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뮤지컬 '몽유도원' 공연 사진. 아랑과 도미를 연기하는 배우들. 에이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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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명성황후’와 ‘영웅’으로 한국 창작뮤지컬의 가능성을 입증해온 제작사 에이콤이 이번에는 고전 설화를 바탕으로 한 신작 ‘몽유도원’으로 돌아왔다. 지난달 27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막을 올린 이 작품은 한국 창작뮤지컬의 지평을 넓혀온 제작사의 30년 내공이 응축된 결과물이다.
이 작품의 첫인상은 ‘무대 위의 동양화’다. 한국적 미학을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사랑과 욕망, 권력과 신념이라는 인류 보편의 감정을 설득력 있게 풀어낸다. 초연작인 만큼 영상과 일부 넘버에서 다듬어질 여지도 엿보이지만, 입체적인 캐릭터와 탄탄한 이야기, 한 폭의 수묵화와 같은 무대는 그 아쉬움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작품은 기대 이상의 울림으로, 보는 이의 마음을 훔치고야 만다.
도미 부부 설화 기반 절절한 사랑과 헛된 욕망
‘몽유도원’은 삼국사기 도미 부부 설화를 소재로 한 최인호 소설 ‘몽유도원도’를 무대 언어로 재해석했다. 도미 부부 설화에서 백제왕 개로왕은 정절을 시험한다는 명복으로 도미의 아내 아랑을 탐한다. 이번 뮤지컬에서는 귀족들의 반정으로 아버지를 잃고 왕좌에 오른 여경(민우혁, 김주택)이 왕좌를 지키기 위해 그 어떤 여인도 사랑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개로왕으로 재탄생된다. 늘 불안에 시달리는 그는 집무실에 앉은 채 잠이 들고, 악몽으로 깬다. 그러던 어느 날 꿈에서 만난 아름다운 여인 아랑(하윤주, 유리아)에게 위로를 받고, 현실에서 그를 찾아 나선다.
한편 역모죄로 몰려 부족 전체가 노예 신분으로 전락한 목지국의 후손인 도미(이충주, 김성식)는 무리를 이끄는 지도자로 사랑하는 여인 아랑과 결혼한다. 개로왕 여경과 그의 충신 향실(서영주, 전재홍)은 깊은 산속에 숨어 사는 이들을 찾아내고, 아랑을 차지하기 위해 덫을 놓는다.
'몽유도원'은 헛된 욕망에 사로잡힌 한 인간의 비극적 드라마이자 두 남녀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다. 동시에 부당한 권력에 굴복하지 않는 백성의 이야기다. 권력의 폭력, 인간의 욕망, 책임과 희생, 그리고 끝내 꺾이지 않는 사랑을 겹겹이 쌓아 올린다.
입체적 캐릭터, 평면적 악당은 없다
집무실인 남당에서 악몽을 꾸며 공연의 시작을 여는 여경은 평면적인 악역이 아니다. 사랑과 욕망 사이에서 흔들리다 결국 파멸하는 가련한 인간으로 다가온다. 지난 6일 공연에서 여경 역 김주택은 성악 전공자다운 깊고 묵직한 발성으로 여경의 불안과 집착, 갈망과 광기를 넘나들며, 욕망에 잠식된 ‘어리석은 인간’의 자화상을 입체적으로 빚어낸다.
도미는 억압받는 약소국 지도자로, 개인의 사랑과 사회적 책임 사이에서 갈등한다. 그가 눈을 잃는 장면은 개인적 비극일뿐 아니라 약소국의 비애다. 1막 엔딩, 두 눈을 잃은 채 강물에 떠내려가는 장면은 공연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다. ‘팬텀싱어의 대표 성장캐’로 불리는 김성식은 넘버 ‘어이해 이러십니까’를 절절하고도 폭발적으로 소화하며, 관객의 눈물을 훔친다.
아랑은 수동적인 ‘열녀’가 아니라, 신념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하는 주체적 여성으로 그려진다. 소리꾼 출신 하윤주는 단아하고 깊은 음색으로, '외유내강' 캐릭터를 완성한다.
사랑의 다채로운 얼굴이 다뤄진다는 점도 흥미롭다. 넘버 '내 것이다'를 부르는 여경에게 사랑은 자신의 결핍을 채우는 위로이자, 이성을 잃게 하는 강력한 감정이다. 반면 '죽여주소서'라며 애원하는 '도미'와 '아랑은 없다'를 부르짖는 아랑에겐 비극으로 치닫는 상황 속에서도 서로를 끝내 놓지 않은 단단함이다. 여경의 충신 향실은 넘버 '꿈에서 깨어나소서'를 통해 또 다른 형태의 사랑을 보여준다. 광기에 사로잡힌 여경이 허상을 붙잡으려다 가장 소중한 것을 해하는 순간, 탄식이 절로 나오는 것은 어쩔수 없다.
동서양 음악 실험, 흥미로워
이 작품의 또 다른 특징은 음악이다. 서양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사운드 위에 한국 전통 선율이 얹힌다. 성악 전공 김주택, 정가 기반 하윤주, 뮤지컬 배우 김성식 등 서로 다른 음악적 배경의 배우들이 한 무대에 선다. 목지국 제사장 비아 역의 명창 정은혜는 독보적 목소리로 작품의 한국적 정체성을 또렷이 각인시킨다. 때로는 이들의 목소리가 완벽히 섞이지 않은 듯한 순간도 있지만, 각 배우의 고유성이 돋보이는 솔로 넘버가 이를 상쇄한다.
김문정 음악감독은 공연 도록에서 "동서양의 악기가 함께 사용되는 작품인 만큼, 서로의 음역대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각 악기의 고유한 색채를 살리는데 초점을 맞췄다"고 말한다.
의상과 안무 역시 한국적 미를 담았다. 서병구 안무가는 “옛 춤을 현대화한 것이 아니라, 옛 미학을 현대 리듬 위에 다시 그려낸 수묵화"라고 표현했다. 여경과 도미가 펼치는 바둑 대국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다. 거대한 바둑판으로 변한 무대 위에서 흑과 백 의상을 입은 앙상블이 칼군무를 선보이며 “바둑은 곧 전쟁”이라는 대사를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동서양 대비와 공존, '아리랑’과 한(恨)의 정서
‘몽유도원’은 동양과 서양의 대비를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궁극적으로는 공존을 지향한다.
무대는 수묵화적 여백과 디지털 영상 기술이 결합된다. 음악은 국악 선율과 서양 오케스트라가 교차한다. 공연이 진행될수록 서로 다른 질감이 새로운 조화를 만든다. 긴장 속 공존이 돋보인다.
개로왕의 폭력으로 두 눈을 잃은 도미의 피리 소리는 한국 고유의 정서 ‘한’과 맞닿는다. 아리랑 선율이 담긴 '목자의 옛노래'와 '다시 도원으로'는 개인의 비극을 넘어 공동체의 아픔으로 확장되며 깊은 울림을 남긴다. 전쟁과 분쟁으로 난민이 끊이지 않는 오늘날 국제 정세 속에서, 작품 속 목지국의 운명은 세계 관객에게도 충분한 공감과 보편적 메시지를 전할 것으로 보인다.
‘명성황후’가 역사적 비극을 통해 한국 창작뮤지컬의 가능성을 열었다면, ‘몽유도원’은 신화적 상상력과 동양적 미학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한국적 색채는 더욱 짙어졌지만, 사랑과 욕망이라는 주제는 더욱 보편적으로 다가온다. 한 폭의 수묵화처럼, 천천히 그러나 깊게 번져간다. 공연은 22일까지.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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