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문화를 깨우는 리더십 인사이트(42)
과거 스펙과 경험치는 더 이상 방패 아냐
AI를 무기로 삼는 능력이 리더십 유효기간 결정
[문성후 경영학박사·외국변호사] 직장인, 특히 조직을 이끄는 리더들에게 가장 두려운 단어는 무엇일까요? 바로 ‘도태’일 겁니다. 과거 저성장 시대에는 명예퇴직이나 구조조정이 공포의 대상이었다면, 지금은 그 자리를 ‘AI(인공지능)’가 단숨에 꿰찼습니다. 당장 내일 AI 활용 능력이 뛰어난 후배나, AI 시스템 자체에 내 자리를 내주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시대입니다.
어쩌면 대기업의 견고한 시스템 안에 있는 리더들은 ‘설마 내 자리가 위험하겠어?’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종신고용이 끝났다 해도, 과거의 화려한 스펙과 켜켜이 쌓인 경험치가 자신을 지켜줄 거라 믿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지독한 착각입니다. 제가 바로 그 산증인입니다.
1998년, 저는 잘나가는 00맥주의 마케팅 과장이었습니다. 미국 보스턴 대학에서 MBA를 하던 중 회사의 삼고초려로 입사했습니다. 스펙만 보면 제가 단연 으뜸이었습니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로 회사가 인수합병된 지 일주일 만에 저는 해고 통보를 받았습니다. 황망했습니다. 나중에야 안 사실은, 제가 의사결정권자들의 ‘네트워크’에 속하지 않은 ‘모르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내 일만 하느라 사내 정보가 오가는 살생부의 존재조차 몰랐고, 시대의 흐름과 정보에서 소외된 대가를 ‘당일 해고’로 치러야 했습니다.
지금의 AI 시대도 이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과거에는 ‘사람 간의 네트워크’와 ‘사내 정보’에서 소외되는 것이 아웃의 징조였다면, 지금 리더들에게 가장 치명적인 아웃의 징조는 ‘AI와의 네트워크에서 소외되는 것’입니다.
회사는 절대 리더에게 “당신은 AI를 다룰 줄 모르니 내일부터 나오지 마시오”라고 친절하게 예고하지 않습니다. 대신, 아주 은밀하고 치명적인 ‘배드 사인(Bad Sign)’을 보냅니다.
리더로서 당신이 AI 시대에 밀려나고 있다는 배드 사인은 무엇일까요? 첫째, 당신의 ‘감(Gut feeling)’이 데이터에 의해 지속적으로 반박당합니다. 과거에는 리더의 경험과 직관이 정답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회의 시간에 당신이 내린 결정이, 팀원이 가져온 AI 기반의 예측 데이터 앞에서 번번이 무너진다면? 혹은 회의 때 당신의 의견보다 AI의 분석 결과에 사람들의 고개가 더 많이 끄덕여진다면? 그것은 당신의 리더십 유효기간이 끝나가고 있다는 첫 번째 배드 사인입니다.
둘째, 당신이 이끄는 팀의 업무 방식이 유독 고립되어 있습니다. 옆 부서는 AI를 활용해 하루 만에 기획안을 뽑고, 시장 분석을 끝냅니다. 그런데 당신의 팀만 여전히 야근하며 엑셀을 돌리고 수작업으로 보고서를 만드나요? 칼퇴근을 못해서 슬픈 게 아닙니다. 회사는 이미 당신의 팀을 ‘비효율의 온상’으로 분류하고 핵심 프로젝트에서 배제하기 시작했을 겁니다. 업무량이 줄어드는 건 좋아할 일이 아니라 치명적인 경고입니다.
셋째, 경영진이 미래 전략을 논의할 때 당신을 부르지 않습니다. 과거에는 출장이나 교육에서 배제되는 것이 해고의 신호였습니다. 당신의 미래에 투자할 가치가 없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미래 기술 도입’이나 ‘AX(AI 전환) TF’ 같은 핵심 논의에서 빠지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배드 사인입니다. 회사는 미래 혁신을 이끌어갈 수 없는 리더에게 중요한 의사결정을 맡기지 않습니다. 한 번 핵심 업무에서 배제되면 성과를 낼 기회를 잃고, 결국 도태되는 수순을 밟게 됩니다.
인사조직관리 이론 중 ‘썩은 사과 이론(Rotten Apple Theory)’이 있습니다. 바구니 속 썩은 사과 하나가 다른 사과들까지 상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AI 시대, 경영진의 머릿속에 각인된 새로운 ‘썩은 사과’는 바로 ‘과거의 방식에 얽매여 AI 혁신을 거부하는 리더’입니다.
이런 리더는 혼자 뒤처지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팀원들에게 낡은 방식을 강요해 그들의 성장 기회를 박탈하고, 결국 조직 전체의 경쟁력을 갉아먹습니다. 그래서 회사는 이런 리더를 가차 없이 뱉어내려 합니다. 최근 들어 부서 이동이 잦아지고, 한 곳에서 진득하게 성과를 낼 기회를 주지 않는다면, 당신은 이미 AI 시대의 썩은 사과로 낙인찍혔을 확률이 높습니다. 다른 부서까지 썩게 만들까봐 회사가 격리 조치를 취하는 것입니다.
AI는 단순한 툴(Tool)이 아닙니다. 리더의 생존을 가르는 새로운 룰(Rule)입니다. 1998년, 저의 화려했던 스펙이 IMF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무용지물이었듯, 당신의 빛나는 과거 경험치 역시 AI라는 쓰나미 앞에서는 더 이상 방패가 되어주지 못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시대와 조직은 당신에게 끊임없이 사인을 보내고 있습니다. 당신은 AI를 무기로 삼는 리더입니까, 아니면 AI를 모른 척하다 대체될 저성과자입니까? 지금 당신이 받고 있는 사인은 ‘굿 사인’입니까, 아니면 뼈아픈 ‘배드 사인’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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