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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17 (화)

    이슈 뮤지컬과 오페라

    “노래 없는 뮤지컬?!” 공연계에선 때아닌 ‘장르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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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 오브 파이’, ‘센과 치히로…’

    한국서 뮤지컬로 둔갑한 외국산 연극

    뮤지컬 분류돼 수수료 두배·티켓값 올라

    “경계 무의미” vs “정체성, 통계 혼탁”

    헤럴드경제

    배우 박정민이 8년 만에 무대로 돌아온 ‘라이프 오브 파이’ [에스앤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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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뮤지컬인 줄 알고 노래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어요.”

    배우 박정민, 박강현이 더블 캐스팅된 ‘라이프 오브 파이’를 관람한 관객들 사이에선 요즘 묘한 공감대가 형성된다. 티켓 예매 사이트는 물론 연극, 뮤지컬 게시판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반응 중 하나가 “노래를 기다렸다”는 것. 하지만 무대 위 배우들은 단 한 소절의 노래도 부르지 않는다.

    ‘라이프 오브 파이’는 물론 애니메이션을 무대화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이머시브 공연 ‘슬립 노 모어’까지…. 요즘 한국 공연계는 ‘장르 논쟁’이 뜨겁다. 공연예술 시장은 1조원 시대를 앞뒀지만, 장르간 경계는 모호해지고 격차는 극심해진 상황에서 등장한 현재의 논쟁은 국내 공연계 장르 분류 체계의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28일 공연계에 따르면 해외에서 연극으로 검증된 대작 ‘라이프 오브 파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같은 작품들이 국내 대형 티켓 예매 사이트에선 뮤지컬로 분류돼 관객들이 혼선을 빚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장르적 혼선이 제작사의 상업적 마케팅 전략, 예매 플랫폼의 수수료 구조, 통계 시스템의 자의적 운영이 맞물려 발생한 구조적 결함”이라고 분석한다.

    연출가도 “뮤지컬은 아니”라는데, 한국만 뮤지컬?
    최근 한국 공연계에서 장르 논쟁을 촉발한 작품은 총 세 편이다. 지난해 개막한 ‘슬립 노 모어’를 필두로 ‘라이프 오브 파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이들 세 작품은 압도적 시각 효과와 거대 자본이 투입된 공연이라는 공통점을 안고, 새로운 ‘장르적 정체성’을 부여받았다.

    해외에서 바라보는 세 공연의 장르 규정은 명확하다. ‘라이프 오브 파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분명히 연극으로, ‘슬립 노 모어’는 다원 예술로 분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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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한국에서 공연 중인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CJ EN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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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리타 차크라바르티가 각색한 ‘라이프 오브 파이’는 얀 마텔의 소설을 원작으로 무대화한 작품이다.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에서 평단의 극찬을 받은 무대는 2022년 로런스 올리비에상에서 ‘최우수 신작 연극상’을 포함하여 5관왕을 차지했다. 2023년 토니상에서도 연극 부문의 무대 디자인, 조명 디자인, 음향 디자인상을 수상하며 연극으로서의 예술성을 공인받았다. 작품의 핵심은 정교한 퍼펫(Puppet)의 운용과 영상미, 배우들의 연기를 중심으로 한 연극적 상상력의 극대화에 있다. 등장인물이 노래를 통해 서사를 전달하는 뮤지컬적 문법은 아예 쓰지 않는다.

    하지만 ‘라이프 오브 파이’는 국내 최대 티켓 예매 사이트 놀 인터파크에선 뮤지컬로 분류된다. 심지어 파이 역의 박강현은 뮤지컬 인기 배우인 만큼, 공연에 대한 구체적 정보가 없는 관객에겐 이 작품이 뮤지컬이라는 ‘착시’ 현상까지 더하고 있다.

    존 케어드가 연출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지브리 스튜디오의 동명 애니메이션을 무대로 옮겼다. 앞서 선보인 일본과 영국 등 해외에선 분명히 ‘연극(Stage Play)’으로 분류한 작품이다. 2025년 왓츠온스테이지 어워즈에서 ‘최우수 신작 연극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작품은 노래 두 곡이 포함돼 조연 배우의 입을 통해 배경음악처럼 흘러나오나, 관객들이 그것만으로 뮤지컬이라 느끼기엔 다소 부족하다. 뮤지컬처럼 노래를 통해 대사를 전달하고 감정을 입히는 방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존 케어드 연출가는 “두 곡의 짧은 노래는 뮤지컬 노래와는 다르다. 사람들이 일하거나 휴식을 취할 때 부르는 노래 같은 것”이라며 “이것은 뮤지컬이 아니다”라고 헤럴드경제에 밝혔다. 그는 뮤지컬 ‘레 미제라블’을 연출한 사람이다.

    무엇보다 압도적 ‘아날로그 연극 장치’로 빚어낸 정교한 무대 연출, 인간의 손으로 표현할 수 있는 연극 예술의 극치를 보여준다는 점은 도리어 ‘연극 장르의 새로운 지평’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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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머시브 시어터(Immersive Theater, 몰입형 연극) 돌풍을 불러온 연극 ‘슬립 노 모어’(Sleep no more)‘슬립 노 모어’의 한 장면. [미쓰잭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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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오픈런(종료일을 정해두지 않은 공연)으로 관객과 만나고 있는 펀치드렁크의 ‘슬립 노 모어’는 관객이 가면을 쓰고 무대 위를 자유롭게 이동하며 관람하는 ‘이머시브 시어터’의 대표작이다.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기반으로 하나, 대사 없이 무용과 액션, 공간이라는 제4의 주인공을 통해 구성한다. 현지에선 다원예술 혹은 환경 연극으로 분류한다.

    “연극이라고 하지 말아주세요”…제작사 속사정은?
    “연극이라고 하지 말아주세요.” “뮤지컬로 쓰지 말아주세요.”

    장르가 달라지다 보니, 웃지 못할 귀띔도 나온다. 제작사에선 이들 작품을 연극이라고도, 그렇다고 뮤지컬이라고도 부르지 말아 달라고 당부한다. ‘라이프 오브 파이’는 ‘라이브 온 스테이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스테이지’로 소개된다. 공연계에선 이에 “무대 공연이 라이브와 스테이지가 아닌 장르가 어디 있냐”고 일갈한다.

    공교롭게도 ‘라이프 오브 파이’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국내 굴지의 뮤지컬 제작사가 올린 작품이다. 웃지 못할 상황까지 빚어지나 제작사 입장에선 저마다의 속사정이 있다. 그 핵심에는 예매처의 시스템과 마케팅 논리가 숨어 있다.

    현재 인터파크 등 주요 예매처에서는 작품을 등록할 때 제작사가 직접 장르를 선택할 수 있는 구조다. 제작사들이 뮤지컬을 선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노출도’ 때문이다. 놀 인터파크를 기준으로 예매처 메인 화면의 카테고리 나열 순서는 대개 매출 순위나 시장 점유율에 따라 배치되고 있다. 뮤지컬은 한국 공연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만큼 늘 가장 앞에 자리한다. 반면 연극은 모바일 화면에선 첫 줄 다섯번째, 웹 화면에선 7번째에 자리하고 있다. 그러니 이러한 장르 선택은 단순 착오가 아닌 ‘전략적 선택’인 것이다.

    이종규 한국뮤지컬협회 이사장은 “현재 언급되는 작품들은 대체로 인지도와 흥행성을 갖춘 한편, 제작비가 대단히 높다는 공통점을 띄고 있다”며 “제작사들의 시장 포지셔닝 전략과 마케팅적 고민의 결과”라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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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한국에서 공연 중인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CJ EN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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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공연시장에서 뮤지컬은 대중적 선호도와 상업적 신뢰가 월등히 높은 브랜드다. 공연예술통합전산망(KOPIS)에 따르면 지난해 뮤지컬 매출은 약 5032억 원이다. 대중음악을 제외하고 연극·클래식·오페라·무용·국악 등 대중음악을 뺀 나머지 공연 장르 전체 매출의 2배에 달하는 규모다. 결국 업계에선 제작비가 많이 들고 흥행성을 갖춘 작품일수록 ‘연극’이라는 좁은 틀보다는 상업적 파괴력이 큰 ‘뮤지컬’이라는 외피를 입는 것이 관객 유입에 유리하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다만 그 이면에 놓인 것은 ‘가격의 함정’이다. 워낙 막대한 제작비를 투입한 탓에 이들 공연의 티켓 가격은 VIP석 기준 16~19만원 사이로 형성됐다. 전문가들은 높은 티켓 가격 역시 이들 공연이 장르를 바꾼 원인 중 하나라고 본다. 관객들의 저항을 낮추기 위해서다.

    지혜원 경희대 경영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학과장은 “상대적으로 가격대가 높은 이들 공연을 연극으로 분류할 경우 연극 티켓 가격에 대한 심리적 저항선에 부딪혀 관객들의 반발을 살 수 있다”며 “하지만 뮤지컬의 경우 이미 가격 인상이 꾸준히 이뤄진 상황에서 19만원대 공연에 대해 비교적 수용하는 경향이 있다”고 봤다.

    기형적인 공연 구조와 ‘뮤지컬 프리미엄’ 인식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최승연 뮤지컬평론가는 “상업 대형 연극이 제값을 받지 못하는 시장 환경에서, 제작사들은 높은 제작비를 회수하기 위해 뮤지컬이라는 외피를 빌려 가격 저항선을 무너뜨리고 있다”며 “연극은 무조건 저예산이어야 하고, 화려한 무대 미학과 기술, 스타 배우들이 출연하는 상업 연극을 하면 안 되느냐는 반문이 나온다”고 했다. 지혜원 교수 역시 “연극이라는 장르에 대한 선입견이 팽배하다”고 꼬집었다. 그러니 “연극을 연극이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 같은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또 다른 문제는 두 편의 연극이 뮤지컬로 장르가 달라지며 티켓 가격과 예매 수수료의 간극이 발생했다는 점이다. 예매 플랫폼 놀 인터파크의 경우, 2024년 수수료 인상 이후 뮤지컬의 온라인 예매 수수료는 2000원인 반면 연극은 1000원으로 책정돼 있다. 연극을 뮤지컬로 등록할 경우, ‘장르 명칭’ 하나만으로 건당 1000원의 추가 수익이 나오는 구조가 된다. 이 역시 관객들이 불합리를 토로하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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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박정민 박강현이 출연하는 ‘라이프 오브 파이’ [에스앤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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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르의 정체성 ·기초 통계 혼탁 우려
    장르 분류 논쟁은 비단 관객 불만, 이를 넘어 기만의 문제에만 그치지 않는다. 업계에선 “장르 분류의 자의성은 개별작들의 마케팅 문제를 넘어 공연예술 통계지표를 오염시킨다”고 일갈한다. 이러한 자의적 분류가 공연시장의 기초 통계를 훼손하는 것은 물론 연극 장르에서 독립한 뮤지컬의 정체성을 흔든다는 것이다.

    최승연 평론가는 “코피스 지표는 한국 공연시장의 규모를 짐작하고 다양한 학술적 논리를 만드는 기초 자료”라며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이들 작품의 분류를 어떻게 수용하느냐에 따라 역사적 데이터의 왜곡 기로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예술경영지원센터에 따르면 현재 ‘라이프 오브 파이’는 연극,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슬립 노 모어’는 뮤지컬로 분류했다. 이 기준에 따르면 ‘라이프 오브 파이’는 연극으로 분류돼 티켓 판매량, 수익 등이 집계되는 데도 예매처에선 뮤지컬로 둔갑한 상황이 된다.

    세 작품의 자의적 분류로 인해 업계에선 뮤지컬 장르의 정체성을 위협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앞서 ‘난타’나 ‘점프’ 같은 논버벌 퍼포먼스가 뮤지컬 장르 안에서 논의됐던 초기 단계를 지나, 뮤지컬계는 연극으로부터 독립된 장르로 인정받기 위해 수십년간 법적·인식적 노력을 이어왔다. 그러다 지난 2021년 마침내 연극과 분리돼 독립 장르가 됐다. 업계에선 “최근의 흐름은 이러한 노력을 ‘도루묵’으로 만들며 장르적 정체성을 다시 혼탁하게 만들고 있다”고 비판한다.

    업계에선 이러한 이유로 지금의 ‘장르 논쟁’을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소위 ‘장르 세탁’으로까지 비화하는 논란의 핵심에는 뮤지컬의 정의와 규정에 대한 이론적 견해차도 나온다. 무대에서 배우가 서사와 대사, 감정을 노래한다는 것 외에도 예술적 형식의 수용 범위까지 그 내용이 확장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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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한국에서 공연 중인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CJ EN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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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종원 순천향대 교수는 “뮤지컬은 다양한 장르가 뒤섞이는 ‘교차로(Crossroads)’”라고 비유하며, 장르의 확장을 지속적으로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2003년 토니상에서 최우수 뮤지컬상을 받은 ‘무빙 아웃’의 사례를 들며 “무대에서 노래를 불러야만 뮤지컬이라고 보는 것은 협소한 시각”이라며 “지금의 뮤지컬은 형식적 실험이나 도전, 기존 실험을 깨트리는 큰 흐름의 연장에 선 장르라고 볼 수 있다. 광의의 뮤지컬로의 장르 확장을 꾀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무빙 아웃’에선 빌리 조엘의 음악과 무용으로만 구성했으나, 제작자가 뮤지컬로 정의하고 음악을 극의 핵심적 서사 수단으로 활용했기에 제작자의 뜻을 수용해 장르를 분류했다.

    반면 뮤지컬 장르 구분의 명확성과 재정의가 필요하다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지혜원 교수는 “해외 현지에서 연극으로 분류돼 권위 있는 상을 받은 작품이 한국에서만 뮤지컬로 변신하는 것은 논리적 일관성이 없다”고 지적한다. 특히 ‘라이프 오브 파이’처럼 가창이 존재하지 않는 정극을 뮤지컬로 분류하는 것은 장르적 문법을 파괴하는 행위라는 일갈이다.

    융복합 시대로 접어든 만큼 장르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은 공연계의 흐름이다. 다만 업계에선 그것이 상업적 이익을 위한 전략적 세탁으로 안착하는 것은 경계한다고 지적한다. 제작사는 관객의 권리를 위해 정직한 정보를 제공하고, 예매처는 투명한 수수료 체계를 확립하고, 해외 사례와 국내 실정을 반영한 장르 분류 매뉴얼과 신뢰할 만한 통계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세 작품 모두 뮤지컬 장르로 분류된 만큼, 한국뮤지컬협회에선 이번 논쟁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이종규 이사장은 “작품에 따라 특정 장르로 한정 지어 규정하기에는 어려운 경우도 있다”고 전제하면서도 “다만 정확한 장르별 데이터 관리를 위해 향후 제작사와 예매처, 유관 단체 등이 중지를 모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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