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직장인 A씨는 올해 건강검진 결과지를 보고 안도했다. 당뇨 전 단계로 판정되는 수치였지만, 아직 당뇨로 넘어가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75g 경구 당부하검사는 탄산음료 ‘환타’처럼 오렌지빛을 띠는 용액 250~300mL를 마시고 2시간 뒤 피를 뽑아 혈중 포도당 농도를 잰다. 용액 속에 75g의 포도당이 들어 있다. 혈중 포도당 농도가 200mg/dL 이상이면 재검사를 거쳐 당뇨병으로 확진된다. 이하 그래픽 박지은·이민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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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최근 피곤해 다시 병원을 찾았을 때는 얘기가 달라졌다. 포도당물을 마시고 2시간 뒤 다시 재는 ‘75g 경구 당부하검사(OGTT)’에서 혈당이 당뇨병 범위로 나온 것이다. 재검사를 했을 때도 혈당이 높아 그는 결국 당뇨병 판정을 받았다. 공복혈당(FPG)과 당화혈색소(HbA1C) 모두 당뇨 수치는 아니었지만, 식후 2시간 혈당 검사에서만 당뇨가 들통난, 한국형 당뇨의 전형적 패턴이었다.
대한당뇨병학회가 올해 11월 발표한 ‘2025 당뇨병 진료 합의문’도 똑같은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한국인은 서양인보다 비만도가 낮은데도 인슐린을 분비하는 췌장 베타세포가 취약해 공복 때는 멀쩡하지만 식후 혈당만 치솟는 환자가 많다는 것이다.
이 합의문을 만드는 데 주도적 역할을 맡은 강신애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한국·일본 등 동아시아인에겐 공복혈당과 당화혈색소가 당뇨가 아닌 수치인데도, 식후 혈당만 당뇨 수준으로 튀는 잠복형 패턴이 매우 흔하다”고 말했다.
한국인은 서양인과 비교할 때 췌장 크기도 작고 인슐린 분비 능력도 떨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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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당을 보는 검사는 크게 세 가지다. 공복혈당(FPG), 당화혈색소(HbA1c), 75g 경구당부하검사(OGTT).
우리나라 국가검진은 보통 공복혈당만 표시한다. 직장검진에선 당화혈색소가 추가되기도 한다. 하지만 OGTT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번거롭기 때문에,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잘 하지 않는다.
문제는 공복혈당과 당화혈색소의 한계가 분명하다는 점이다. 공복 상태의 혈당은 얼마인지, 요 몇 달 평균 혈당은 어느 정도인지까지만 알 수 있다. 식사를 한 직후 혈당이 얼마나 변동성이 강한지는 전혀 알 수 없다. 식사 후 2~3시간만에 혈당이 200, 300까지 치솟아도 두 수치엔 거의 반영되지 않는다.
그래서 한국인들에겐 당화혈색소는 정상이지만 사실은 이미 당뇨 직전 상황의 몸 상태가 흔한 편이다. 한국인 당뇨 환자의 30~40%가 당화혈색소는 정상이나 당뇨 전 단계인 그룹에서 발견된다는 보고도 있다.
강 교수는 “검진에서 공복혈당이나 당화혈색소가 정상이어서 안심하고 지내다가, 나중에 OGTT에서 당뇨로 드러나는 경우를 진료실에서 자주 본다”며 “이때 이미 췌장 기능은 상당 부분 떨어져 있다”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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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봉 기자 mole@joongang.co.kr, 영상=정수경 PD, 이가진, 박지은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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