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1.01 (목)

    “돈으로 회춘? 증거없어” 이 방법 뿐이라는데…무설탕 요구르트·걸어서 출퇴근·유전자 [사이언스라운지]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사진=픽사베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인류의 영원한 꿈은 불로장생이다. 늙지않고 장수하고 싶다는 꿈. 고대 로마 황제나 진시황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2025년 현재 실리콘밸리의 억만장자들은 죽음을 ‘치료 가능한 질병’으로 규정하고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고 있다. 해파리나 히드라처럼 세포를 리셋해 젊음을 되찾겠다는 이른바 ‘회춘 프로젝트’다.

    그런데 이같은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사설이 최근 권위 있는 국제학술지 영국의학저널(BMJ)에 실렸다. 제목부터 섬뜩한 ‘크리스마스 2025: 블랙 미러, 장수 의학의 과학’이다. 이 사설을 토대로 화려한 마케팅 뒤에 숨겨진 장수 산업의 허와 실을 살펴본다.

    돈으로 사는 젊음? “확실한 증거 없다”
    글로벌 장수(Longevity)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 중이다. 제약, 화장품, 웰니스 산업이 뒤섞인 이 시장 규모는 2023년 기준 약 636억달러(약 89조원)에 달한다. 시장규모는 2030년까지 연평균 21.5%씩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일부 병원에서는 ‘생물학적 나이’를 측정해주는 고가의 검사들도 나오고 있다. 과학적으로 근거가 아주 없는 건 아니다. 노화는 단순히 시간이 흐르는 게 아니라, 유전체가 불안정해지고, 세포의 배터리인 미토콘드리아가 고장나며, 염색체 끝부분인 ‘텔로미어’가 닳아 없어지는 생물학적 과정이다.

    최근 주목받는 기술은 ‘후성유전학적 시계(Epigenetic clocks)’다. DNA에 달라붙은 화학물질(메틸화) 패턴을 분석해, 신체 나이가 실제보다 얼마나 늙었는지, 언제 병에 걸릴지 예측한다. 인공지능(AI)은 방대한 데이터를 돌려 노화의 ‘징후(signature)’를 찾아내고 있다. 미래에는 피 한 방울로 암이나 치매를 미리 막는 ‘액체 생검’이 보편화될 수도 있다.

    이런 진단 기술을 등에 업고 ‘바이오 해킹(Biohacking)’ 시장이 춤을 춘다. 바이오 해킹이란 첨단 기술이나 약물, 식단 등을 활용해 자신의 몸을 마치 컴퓨터처럼 해킹하듯 통제하며 신체 능력을 극대화하고 노화를 늦추려는 시도를 뜻한다.건강한 사람들이 당뇨병 약인 ‘메트포르민’이나, 면역 억제제인 ‘라파마이신’, 혹은 ‘NAD+ 전구체’ 같은 물질을 영양제처럼 먹는다. 동물 실험에서 수명을 늘리고 노화 지표를 개선했다는 연구 결과들 때문이다.

    하지만 BMJ 사설의 저자들은 냉정하다. “동물 실험이나 소규모 임상에서 가능성은 봤지만, 건강한 성인이 이 약을 먹고 실제로 수명을 늘렸다는 확실한 증거는 아직 없다”는 것이다.

    검증되지 않은 상업적 서비스는 ‘건강 염려증’만 키울 뿐이다. 의학적으로 정립된 ‘생활습관 의학’과 상업적인 ‘장수 비즈니스’는 엄연히 다르다.

    117세 장수노인의 식탁에 놓여져있던 것은
    그렇다면 과학이 검증한 진짜 비결은 무엇일까. 지난해 세상을 떠난 세계 최고령자 마리아 브란야스 모레라 여사의 사례는 세계의 주목을 끌었다. 스페인 연구팀이 그의 유전자와 생활 습관을 3년간 정밀 분석한 결과, 그의 생물학적 나이는 실제 나이보다 23년이나 젊었다.

    그의 장수 비결은 비싼 영양제가 아니었다. 그는 매일 ‘무설탕 요구르트’를 3병씩 섭취했다. 분석 결과 그의 장 속에는 노화를 막고 염증을 줄여주는 유익균인 ‘비피도박테리움’이 가득했다. 보통 나이가 들면 급격히 줄어드는 균인데, 꾸준한 요구르트 섭취가 이를 지켜낸 것이다.

    물론 타고난 유전자도 한몫했다. 그는 심장과 뇌세포를 보호하는 유전자 변이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연구팀은 유전자가 전부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좋은 생활 습관이 유전자의 스위치를 켜고 끄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좋은 유전자가 없어도, 생활 습관이 유전자의 스위치를 켜고 끌 수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사망 위험 47% 뚝…‘유전자’ 이기는 ‘움직임’
    BMJ 사설이 꼽은 가장 강력한 장수 비결은 ‘신체 활동’이다. BMJ는 주 150분의 중강도 유산소 운동과 주 2회 근력 운동이 심혈관 질환 사망률을 23%, 제2형 당뇨병 발병률을 26% 낮춘다고 명시했다. 운동을 하면 근육에서 ‘마이오카인(myokines)’과 ‘엑소카인(exokines)’이라는 물질이 뿜어져 나온다. 이 물질들은 대사 기능을 개선하고, 세포의 수명 시계인 ‘텔로미어’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실제 국내외 연구 결과를 보면 일상 속 움직임의 위력은 더 놀랍다. 영국 글래스고대 연구팀이 8만여 명을 추적 조사한 결과,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은 차를 타는 사람보다 사망 위험이 47%나 낮았다. 암으로 사망할 위험은 51%, 심혈관 질환 사망 위험은 37%나 감소했다.

    걸어서 출퇴근하는 것만으로도 병원에 입원할 위험이 11% 줄어들었다.

    “나는 장수 유전자가 없어서 글렀어”라고 포기할 필요도 없다. 미국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 연구에 따르면, 장수 유전자가 없어도 신체 활동을 활발히 한 사람은 사망 위험이 낮았다. 앨러딘 샤드얍 교수는 “사람이 오래 사는 데 유전적 요인보다 신체 활동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단언했다.

    장수는 부자들의 특권이 아니다
    최근 의학계는 AI와 빅데이터를 활용해 개인의 노화 속도를 예측하는 정밀 의학으로 나아가고 있다. 하지만 기술이 발전할수록 ‘건강 불평등’에 대한 우려도 커진다.

    BMJ 사설은 “건강 수명을 늘리는 것이 부유하거나 정보가 빠른 사람들의 특권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꼬집었다. 수천만 원짜리 줄기세포 시술보다, 동네 마트에서 파는 요구르트와 매일 아침 자전거 페달을 밟는 습관이 더 과학적인 장수 비법이라는 뜻이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