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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31 (수)

    韓 실내 스포츠의 요람 장충체육관 탄생 [김정한의 역사&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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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2년 12월 31일

    뉴스1

    장충체육관 (서울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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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962년 12월 31일, 서울 중구 장충동에 대한민국 최초의 실내 경기장인 장충체육관이 문을 열었다.

    이전까지 제대로 된 실내경기 시설이 없던 한국 스포츠계에 있어 장충체육관의 건립은 현대 스포츠 역사의 실질적인 시작을 알리는 기념비적 사건이었다.

    흔히 장충체육관이 필리핀의 원조로 지어졌다는 설이 있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설계는 한국 건축의 거장 김정수가 맡았으며, 구조 설계와 시공 역시 국내 기술진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특히 거대한 돔 형태의 지붕 구조는 당시 한국의 건축 기술력을 한 단계 끌어올린 성과로 평가받는다. 다만, 당시 한국보다 경제 상황이 나았던 필리핀의 체육관 모델을 참고하거나 일부 기술 교류가 있었던 것이 와전됐다.

    개관 이후 장충체육관은 '실내 스포츠의 성지'로 군림했다. 1960~70년대 국민적 인기를 누렸던 프로레슬링의 김일 선수가 박치기로 상대 선수를 제압하던 곳이 바로 이곳이다. 또한 1966년 김기수가 한국 최초의 세계 복싱 챔피언에 등극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던 장소 역시 장충의 링 위였다. 80년대 들어서는 민속씨름의 부흥과 함께 이만기, 이준희 등 스타들이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천하장사' 타이틀을 놓고 격돌했다.

    스포츠뿐만 아니라 장충체육관은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정치적 사건의 무대가 되기도 했다. 체육관 선거로 불리는 대통령 선거가 이곳에서 치러지며 '체육관 대통령'이라는 신조어를 낳는 등 권위주의 시절의 단면을 간직하고 있다. 이후 2010년대에 들어 전면적인 리모델링을 거쳐 현대적인 다목적 시설로 재탄생했다.

    현재 장충체육관은 프로배구 우리카드와 GS칼텍스의 홈구장으로 사용되며 여전히 팬들의 함성으로 가득 차 있다. 비록 수많은 최신식 경기장이 들어섰지만, 장충체육관이 가진 상징성과 역사적 무게는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한국 현대사의 소중한 자산이다.

    acene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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