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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24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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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추상화 거장' 유영국 아내 김기순 여사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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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속공예가 유리지의 어머니…남편 대신 생업 맡아 네 자녀 키워

    연합뉴스

    유영국과 아내 김기순(오른쪽)
    [유영국미술문화재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한국 추상화의 거장인 유영국(1916∼2002)의 아내이자 현대 금속공예의 선구자 유리지(1945∼2013)의 어머니인 김기순 여사가 지난 17일 별세했다. 향년 106세.

    고인은 192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고(故) 이희호 여사가 5촌 조카다.

    김 여사는 일본 도쿄문화학원 유화과를 졸업한 유영국과 만나 1944년 결혼한 뒤 남편의 고향인 경북 울진에 정착했다.

    두 사람은 양조장을 운영하며 삶을 영위했다. 이 양조장에서 나온 소주 '망향'은 동해안 어부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고 사업도 번창했다.

    하지만 유영국은 1955년 "금(金)논도 금산도 금밭도 싫다. 이제 그림을 그리겠다"며 사업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온 가족과 서울로 올라왔다. 유영국은 이후 홍익대학교 교수로도 일했지만 오래 하지 않았고 평생 작가로만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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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순
    [유영국미술문화재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때부터 생계는 온전히 김 여사의 몫이었다. 유영국의 작품이 환갑 직전까지 거의 팔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 여사는 택시를 사서 운영하고, 버스 노선을 사서 간이 운수업을 하기도 했다. 남편이 화가로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하면서 네 자녀를 모두 유학 보낼 만큼 자녀 교육에도 열심이었다.

    장녀 고 유리지 교수는 미국 탬플대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미대에서 교수로 일하면서 한국 현대 금속공예의 초석을 마련했고, 장남 유진씨는 유학 후 카이스트 교수를 지냈다.

    뒤늦게 유영국의 작품이 팔리기 시작했지만,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심근경색으로 쓰러진다.

    유영국은 1977년(만 61세) 심장 박동기를 달고 살기 시작했으며, 2002년(만 86세) 타계할 때까지 8번의 뇌출혈, 37번의 병원 입원 생활을 계속했다. 그러면서도 작업을 병행했고, 김 여사는 유영국이 이를 이어갈 수 있도록 극진히 간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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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순과 장남 유진 유영국미술문화재단 이사장
    [유영국미술문화재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02년 유영국이 먼저 세상을 뜨고 2013년 장녀 유리지 교수도 백혈병으로 별세했다. 하지만 김 여사는 두 번 모두 눈물을 보이지 않으며 슬픔을 참아냈다고 한다.

    유진 유영국미술문화재단 이사장은 "어머니는 포기하거나 우는 적도 없었던 초인적인 절제력과 인내심을 가진 뛰어난 정신력의 소유자였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어려웠던 시절 화가의 아내로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예술가의 좌절과 고민을 들어주고 용기를 주며 아버지가 그림 그리는 것에만 전념하게 하셨다"며 "오늘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화가 유영국이 있는 것에는 김기순 여사의 희생과 헌신이 절대적이었다"고 말했다.

    유족은 아들 유진, 유건, 딸 유자야씨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 2호실이며 발인은 20일 오전 9시.

    연합뉴스

    해변을 걷고 있는 유영국과 김기순(왼쪽)
    [유영국미술문화재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laecor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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