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와 음악을 넘어… 장르를 건너는 창작의 시간
형식도 태도도 제각각… 같은 듯 다른 '세 개의 캔버스'
배우 박신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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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미술계에 따르면 배우 박신양, 음악가 김수철, 배우이자 음악가 백현진. 대중 예술의 최전선에 서 있던 이들이 최근 잇따라 개인전을 열거나 개최를 앞두고 있다. 흔히 '아트테이너'라는 단어로 묶이지만, 이번 흐름은 단순한 유명인의 취미 공개로 환원하기 어렵다. 각자의 본업에서 축적한 감각과 훈련이, 다른 매체로 번역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박신양, '전시쑈'로 건너간 배우의 언어
세종문화회관에서 오는 3월 6일 개막하는 박신양의 이번 전시 제목은 도발적이다. '박신양의 전시쑈 <제4의 벽>'
'제4의 벽'은 연극에서 무대와 객석 사이에 존재하는 가상의 벽을 뜻한다. 배우는 그 벽을 인식하면서도 동시에 무너뜨린다. 관객을 향해 열려 있으면서도, 끝내 건너갈 수 없는 경계. 박신양은 그 연극적 개념을 전시의 제목으로 삼았다.
이번 전시는 단순한 회화 발표가 아니다. 자료에는 "한국 최초의 연극적 전시"라는 표현이 붙어 있다. 작품을 정적으로 걸어두는 대신, 동선과 구성, 프로그램을 통해 '전시를 하나의 장면'으로 만들겠다는 기획이다. 특별 강연 프로그램도 예고됐다. '전시쑈'라는 명명은 과장이 아니라 형식적 실험을 암시한다.
박신양은 이미 2023~2024년 개인전을 통해 10년 넘게 이어온 회화 작업을 공개한 바 있다. 매일 밤 그림을 그렸다고 밝힌 그는, 그 시간을 '그리움'과 '자기 질문'의 시간으로 설명해왔다. 두텁게 쌓인 물감, 덧칠과 지움의 흔적, 반복되는 인물과 얼굴. 연기의 기술이 타자를 향해 있다면, 그림은 그 반대편에 놓여 있다.
배우는 타자의 삶을 연기한다. 화가는 자신의 감정을 밀어 올린다. 이번 '제4의 벽'은 그 둘을 분리하지 않고 한 공간에 놓는 시도다. 배우의 훈련 -역할에 몰입하고, 가면을 쓰고, 가면을 벗는 과정- 이 전시 형식 안으로 들어온다. 작품 이전에, 전시 구조 자체가 하나의 장면이 된다. 박신양이 화폭에 무엇을 그렸는가보다, 그가 어떻게 관객을 '무대 안으로' 끌어들이는지가 관전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가수 김수철.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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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철, 소리를 내려놓고 남는 것
김수철은 반대로, 소리를 지운다. 그는 서울올림픽, 월드컵 개막식 등 굵직한 국제 행사에서 국가의 소리를 설계해온 음악가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14일 부터 여는 김수철의 개인전 '소리그림'은 그가 30년 넘게 이어온 회화 작업을 처음 대규모로 공개하는 자리다. 160여 점의 자화상과 색채 수묵화가 전시장에서 관객과 만난다.
흥미로운 대목은 작업 환경이다. 김수철은 "2평 남짓한 주방이 작업실이었다"고 말했다. 200호 캔버스를 펼 공간이 없어, 가스레인지 옆 바닥에 놓고 작업했다는 일화도 있다. 음악이 무대와 스튜디오의 예술이라면, 그의 그림은 생활의 공간에서 태어났다.
전시 제목은 '소리그림'이지만, 그는 이번 전시에서 음악의 힘에 기대지 않겠다고 했다. 공연도, 배경음도 없다. 그림은 그림으로만 서겠다는 태도다. 음악가의 명성은 관객을 끌어들이는 요소일 수 있지만, 전시 안에서는 오히려 배제된다.
김수철의 화면은 리듬을 품고 있다. 굵은 획과 색의 중첩, 반복되는 구조는 음악적 감각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그것은 음의 시각화가 아니라, 오랜 시간 사유해온 자연·우주·생명의 에너지를 색과 질감으로 옮긴 결과물에 가깝다. 소리를 만드는 사람이, 침묵 속에서 무엇을 남기는지 보여주는 자리다.
작가 겸 배우 백현진이 3일 서울 종로구 PKM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서울 신택스'(Seoul Syntax)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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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진, 장르를 오가는 사람의 현재형
백현진은 이 흐름 속에서 가장 자연스럽다. 그는 음악과 연기, 미술을 동시에 해온 창작자다. 어느 한 장르가 본업이고, 다른 장르가 부업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PKM갤러리에서 진행 중인 그의 개인전에서 만난 회화와 드로잉은 거칠고 직설적이다. 인물의 표정은 과장되고 왜곡된다. 색은 망설임 없이 밀어붙인다. 음악과 퍼포먼스에서 드러난 에너지가 화면에서도 반복된다. 완결된 이미지보다, 그려지는 과정이 더 중요해 보이는 작업이다.
백현진의 전시는 '이동'이 아니라 '연장'이다. 이미 여러 매체를 넘나들어온 창작자가, 그 연속선 위에서 또 하나의 장면을 열어젖힌다. 그에게 갤러리는 낯선 공간이 아니다. 무대의 또 다른 변주다.
최근 미술계에는 대중적 인지도를 지닌 인물들의 전시가 잇따른다. 이름이 먼저 알려진 창작자가 화랑에 서는 일은 분명 화제를 모은다. 그러나 이번 전시들을 단순한 스타 효과로만 설명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세 사람 모두 오랜 시간 본업과 병행해온 작업을 전면에 꺼냈고, 각자의 방식으로 장르의 경계를 확장해왔다. 배우의 연기 훈련은 전시 형식으로, 음악가의 리듬은 색과 선의 구조로, 다매체 예술가의 실험은 회화 공간으로 옮겨왔다.
'아트테이너'라는 단어가 이 흐름을 포괄할 수는 있겠지만, 이번 전시들은 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무대 밖 또 하나의 데뷔는 취미의 공개가 아니라, 축적된 창작의 다른 장면을 여는 일이다.
한 전시 기획자는 "요즘은 '아트테이너'라는 말로 쉽게 묶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오래 병행해온 작업을 정리해 공개하는 경우가 많다"며 "무대의 언어가 화폭으로 옮겨오는 과정 자체가 흥미롭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름이 아니라 작업이 남는 전시인지, 관객이 직접 확인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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