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가 김정옥 [문화체육관광부 제공] |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한국 현대 연극의 토대를 마련한 연극 연출가 김정옥이 별세했다. 향년 94.
17일 연극계와 유족에 따르면 김정옥은 이날 오전 5시 7분께 세상을 떠났다.
광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중앙대 국문과에 입학한 뒤, 서울대 불문과로 옮겨 공부를 마쳤다. 이후 프랑스 소르본대에서 불문학과 영화학을 공부했다.
프랑스 유학은 그에게 연극의 길로 접어 들게 한 결정적 만남이 있었다. 프랑스 현지에서 만난 유치진(1905∼1974)의 영향이었다. 당시 유치진은 1957년 유네스코 국제극예술협회(ITI) 본부를 방문, 한국 가입 의사를 표명할 때 거들었다.
고인은 이후 1959년 귀국해 중앙대 연극영화학과 전임강사가 된 걸 계기로 본격적으로 연극인의 길로 접어들었다. 1961년 이대 연극반 학생들과 연극 ‘리시스트라다’를 통해 연극 연출을 시작, 1962년 드라마센터 개관 공연 ‘햄릿’ 조연출을 거쳐 1963년 민중극장 창단과 함께 연출가로 커리어를 다졌다. 당시 그가 연출한 ‘대머리 여가수’엔 박근형, 김혜자, 추송웅이 출연했다.
1966년엔 무대미술가 이병복(1927∼2017)과 함께 극단 자유를 창립, ‘따라지의 향연’(1966) 등을 통해 국내 대표 연출가로 자리했다. 당시 그는 박정자 등 당대 최고의 연기자들과 함께 서구 위주 시각을 뒤집는 ‘제3의 연극’을 추구했다.1970년대 후반부턴 한국적 표현 양식을 탐구, ‘무엇이 될고하니’(1978)부터 한국의 전통연희와 굿 형식을 연극에 수용했다. ‘피의 결혼’(1984), ‘바람은 불어도 꽃은 피네’(1984) 등을 통해 서구 연극을 한국적 미학으로 다시 선보였다.
1991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 됐고, 1995년 6월 아시아인으론 처음으로 ITI 회장이 됐다. 세 차례 연임 이후엔 명예회장으로 추대됐다. 한국문화예술진흥원장(2000), 대한민국예술원 회장(2011)을 역임했다. 2002년 한국인으론 처음으로 프랑스 최고 등급 문화예술 공로 훈장인 코망되르를 받았다.
유족은 부인 조경자씨와 자녀 김승미 서울예대 교수, 김승균 얼굴박물관 이사, 사위 홍승일 씨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14호실(17일 오후 6시 이후 조문 가능), 발인 20일 오전 7시30분이다. (02) 2258-5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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