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확장법 232조ㆍ무역법 301조 전환 단계
반도체, 파생제품 포함될 가능성⋯K반도체 리스크↑
미국 통상정책의 무게중심이 ‘국가’에서 ‘산업’으로 이동하고 있다. 미 연방대법원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관세 조치에 제동을 걸었지만, 백악관은 국가안보와 불공정 무역을 명분으로 한 무역확장법 232조와 무역법 301조를 앞세워 반도체·자동차·철강 등 전략 산업을 겨냥하는 새로운 통상 압박에 나서는 흐름이다. 관세 정책의 후퇴가 아니라 통상 질서 자체가 재편되는 국면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행정부는 판결 직후 무역법 122조를 발동해 전 세계 수입품에 10% 글로벌 관세를 적용한 뒤 이를 법정 상한선인 15%까지 상향하며 정책 공백을 최소화했다. 전면 관세가 제동 걸리자 곧바로 다른 법적 수단으로 전환한 셈이다.
23일 재계에 따르면 122조 관세가 150일 한시 조치라는 점에서 미국은 이미 후속 수단을 준비하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무역확장법 232조는 국가안보 위협을 이유로 특정 산업 수입을 제한할 수 있고 무역법 301조는 불공정 무역 관행을 근거로 국가별 보복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 전 국가 대상 관세가 물러난 자리에 산업별·국가별 ‘정밀 관세 체계’가 들어서는 구조다.
가장 먼저 거론되는 대상은 반도체다. 미국은 인공지능(AI) 반도체 공급망을 국가안보 자산으로 규정하고 첨단 제조 역량의 자국 내 확보를 핵심 산업 전략으로 추진하고 있다. 232조는 상무부의 국가안보 위협 판단만으로 관세나 수입 제한이 가능해 정책 명분을 확보하기 쉽다는 점에서 활용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다.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 관세가 국가와 품목을 가리지 않는 전방위 조치였다면 232조는 특정 산업을 정조준하는 ‘핀셋 관세’에 가깝다. 이미 철강과 자동차 분야에서 활용된 전례가 있는 만큼 반도체로 압박 범위가 확산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통상 정책을 통해 공급망 재편을 유도하겠다는 미국 산업 전략이 본격화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시장에서는 관세 판결 이후 불확실성이 해소된 것이 아니라 성격이 바뀌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150일 한시 관세 종료 이후에도 미국이 최소 현재 수준의 실효관세율을 유지하려 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효관세율이 정책 설계 이전 수준으로 낮아지면 재정 부담이 확대될 수 있어 추가 관세 조치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이 같은 흐름은 한국 기업에도 부담 요인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 내 대규모 반도체 투자를 진행 중이지만 반도체 지원법(CHIPS Act) 보조금 정책과 별개로 관세와 조사 리스크가 병행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투자 확대가 통상 안정으로 이어지지 않는 ‘투자 이후 규제 강화’ 국면에 진입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현재 반도체와 의약품 등 일부 첨단 품목은 122조 관세 적용에서 제외됐지만 이는 공급망 안정 필요성 때문이라는 해석이 많다. 오히려 미국이 공급망 안보 전략을 강화할 경우 향후 232조 조사 대상으로 재편될 가능성도 있다는 관측이다.
업계에서는 향후 통상 리스크의 초점이 관세율 자체보다 △232조 조사 대상 포함 여부 △301조 조사 확대 범위 △대중국 기술 통제와의 연계 여부로 이동할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통상정책이 전통적인 무역 분쟁 단계를 넘어 산업안보 정책 단계로 전환되고 있다는 진단이다.
[이투데이/권태성 기자 (tskwo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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