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수도 없이 헤어졌다 피천득 지음, 민음사 펴냄, 1만5000원 |
"신기한 것, 아름다운 것을 볼 때 살아 있다는 사실을 다행으로 생각해본다. 훗날 내 글을 읽는 사람이 있어 '사랑을 하고 갔구나' 하고 한숨지어 주기를 바라기도 한다. 나는 참 염치없는 사람이다."
수필가 피천득의 글은 자신을 낮추는 자리에서 출발한다. 그는 자신의 글을 산호나 진주가 아니라, 젖은 모래 위에서 주워 올린 조약돌과 조가비에 비유한다.
깊은 바다로 나아갈 용기도, 잠수복을 입을 상상도 하지 못한 채 가장자리에서 고른 작은 것들이라는 고백이다. 그러나 그가 조약돌과 조가비로 비유한 그의 글은 한국 문학에서 오래도록 빛을 내왔다.
'악수도 없이 헤어졌다'는 작가의 대표 수필집 '인연'을 바탕으로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아들에게 보낸 편지를 더한 산문집이다. '인연' '은전 한 닢' 등 독자에게 익숙한 작품들이 다수 실렸다. 책의 제목 '악수도 없이 헤어졌다'는 대표작 '인연'에 등장하는 문장이다.
새로 수록된 편지들은 '수영이에게'라는 장으로 묶였다. 작가는 딸 서영이를 향한 사랑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이번 책에서는 아들을 향한 담담하고 절제된 애정이 처음으로 소개된다.
편지들은 작가의 아들인 피수영 박사가 미국에서 신생아 전문의로 일하던 시절 작가가 보낸 글이다. 아들을 향한 걱정과 자식을 멀리 두고 지내던 노년의 적적한 생활 등이 드러난다. 작품 해설은 김지수 작가가 피수영 박사와의 인터뷰를 겸해 맡았다.
"수필은 마음의 산책"이라는 표현은 그의 문학을 압축해 보여준다. 한가하지만 나태하지 않고, 자유롭되 산만하지 않으며, 찬란함 대신 우아함을 택한다. 문장은 날카롭지 않지만 산뜻하다. 인생의 향취와 여운이 남은 태도가 글 곳곳에 묻어난다.
수필 '나의 사랑하는 생활'에 담긴 삶의 태도도 눈에 띈다. 그는 파도 소리에 여전히 가슴이 뛴다고 말하고, 욕망 없이 바라보고 부러움 없이 찬양하는 삶을 소망한다. 여러 사람을 좋아하되 누구도 미워하지 않고, 몇몇 사람을 끔찍이 사랑하며 살고 싶다는 마음을 전한다.
[정유정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