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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26 (금)

    美 극작가 테네시 윌리엄스의 '유리 동물원' 초연 [김정한의 역사&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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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4년 12월 26일

    뉴스1

    '유리 동물원' 브로드웨이 공연 (출처: Unknown (Billy Rose Theatre Collection), 1945,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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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944년 12월 26일, 미국 시카고 시빅 오페라 하우스에서 무명의 극작가 테네시 윌리엄스의 자전적 희곡 '유리 동물원'(The Glass Menagerie)의 막이 올랐다. 관객들은 자신들이 연극사의 한 페이지가 넘어가는 순간을 목격하고 있음을 직감했다.

    이 작품은 작가의 개인적인 기억을 바탕으로 한다. 무대는 1930년대 세인트루이스의 초라한 아파트를 배경으로 하며, 과거를 회상하는 화자 '톰'의 내레이션으로 시작된다. 거대한 사회적 격동기 속에서 소외된 한 가족의 내밀한 심리를 다룬 이 작품은 기존의 사실주의 연극과는 궤를 달리하는 몽환적이고 시적인 연출이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날 공연의 중심에는 과거의 영광에 매몰된 어머니 '아만다' 역의 로레트 테일러가 있었다. 한때 무대를 풍미했던 그는 이번 복귀작에서 신경질적이면서도 처연한 모성애를 완벽하게 구현하며 '전설적인 귀환'이라는 찬사를 끌어냈다. 수줍음 많고 위태로운 딸 '로라'와 현실 탈출을 꿈꾸는 '톰'의 갈등은 은유적인 조명과 배경음악 속에서 더욱 극대화됐다.

    특히 로라가 아끼는 유리 장식품들이 부서지는 장면은 현대인이 마주한 이상과 현실의 충돌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백미였다. 관객들은 화려한 액션이나 자극적인 반전이 없음에도, 인물들이 겪는 고독과 상실감에 깊이 공감하며 숨을 죽였다.

    초연 직후 비평가들은 "미국 연극계에 새로운 거장이 등장했다"며 입을 모았다. "언어의 마술사"라 불릴 만큼 유려한 대사와 인물들의 심리 묘사는 테네시 윌리엄스를 단숨에 가장 주목받는 작가의 반열에 올렸다.

    '유리 동물원' 시카고에서의 성공적인 출발에 힘입어 이듬해 뉴욕 브로드웨이로 진출했다. 이 작품은 한 가족의 비극을 넘어, 무너져가는 아메리칸 드림의 이면과 인간 영혼의 취약성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는 평가를 받았고, 장기 흥행으로 이어졌다.

    acene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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