결과물
지난 10월 프랑스 남부 카다라슈의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건설 현장. 현재 진척률은 85% 정도다. [사진 IT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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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융합, 이상적 에너지의 원천
이러한 상황에서 핵융합(nuclear fusion)은 원칙적으로는 더 바랄 것이 없는 이상적 에너지의 원천이다. 원료도 풍부하고, 부산물도 무해하기 때문이다. 핵분열 과정에서는 우라늄이나 플루토늄 등의 무거운 원자가 쪼개지며 미미한 양의 질량이 사라지면서 에너지로 변환되는데, 이상한 것은 아주 가벼운 원자들을 합치게 해도 그 과정에서 미미한 양의 질량이 사라지면서 에너지로 변환된다. 수소원자들이 결합하여 헬륨을 생성하는 핵융합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나오는가는 너무나 명백하다. 그것이 수소폭탄의 원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에너지를 쓰기 위하여 수소폭탄을 터뜨릴 수는 없고, 수소원자를 서로 조용히 결합하게 해야 하는데, 그것이 힘들다. 태양에서 나오는 에너지도 핵융합에 의한 것인데, 태양의 내부는 엄청난 고온과 고압 상태이기 때문에 핵융합이 가능하다. 수소폭탄을 점화하는 데는 원자폭탄을 터뜨려야 한다. 그런 극단적 수단을 동원하지 않고 핵융합을 가능하게 해 주는 시설을 토카막(tokamak)이라고 한다. 이것은 핵융합 연료를 플라스마로 만든 후에 강한 자기장을 사용하여 도넛 형태로 잡아놓은 상태에서 뜨겁게 만드는 장치이다. 그런데 이렇게 쉽게 얘기했지만 사실은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고, 핵융합으로 조용히 실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를 뽑아낸다는 것은 아직 꿈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꿈을 꾸준히 추구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모여서 현재 건설 중인 시설이 있는데,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지방의 시골에 있는 ITER이라고 한다. 국제 열핵융합 실험로(International Thermonuclear Experimental Reactor)라는 말의 약자이다. 1950년대부터 각국에서 각종 토카막을 지어서 연구하고 있지만 제대로 성과를 올린 곳은 아직 없다. 실패를 거듭하며 얻은 결론은 그 시설을 엄청난 규모로 지어야 한다는 것이었고, 한 국가에서 하기는 힘들다고 판단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경제적으로 중요한 과업일수록 국가 간 경쟁과 견제가 심하기 때문에 협력이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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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황을 바꾸어 준 것은 1980년대에 소련을 과감히 개혁하고 냉전 종식에 결정적 기여를 했던 고르바초프 서기장이었다. 1985년도에 미국 레이건 대통령과 가졌던 정상회담 중 고르바초프는 미·소간 핵무기 경쟁을 자제하되, 평화적 과학기술 협력의 일환으로 핵융합 연구시설을 마련하자고 제의하였다. 소련에서 이 제안을 했다는 것은 역사적인 의미가 컸다. 왜냐면 토카막이라는 아이디어를 처음 낸 것은 소련의 물리학자 사하로프(Sakharov)와 땀(Tamm)이었고, 실제로 토카막을 처음 지은 것도 소련이었다. 고르바초프의 획기적 제안 1년 후 소련·미국·유럽연합·일본이 머리를 맞대고 막강한 핵융합 연구 연맹을 형성하였다. 그 후 캐나다도 가세했고, 2003년에는 중국과 한국도 참여하게 되었다. 한국도 1995년에 시작했던 KSTAR 토카막 프로젝트를 통해 핵융합 연구의 상당한 역량을 키우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국제 협력은 쉽지 않았다. 협정을 체결하고 ITER시설의 설계까지 마친 후에 실제 비용을 투자하는 데 대해서 미국은 한동안 시큰둥한 태도를 보였다. 소련이 붕괴하고 ITER의 파트너로 남은 러시아는 경제적 어려움과 정치적 혼란을 겪으며 이런 큰 국제협력을 주도할 역량이 없었다. 미·러가 뒷전으로 물러나면서 주도권을 잡은 유럽과 일본이 서로 시설을 유치하려는 줄다리기가 벌어졌고, 결국 프랑스로 정하는 데까지 많은 진통이 있었다. 2010년에야 겨우 시작한 공사는 또 여러 가지 기술적 어려움으로 인해 지연되고 예산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총 34조원, 2033년 완공 예정 프로젝트
현재 계획은 2033년에 시설이 완공될 예정이며, 총비용은 약 34조원이 들어갈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국제적 협력 체계는 안정이 되었으며, 궁극적 성과는 예측할 수 없지만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하고 중요한 연구 프로젝트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과학이나 기술의 혁신적 발달은 예기치 못했던 방향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요즈음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인공지능도 20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별 가능성이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남달리 어떤 가능성을 감지한 선구자들은 계속 연구를 추구하였고, 그 결과 놀라운 성과를 이루게 되었다. 핵융합 에너지가 실용화하지 못한다는 보장도 없다. ITER 프로젝트가 결실을 맺게 된다면, 대한민국도 당당히 참여하여 도왔던 지난한 국제 협력의 결과가 될 터이니 더욱 의미가 있을 것이다.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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