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전경. 1997년 이 새로운 미술관을 세상에 내놓은 프랭크 게리가 지난 5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의 자택에서 96세로 별세했다. [AF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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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물고기가 솟구쳐 오르는 듯한 반짝이는 은빛 미술관은 그 자체로 한 점의 조각품 같다. 1997년 스페인 북부 해안의 쇠퇴해 가던 산업도시 빌바오에 구겐하임 미술관을 설계, 시대의 아이콘으로 만든 건축가 프랭크 게리(아래 사진)가 세상을 떠났다. 96세.
그의 회사인 게리 파트너스 LLP 측은 지난 5일(현지시간) “게리가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모니카의 자택에서 짧게 호흡기 질환을 앓던 끝에 별세했다”고 밝혔다. 게리는 ‘21세기 건축의 재즈 연주자’라 할 만큼 가장 급진적이고 창의적인 건축가였다. 60년 건축 인생에 70여 점의 작품을 남겼다. 네모반듯한 건물들 사이에 구겨진 듯, 짓다가 만 듯한 형태로 들어선 그의 건물은 단조로운 도시 풍경을 바꿨다. 한국에도 여러 차례 방문, 특히 종묘에 대해 “우주적 무한함이 느껴진다”고 찬사를 보냈다.
그는 1929년 캐나다 토론토의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의 철물점에서 일을 돕던 경험은 일상적 재료에 대한 애정을 키웠고, 매주 외할머니가 시장에서 가져온 살아있는 잉어를 욕조에 넣고 관찰한 경험은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물고기 이미지에 영감을 줬다. 1947년 가족을 따라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해 다운타운의 월세 50달러짜리 비좁은 아파트에서 살았다. 서던캘리포니아대(USC)에서 도예를 전공하다 건축으로 바꿨고, 군 복무를 마친 후 하버드에서 도시계획을 공부했다.
그의 인생작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은 개관 첫해에만 130만 명을 불러모았다. 이는 ‘빌바오 효과’라 불리며 전 세계 지자체의 랜드마크 건축에 불을 지폈다. 장미 꽃송이가 피어나는 듯한 외관의 LA 월트디즈니 콘서트홀(2003), 유리를 불어 만든 것 같은 형태의 파리의 루이뷔통 재단 미술관(2014)도 한눈에 그의 작품임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개성이 넘친다. 국내에선 2019년 서울 청담동에 들어선 ‘루이뷔통 메종 서울’이 그가 설계한 건물이다.
그는 1989년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받으며 명성을 얻었다. 시작은 1978년 샌타모니카의 자기 집. 합판·골판지·체인을 입힌 거친 건물이었다. 인근 주민들의 반발도 불렀지만, ‘건축의 민주주의’라는 평가도 받았다. 그는 “동네의 평범한 재료를 활용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게리는 건축계의 아웃사이더였다. 그는 ‘적은 것이 아름답다(Less is More)’는 미스 반 데어 로에 식의 모더니즘 건축을 엘리트주의로 봤다. 각진 철골과 유리 건물은 생활과 동떨어져 있으며, 실현 불가능한 유토피아를 지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에 비하면 게리의 울퉁불퉁한 건물은 인간 삶의 혼란스러움을 그대로 환기하는 듯했다. 그의 건축은 규칙을 깨려는 의지이자 건축의 형식적 어휘를 확장하려는 열망으로 읽히곤 한다.
그는 영화 ‘심슨 가족’에서 종이를 구겨 건물을 설계하는 건축가로도 그려졌다. 유쾌한 건물만큼이나 캐릭터로 대중에게 웃음을 준 셈이다. 게리는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을 설계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1867~1959) 이후 가장 유명한 미국의 건축가였다. 건축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환기하고, 그의 작품을 보는 이들에게 기쁨과 분노, 더 나은 환경에서 살고자 하는 열망을 끌어냈다.
권근영 기자 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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