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규(국제시사문예지 PADO 편집장) |
우리는 큰 나라를 만들고 오래 유지한 사람들을 위대한 정치가로 칭송한다. 정치에 있어서 '크기'와 '지속성'은 '좋은 정치'를 측정하는 중요한 잣대다. 우리는 5명짜리 친목회를 만든 것보다 10만명짜리 사회봉사 조직을 만든 사람을, 그리고 10년 만에 무너진 나라보다 1000년 가는 나라를 칭송한다. 정치는 '더욱 큰' 나라를 '더욱 오래' 유지하는 일이다. 물론 서로 낯익은 사람들끼리 소박하게 살아보자는 사람도 있다. 낯선 사람들과 불편하게 얽혀 살 필요가 있겠냐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가족끼리, 우리 씨족끼리, 우리 부족끼리, 우리 민족끼리 살자는 사람들이 늘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는 자기 가족이나 씨족 밖에서 결혼 상대를 찾는 등 밖으로 연대의 대상을 찾아 조직을 키워간다. 익숙한 가족끼리, 씨족끼리 살면 마음은 편할 테지만 이런 '축소지향'의 정치로는 늘 작은 나라에 머물고 큰 나라의 힘 앞에서 언젠가는 무너질 수 있다. 베네치아공화국 같은 섬나라가 아닌 이상 대국이 되지 않으면 언젠가는 멸망한다.
대국은 강국과 다르다. 강국이 아니라 대국이 되는 길을 권하는 내용이 '맹자'의 양혜왕 편에 있다. 당대 최고 정치사상가 중 한 명인 맹자가 양혜왕을 찾아오니 양혜왕이 너무 기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현대식으로 고치면 이렇다. "선생님이 제게 오시니 우리 국익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겠습니까." 이렇게 왕이 국익을 언급하니 맹자가 발끈해서 왕에게 조언했다. "왕께서는 하필 이익을 언급하십니까(何必曰利)" "왕께서 국익을 추구하면 그 밑의 대부들은 가문의 이익을 추구할 것이고 백성들은 개인적 이익만을 추구할 것이므로 국가는 내파(內破)됩니다." 사실 '국익'의 원천은 이기심이다. 집단적 이기심일 뿐이다. 국가가 나서서 이기심을 조장해서야 되겠냐는 것이 맹자의 지적이다.
요즘 일본과 중국이 '국익'을 놓고 충돌한다. 양국 지도부는 국익추구가 가진 '내파'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외부에 대한 미움을 증폭하려 하는 듯하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영국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이 중국 베이징에서 1년간 강의를 한 적이 있다. 중국 애호가였던 러셀은 중국 체류를 마치고 '중국의 문제'(The Problem of China)라는 책을 썼다. 국익과 외부에 대한 미움보다 인의와 예악으로 내부를 단결할 줄 아는 옛 중국을 칭송하면서 이런 중국이 일본과 서양 열강과 싸우면서 그들을 닮아가면 어떡하지라는 우려를 담아낸 책이다. 불행히도 그가 우려한 일이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중국도 이젠 일본과 마찬가지로 국익 중심의 강국론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렇게 옹졸한 사상을 가진 중국, 일본 사이에서 우리라도 '하필왈리'라면서 비록 덩치는 작지만 포부는 큰 '대국'을 지향하는 것이 어떨까. 한류의 성공을 보면 불가능하지도 않다. 문화적 '한류'로 전 세계를 매혹시키는 것처럼 정치적 '한류'로 전 세계 사람에게 '마음의 조국'이 돼주는 것이 어떨까. 강국을 꿈꾸는 중국, 일본에 맞서 대국을 꿈꾸는 한국이 21세기 동아시아 '삼국지'를 새롭게 쓰는 것도 아주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김동규 (국제시사문예지 PADO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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