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두콩 모티프로 드러낸 다층적 자아들…정체성과 사랑의 은유
벨기에 작가 캐스퍼 보스만스 국내 첫 개인전…글래드스톤서 3월 14일까지
캐스퍼 보스만스 |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화면 가운데 완두콩 꼬투리 두 개가 수직으로 뻗어 있다. 꼬투리 안을 들여다보면 콩마다 다양한 문양으로 채워져 있다. 한 꼬투리에 들어 있는 콩들이지만 모양과 색은 저마다 다르다.
부드러운 색감과 세밀한 표현, 상징과 은유를 통해 정체성을 탐구해온 벨기에 작가 캐스퍼 보스만스(36)의 국내 첫 개인전 '피즈, 포드'(Peas, Pod·완두콩, 꼬투리)가 서울 강남구 청담동 글래드스톤 서울에서 열리고 있다.
작가는 이번 전시의 제목처럼 완두콩을 모티프로 자아를 투영한 연작을 회화와 조각, 벽화 등 다양한 형태로 보여준다.
캐스퍼 보스만스 작 '투 키즈 인 어 트렌치코트' |
작가가 직접 꼽은 이번 전시의 대표 작품은 '투 키즈 인 어 트렌치코트'(Two Kids in a Trench coat)다. 두 아이가 큰 코트의 위아래로 들어가 한 명의 어른인 척 연기하는 장난을 뜻한다. 성소수자들이 정체성을 숨기고 이성애 중심의 사회에서 '보통 사람'으로 변장해 살아가는 모습을 은유한다.
이 작품의 첫 번째 콩에는 미국의 화가이자 어부인 포레스트 베스의 작품이, 두 번째 콩에는 브라질 출신 작가 호세 레오닐손의 작품이 들어가 있다. 두 사람 모두 작가와 같은 성소수자다.
또 다른 콩에는 두 마리의 잉꼬를 그려 넣고 보헤미안 스타일의 침대를 겹쳐놔 두 잉꼬가 한 침대에 누운 것처럼 표현했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나에게 가장 영향을 준 두 작가의 작품과 사랑을 상징하는 잉꼬 두 마리를 그려 넣었다"며 "하나의 꼬투리에 다양한 콩이 있는 것처럼 내 안에 있는 여러 정체성을 다양한 개념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말했다.
캐스퍼 보스만스 작 '밴디드 브릿지' |
손수 제작한 청동 조형 작업도 만날 수 있다.
'밴디드 브릿지'(Banded Bridge)는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솟아오른 아치형 구조다. 차가운 금속성 재질 위로 수평적인 색 띠와 기하학적인 원형 문양들이 정교하게 배치됐다.
이 작품은 서로 분리된 두 개의 좌대에 놓여 공간을 연결한다. 퀴어 담론에서 다리는 서로 다른 영역을 잇는 중재의 공간을 상징한다.
작가는 "서울에 와서 받은 인상은 개방적이고 소통이 활발하며 모든 것이 연결된 도시 같았다"며 "서울에 어울리는 작품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캐스퍼 보스만스 작 '레전드: 크리터 파빌리온, 오스트리치 카리아티드' |
다채로운 색감의 '레전드 페인팅'(legend painting) 연작들도 출품됐다.
작가는 오래전부터 신화나 설화, 민속 예술에 등장하는 상징을 비롯해 서양의 가문에서 사용하는 문장(紋章)에도 관심이 많았다.
'레전드 페인팅' 연작에서는 이런 기호들을 하나로 묶는 작업을 한다. 사자와 수탉, 말과 타조 등 서로 다른 상징들을 한 화면에 병치하는 방식이다.
작가는 "서양에서는 혼인으로 두 가문이 만나면 후손은 두 가문의 문장을 절반씩 사용하는 전통을 차용한 것"이라며 "이런 문장은 가문의 정체성을 상징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이 밖에도 전시장 안이나 외벽에 설치된 완두콩 작업 벽화들도 볼 수 있다.
캐스퍼 보스만스 개인전 |
작가는 벨기에 롬멜 출생으로 현재 브뤼셀과 암스테르담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탈리아 아르날도 포모도로 재단, 네덜란드 더 할렌, 벨기에 브뤼셀 현대미술센터 등 전 세계 주요 기관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벨기에 명품 브랜드 델보(Delvaux)와 협업하기도 했다.
작가는 한국 관람객들이 어떻게 자기 작품을 즐기면 좋겠느냐는 물음에 "멀리서도 보고 가까이 다가가서도 보며,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해주면 좋겠다"며 "내 작품은 정체성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니, 가족들이 함께 즐기면 더 좋을 것 같다"고 강조했다.
전시는 3월 14일까지.
laecor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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