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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01 (목)

    무대공포증 음악천재, 무대 밖에서 황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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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경제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 Sony Music Entertain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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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적인 연주자였지만 무대와 청중을 기피했다. 불특정 다수가 자신을 지켜보는 상황을 공포스러워했다. 전 세계 순회 공연을 다닐 때는 명확한 의학적 증거가 없는 복통과 설사, 근육통, 호흡곤란을 겪었다. 인기가 절정에 달할 때 공연에서 은퇴하고 스튜디오와 녹음실, 라디오로 숨어들었다.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걸출한 해석자이자 20세기를 통틀어 독보적인 피아니스트로 불린 '글렌 굴드'의 이야기다.

    굴드의 생전 약 20년간 그와 활발한 우정을 나누었던 의사이자 심리학자인 피터 F 오스트왈드가 쓴 전기 '글렌 굴드: 피아니즘의 황홀경'은 그의 가족, 교류했던 동료와 음악가, 친구 등 수많은 이들의 인터뷰와 병원 기록들을 통해 스포트라이트 밖의 굴드의 모습을 조명한다. 탄생부터 별세까지의 일대기를 촘촘히 그리면서도 그의 천재성에 수반된 괴짜스러운 면모를 이해하려는 시도다.

    저자에 따르면 굴드는 1956년 미국 음반회사 컬럼비아 녹음부와 함께 출시한 음반 '골드베르크 변주곡'으로 23세에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전 세계에서 공연 요청이 쇄도하는 상황. 연주자라면 반길 상황이지만 굴드는 힘들어했다. 그는 청중들이 연주자의 실수를 기다리는 존재라며 두려움을 감추지 않았다. 엄숙한 클래식 공연에서 기행처럼 보이는 그의 연주 자세와 습관도 문제가 됐다. 언론과 청중은 다리를 꼰 채 건반 위에 웅크리고 연주하는 굴드의 모습을 비웃거나 질타했다. 바깥의 지적은 굴드의 내면 깊숙한 자의식을 건드렸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내가 그런 행동을 해왔던 건 오직 음악에만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의식하자 정말 힘들어졌다."

    매일경제

    글렌 굴드: 피아니즘의 황홀경 피터 F 오스트왈드 지음, 한경심 옮김 을유문화사 펴냄, 3만8000원


    견디다 못한 굴드는 30대에 일찌감치 공연 은퇴를 선언하고 스튜디오와 라디오, TV를 통해서만 대중들과 만났다. 실황에서 인간적인 한계로 노출되는 연주 실수와 해석상 착오를 바로잡기에는 녹음실이 그에게 제격이었다. 얼마든지 원하는 대로 녹음하면서 만족스러운 곡을 내놓을 수 있다는 그의 '완벽주의'가 투영된 것이다. 최대한 타인과의 대면을 피하려 했고,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을 두려워한 그의 성격에도 부합했다.

    녹음실 관계자들은 녹음 전 따뜻한 물에 20분간 손을 담그고, 감기에 걸릴까봐 한여름에도 외투를 걸치며, 질병을 두려워해 물과 약병을 상시 챙겨 다니는 그의 모습에 기함했다. 하지만 틀에 박히지 않은 자유로운 그의 연주에 곧 매료됐다. 저자도 녹음실에서 탄생한 굴드의 결과물에 대해 극찬한다. "그의 뛰어난 연주를 제대로 감상하려면 비디오테이프나 레이저디스크로 음악과 함께 황홀경으로 치닫는 그의 모습을 봐야 한다."

    저자는 굴드가 대면 소통을 피하고 음악에 광적으로 몰두한 이유를 어린 시절에서 찾는다. 음악에 조예가 깊었던 어머니는 굴드를 걸출한 음악가로 키우고 싶어했다. 아들이 피아노 앞에서 실수하는 것을 가만두지 않았다. 어린 굴드도 피아노 연주에 방해되는 일을 피했다. 많은 친구와 어울리지도 않았다. 그렇게 스스로를 가둔 고독 속에서 피아노만 찾았다. 저자는 굴드가 생후 3일째 되는 날부터 팔과 손가락을 움직였으며, 잘 울지 않았다는 굴드 아버지의 증언에 근거해 그를 아스퍼거 증후군 환자로 의심하기도 한다.

    저자는 글렌의 뒷모습을 드러내기 위해 전기를 썼다고 말한다. 일찌감치 20세기의 전설이 됐지만, 무대를 피해 녹음실로 숨어든 거장의 가장 인간적인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 원제는 'Glenn Gould: The Ecstasy and Tragedy of Genius'.

    [최현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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