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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8 (목)

    [기자24시] 국립중앙박물관 유료화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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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경제

    정유정 문화스포츠부 기자


    용돈이 늘 부족하던 대학 시절, 박물관은 시간을 보내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였다. 특히 무료로 관람할 수 있던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을 자주 찾았다. 자연스레 최애 작품도 생겼다. 토끼 세 마리가 앙증맞게 향로를 떠받치고 있는 '청자 투각 칠보 무늬 향로'와 어미 개와 꼬무락대는 강아지를 귀엽게 묘사한 이암의 '모견도'를 보며 미소를 짓곤 했다. 이처럼 상설전 무료 정책은 경제적 여건에 관계없이 누구나 문화 향유의 기회를 누릴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긍정적 영향을 미쳐왔다. 올해 국립중앙박물관이 누적 관람객 600만명을 돌파하며 세계 5위권 박물관으로 발돋움한 것도 무료 정책에 힘입은 바 크다.

    하지만 최근 제기되는 상설전 유료화 주장에 전적으로 반대하기는 어렵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운영비와 유물 구입 예산이 현저히 낮기 때문이다. 올해 국립중앙박물관의 소장품 구입 예산은 30억7900만원으로 5년째 동결 중이다. 이는 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20분의 1, 영국박물관의 5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2022년 간송미술관이 운영난으로 국보 2점을 경매에 내놓았을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은 예산 제약으로 두 점을 동시에 확보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공공 컬렉션의 최종 보루가 돼야 할 국립박물관이 재정 문제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이다.

    이 같은 한계를 감안해 유료화의 필요성을 일부 인정할 필요가 있다. 다만 유료화 자체가 곧바로 해법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분명히 해야 한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의 굿즈 판매 수익이나 특별전 입장 수입 등 모든 자체 수입은 국고로 귀속된 뒤 다시 예산으로 배분되는 구조다. 상설전 유료화로 수익이 늘어나더라도 그 재원이 박물관으로 되돌아온다고 장담하기 어렵다.

    유료화가 박물관의 소장·연구·전시 역량 강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관련 법과 재정 구조에 대한 논의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 유료화 논의의 핵심은 관람객이 부담한 비용이 박물관의 역량 강화로 되돌아오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정유정 문화스포츠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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