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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8 (목)

    이슈 미술의 세계

    화폭으로 옮겨간 영화 '서브스턴스'… 美의 규범을 파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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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경제

    장파의 'Gore Deco - Stupidity' 국제갤러리


    배우 데미 무어가 괴물처럼 변신하는 영화 '서브스턴스'의 장면이 떠오른다. 영화에서 아름다움과 젊음에 집착하던 주인공 엘리자베스는 약물을 투여한 후 부작용으로 몸이 뒤틀리며 괴물처럼 변한다. 장파 작가의 신작은 그 장면을 회화로 옮긴 듯하다. 살갗이 찢어지고 내장이 뒤섞인 그로테스크한 화면을 통해 여성의 몸이 말하는 순간을 보여준다.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에서 열리는 장파의 개인전 '고어 데코(Gore Deco)'는 아름다움에 대한 고정관념을 파괴하는 전시다. 전시 제목은 피범벅이라는 뜻의 고어와 장식을 뜻하는 데커레이션의 합성어다. 작품은 장식이 저급하다는 편견, 여성의 몸을 대상화하는 시선을 작품 곳곳에서 비튼다.

    서양 미술사에서 색은 오랫동안 감정적이고 여성적이며 비본질적인 요소로 취급됐다. 작가는 이러한 위계를 뒤집기 위해 일부러 소녀적이고 유치하다고 여겨지는 파스텔 색조를 과감히 사용했다.

    작가는 조르주 바타유의 철학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바타유는 저급하고 비천하다고 여겨진 물질적 감각을 재조직하고 재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작가는 이 개념을 적극적으로 끌어와 작품 속 내장기관과 생식기, 눈 등을 같은 선상에서 놓고 뒤섞는다. 고상함과 저속함의 경계가 무너진 위계 없는 신체다. 흑백 판화와 드로잉도 함께 걸렸다. 색이 제거된 화면 속에서 비틀린 신체의 형상이 더욱 또렷하게 드러난다.

    '플랫 홀' 시리즈는 여성 재현의 역사를 탐색한다. 중세 마녀의 이미지, 여성의 출산 능력을 형상화한 고대 조각상 등이 등장하며 여성을 평평하게 단순화해온 시각을 비판한다. 여성의 신체가 어떻게 기호화됐는지 드러난다. 작가의 작업 세계에는 개인적 경험도 짙게 배어 있다. 그는 00학번으로, 20대 초반 인터넷이 활성화되며 여성 혐오적 언어가 노골적으로 퍼져나가던 시기를 겪었다. 작가는 "윗세대 페미니즘 미술이 하지 못한 것을 어떻게 이어갈 수 있을까 고민해왔다"고 밝혔다. '타투 시가렛 피어싱'은 인터넷에서 문신과 담배, 피어싱을 한 여성들에 대한 편견과 조롱을 비판하는 작품이다. 전시는 내년 2월 15일까지.

    [정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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