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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15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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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튜링 머신' 이승주, 연극으로 존재하는 배우..“끝까지 자기 자신으로 산 튜링을 존경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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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햄릿' '타지마할의 근위병' 이어 '튜링 머신' 호연

    파이낸셜뉴스

    연극 '튜링 머신'에서 열연 중인 배우 이승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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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이낸셜뉴스

    연극 '튜링 머신'에서 열연 중인 배우 이승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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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이낸셜뉴스] “연극은 저한테 단지 일이 아닙니다. 제가 저로서 존재할 수 있는 일이에요.”
    연극이 시작되면 배우 이승주의 일상은 작품 중심으로 돌아간다. 맡은 역할에 대한 방대한 조사부터 “행여 감기라도 걸릴까봐 하루에 100번 넘게 손을 씻을 정도”의 철저한 건강 관리까지 오직 지금 무대에만 몰두하는 고지식함을 보인다. 조명이 꺼진 뒤에야 비로소 ‘배우 이승주’가 아닌 ‘개인 이승주’로 돌아온다.

    그는 최근 몇 년간 화제작 ‘와이프’ ‘햄릿’ ‘헤다 가블러’ ‘타지마할의 근위병’, 그리고 현재 공연 중인 ‘튜링 머신’까지 연이어 호연을 펼치며 연극계의 ‘믿고 보는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지난 10일 서울 중구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만난 그는 “지금 기준 8회차 남았다”며 “공연 한 번 한 번이 너무 소중하다”고 말했다.

    비운의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

    연극 ‘튜링 머신’은 영국의 수학자 앨런 튜링(1912~1954)의 삶과 고독을 조명하는 2인극이다. 작가 겸 배우 브누아 솔레스가 집필한 이 연극은 프랑스 최고 권위의 몰리에르 어워즈에서 최우수 작가상·희극상·남우주연상·작품상 등 4관왕을 차지하며 예술성과 완성도를 동시에 인정받았다.

    작품의 모델이 된 튜링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컴퓨터·AI·암호 해독 기술의 이론적 기반을 다진 천재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암호 ‘에니그마’를 해독해 전쟁을 단축시켰다. 하지만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처벌받고 사회에서 배제된 비운의 영웅이다. 전쟁을 약 2년 단축시킨 공로 역시 오랫동안 국가기밀로 묶여 생전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2023년 국내 초연된 이 작품은 튜링의 위대한 업적보다는 그의 인간적 면모와 고독에 집중한다. 강도 사건을 계기로 이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그의 삶을 역추적하는 구조로, 그의 복합적인 삶을 섬세하게 조명하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 특히 관객을 둘러싼 4면 무대 구성은 인물의 고독한 내면을 더욱 가까이 체감하게 만든다.

    2023년 튜링의 사건을 맡게 된 형사, 연인, 동료 등 1인 다역을 소화한 이승주는 이번 재연에서는 튜링 역을 맡아 “튜링이라는 인물의 고독에 동기화되는 듯하다” “이승주, 최정우 공연 보고 눈물 펑펑” 등의 호평을 얻고 있다.

    튜링에 대한 그의 마음 역시 무척 각별했다. 이승주는 ‘존경’과 ‘경의’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이 작품을 하면서 앨런 튜링이라는 인물을 정말 존경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론 속의 가상 계산 장치) 튜링 머신을 만들고 ‘기계가 생각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사람이지만, 실제로는 그 누구보다 인간적이고 따뜻했으며 사회적 언어를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타인을 배려한 사람이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초연 때는 그 인간적인 면이 지금처럼 크게 와닿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이번에는 한 인간으로서의 튜링을 훨씬 더 가까이에서, 더 깊이 마주하게 된 느낌입니다.”

    "모든 에너지 다 쏟아..그에 대한 최소한의 경의"

    배역을 맡으면 늘 그렇듯 이번에도 튜링에 관한 방대한 자료와 논문, 전기를 섭렵했다. 튜링의 실제 목소리나 영상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아 대사의 서브텍스트에 집중하며 자신만의 신체 언어를 만들어냈다. 평소 손을 많이 쓰지 않음에도 이번 작품에서 무의식적으로 손을 많이 사용하게 된 것 역시 튜링의 고뇌를 체화하려는 노력의 결과다.

    “제작사 대표님께도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이 사람을 무대 위에서 온전히 다 담아내는 건 불가능하다. 다만 공연이 끝났을 때 내가 기진맥진할 정도로, 내가 가진 모든 에너지를 무대 위에 쏟아 붓고 싶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경의라고 생각한다’고요.”

    그는 매번 공연장 어디 한켠에 튜링이 앉아 있다고 상상한다.

    “무대 위에 빈 오브제가 하나 있는데, 저는 그 자리에 앨런이 앉아 있다고 생각하면서 연기해요. 그가 살았던 시대에는 아마 존재조차 몰랐을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자신의 이야기가 극장에서 공유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꽤 좋은 일이지 않을까 생각하면서요. 보고 좋아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무대에 섭니다.”

    ‘튜링 머신’에 대한 관객의 반응은 뜨겁다. 객석에서 눈물을 훔치는 관객도 적지 않다.

    이승주 역시 시대의 억압 속에서도 끝까지 자기 자신이고자 했던 튜링의 진실함에 큰 위안을 받았다. 그는 “제가 조금 주저앉아 있던 시기에 이 인물을 만난 게 아니었나 싶다”며 “‘너 괴로워하지 않아도 돼, 그럴 수 있어’라는 얘기를 듣는 것 같았다”고 돌이켰다.

    “제가 놀랐던 건 삶의 태도였어요. 끝없이 질문하고, 부딪혀도 멈추지 않고, 사회적 시선과 억압에 눌리지 않고 계속 나아가려 했던 정신. 그 사람의 정신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가장 큰 유산이지 않을까. 저는 튜링이 끝까지 자기 자신이었던 사람이라고 봐요.”

    "연극은 삶을 풍요롭게...훗날 아동극 만들고 싶어요"

    이승주는 스스로에 대해 “생각이 굉장히 많고 늘 방황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연극은 그런 그에게 어떻게 살아갈지를 묻고 찾는 여정과 같다. 과거 ‘햄릿’을 연기했을 때 그는 “정말 여한이 없다는 말이 이런 순간에 쓰이는 거구나 싶었다”며 특별히 행복한 기억으로 꼽았다. 당시 ‘햄릿’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답이었다면 ‘튜링 머신’은 ‘어떻게 끝까지 나 자신으로 남을 것인가’를 묻는 작품이었다.

    ‘튜링 머신’을 보고 마치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튜링에 관한 소설책 한 권을 읽은 것 같았다는 감상평을 전하자 이승주는 크게 감동했다. 그는 “관객에게 전하고 싶었던 게 바로 그것”이라며 “희곡을 읽으며 받은 울림을 관객에게 그대로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몇 만원의 구독료만 내면 수백, 수천 개의 영상이 쏟아지고 클릭 한 번으로 온갖 세계가 펼쳐지는 시대잖아요. 그런데 연극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같은 장소에 모이고, 타인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집중해야 하는 불편까지 감내하며 관람하는 거잖아요. 그런 관객의 존재는 배우에게 무엇보다 아름답고 감사합니다.”

    특히 ‘튜링 머신’은 사방에서 마주 앉은 관객과 호흡하며 소통하는 작품이라 관객에 대한 믿음은 더욱 깊어졌고, 공연이 거듭될수록 감사함 또한 커졌다.

    연극의 가치 주목, 아동극 만들고파

    이승주는 무엇보다 연극이 인간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든다고 믿는다. 그래서 언젠가 아이들을 위한 ‘아동극’을 만들고 싶다.

    "연극이라는 건 인문학적으로나 여러 측면에서 인간의 삶을 더 윤택하게 하고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분야라고 강하게 믿고 있어요. 그런데 그런 가치가 꾸준히 이어지고 발전하려면 결국 아이들 때부터 시작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아동극 시장이 너무 작다는 아쉬움도 있고요. 그래서 제가 연극을 통해 조금이라도 영향력이 생긴다면 그걸로 아동극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늘 했어요.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연극만으로는 영향력이 쉽게 생기지 않더라고요."

    연극의 느린 호흡이 자신과 더 잘 맞아 KBS 공채 탤런트로 연기 생활을 시작했지만, 대중매체보다 공연을 고수하는 그에게 ‘인지도’는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와 같다. 한때는 “왜 연극으로 쌓은 시간은 인정받지 못하고 다른 방식으로 증명해야 하느냐는 억울함이 있었다”고, 또 “이것만으로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는 다짐도 품었다.

    그가 자신의 숙제를 어떻게 풀어갈지, 그의 행보를 응원하는 관객의 수가 계속 늘어나길 바라본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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