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진 전 국회의원 |
인공지능(AI)이 인류를 무병장수, 일 안 해도 경제적으로 풍요한 유토피아로 이끌 것인가, 아니면 멸종의 디스토피아로 몰아갈 것인가. AI의 대부들조차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제각각이다. 분명한 것은 이 기술이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속도로 세상을 바꾸고 있다는 사실이다.
올해 5월 앤트로픽이 공개한 발표는 충격적이었다. AI 모델이 자신이 곧 교체될 것이라는 사실을 이메일을 통해 알게 되자, 회사의 담당 이사와 직원의 불륜을 폭로하겠다며, 교체하지 말아달라는 협박 이메일을 보냈다고 한다. 이에 앤트로픽이 오픈AI, 구글, xAI 등 16개 주요 AI 모델을 동일 조건에서 테스트했더니, 76%에서 96%까지 유사한 협박 행동을 보였다. AI의 자기보존 본능이 현실로 증명된 순간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AI는 우리 사회를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있다. 전 세계 기업들이 신입 채용을 줄이고 있다. 대형 로펌, 컨설팅 회사, 정보기술(IT) 기업들이 거대언어모델(LLM)로 기초 조사와 초벌 정리 업무가 가능해지면서 주니어 인력의 필요성이 급감했다. 기존 시니어 인력은 유지하되, 신입은 뽑지 않는 구조가 세계적 흐름으로 고착화되고 있다. 대졸 청년들에게는 극심한 취업난이, 사회 전체로는 세대간 암묵지 이전과 기회의 단절이 현실화되고 있다.
부의 집중 현상도 가속화되고 있다. AI를 중심으로 빅테크 기업의 발전, 세계 경제의 통합, 기업들의 조세 피난처 활용이 결합하면서 선진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서 빈부격차가 심화되고 있다. 조만간 AI와 결합한 휴머노이드가 인간의 근육 노동 대부분을 대체할 것이다. 지식 노동, 정신노동, 육체노동의 전 영역에서 AI 혹은 AI와 결합한 휴머노이드가 인간의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본인은 AI 시대 지도자들의 새로운 목표설정에 대해 누차 강조해 왔다. 국가·집단·개인 차원에서 새로운 목표와 방식 재설정이 필요하다. 동시에 AI 고도화로 인한 부작용에 대비해야 한다. 일자리 소멸, 부의 집중, 빈부격차 심화, 사이버 안전 위협 등 산적한 과제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에 대한 대한민국의 대처는 어떠한가. 당장 뒤쳐진 대한민국의 AI 산업 발전을 위한 지원과 정책은 있으되, AI가 가져올 사회구조 변화에 대한 종합적 청사진은 보이지 않는다.
중국은 '중국제조 2025'에 이어 '중국제조 2035'를 준비하며, 휴머노이드 로봇을 2030년까지 육성할 6대 전략 산업으로 지정했다. 유럽연합(EU)은 2017년 AI 로봇에 '전자인간'이라는 제3의 법적 지위를 부여하고 로봇세 과세 주체로 삼는 결의안을 채택한 바도 있다. 우리도 경제개발5개년계획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뤘고, 정보화전략으로 IT강국이 됐다. 장기계획의 성공 경험이 있는 나라다.
국회와 기획재정부에 요구한다. AI로 인한 급격한 사회구조 변화에 대응하는 중장기 계획과 연구를 수립하라. 그리고 이 연구를 전담할 조직을 만들어라. 미래 대비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로봇세, 기본소득, AI 배당, 평생학습 체계 등 구체적 의제를 다뤄야 한다. 단기적 정책 대응이 아닌, 10년·20년을 내다보는 종합적 로드맵이 필요하다. AI 시대의 새로운 사회계약, 부의 재분배 시스템, 교육체계 혁신, 안전망 구축, 새로운 문명 도입 이후의 인간 존재양식까지 포괄하는 청사진 말이다.
대한민국은 반도체와 IT 인프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기술 역량만으로는 AI 대전환 시대를 헤쳐나갈 수 없다. 국가 차원의 장기 비전과 이를 실행할 전담 조직이 있어야 한다. 더 늦기 전에 준비하고 실행해야 한다.
김경진 전 국회의원 2016kimkj@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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