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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25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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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막이 반도체 성지로…애플이 그리는 '미국산 칩'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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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SMC 애리조나에 238조…'반도체 도시' 건설

    반도체 제조 전·후공정 모두 미국서 해결 구상

    휴스턴서 맥 미니 조립…아이폰은 계획 없어

    미국 내 2나노 첨단 칩 생산은 2030년 이후

    [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피닉스 북쪽으로 차로 30분, 선인장만 드문드문 서 있던 황량한 사막 땅이 달라지고 있다. 뉴욕 센트럴파크의 2.5배에 달하는 공사 현장 위로 30기가 넘는 크레인이 하늘을 찌르고, 거대한 철골 구조물이 하루가 다르게 모습을 갖춰간다. 이는 세계 최대 반도체 수탁 생산업체 TSMC가 미국 땅에 짓고 있는 반도체 공장으로, 이 공장의 최대 고객은 애플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애플 임원들과 함께 애리조나·텍사스 등 미국 남서부 일대를 직접 방문해 애플이 투자하고 있는 시설들을 취재해 현장의 생생한 모습을 2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현장에서 마주한 풍경은 단순한 공장 건설이 아니라 반도체 공급망의 ‘미국화’를 향한 애플의 조심스럽지만 집요한 행보였다고 WSJ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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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위치한 TSMC 공장 전경 (WSJ 영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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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팹 물량, 살 수 있는 만큼 다 산다”

    애플 글로벌 조달 책임자 데이비드 톰은 TSMC 애리조나 공장을 가리키며 “이 팹에서 생산되는 물량을 최대한 구매하고 있다”고 말했다. 애플이 올해 이 공장에서 구매할 칩만 1억개가 넘는다.

    TSMC는 이 부지에 총 1650억 달러(약 238조5000억원)를 투입해 팹 6개를 포함한 대규모 시설을 지을 계획이다.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건설 프로젝트 중 하나다. 1호 팹은 이미 가동 중이고, 2호 팹은 내년 완공 예정이다. 현재 철골 뼈대만 세워진 3호 팹은 2030년에 가동된다. 이후 3개 팹이 더 들어서면, 여의도 면적의 약 2.8배에 해당하는 약 8㎢ 규모 ‘반도체 도시’가 완성된다. 바로 옆에는 아파트 단지와 코스트코까지 들어설 예정이다.

    애플이 이 공장의 ‘큰손’ 고객을 자처하는 데는 분명한 계산이 있다. 톰은 “애플이 TSMC와 함께 새로운 공정 노드를 고수율·대량 생산으로 빠르게 끌어올리면, 다른 업체들도 뒤따라온다”고 설명했다. 애플이 최첨단 공정을 먼저 채택함으로써 TSMC가 거대한 투자를 감행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주는 구조다.

    사막의 공사장에서 텍사스 공장까지

    애플의 공급망 재편은 TSMC 한 곳에 그치지 않는다. TSMC 공장 인근에는 또 다른 공사 현장이 있다. 축구장 50여개(약 40만㎡) 규모의 부지에서 앰코어 테크놀로지가 애플의 투자를 받아 반도체 패키징(후공정) 공장 2개를 짓고 있다. 70억 달러(약 10조1200억원)가 투입되는 이 공장은 2027년 완공되면 TSMC에서 넘어온 웨이퍼를 개별 칩으로 잘라 기기 연결 단자를 붙이는 공정을 맡는다. 반도체 제조의 앞 공정과 뒤 공정을 모두 미국에서 해결하겠다는 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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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텍사스주 셔먼에 위치한 글로벌웨이퍼스의 실리콘 웨이퍼 공장 (WSJ 영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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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텍사스주 셔먼으로 향하면 또 다른 공장이 나온다. 대만계 글로벌웨이퍼스가 지난해 문을 연 실리콘 웨이퍼 공장이다. 길이만 400미터에 달하는 이 시설의 핵심은 약 10.7m 높이의 기계들이 늘어선 공간이다. 기계들은 수백 킬로그램에 달하는 어뢰 모양의 실리콘 덩어리(잉곳)를 만들어내고, 이를 얇게 잘라 웨이퍼로 만든다. 이 웨이퍼 위에 TSMC 같은 회사들이 수조 개의 트랜지스터를 새겨 넣어 비로소 반도체가 된다. 애플은 TSMC 등 칩 제조사들에게 이 웨이퍼를 써달라고 적극적으로 독려하며 글로벌웨이퍼스의 판로를 열어주고 있다.

    휴스턴 창고, ‘맥 미니 공장’으로 변신 중

    공급망의 끝, 완성품 조립 현장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텍사스주 휴스턴의 한 창고에서는 현재 폭스콘과 함께 인공지능(AI) 서버를 생산 중이다. 시간당 약 10대. 아직은 조촐한 규모다. 그런데 올해 말, 이 창고가 탈바꿈한다. 축구장 3개 남짓한 크기(약 1만8580㎡)의 제조 공간으로 확장되면서 맥 미니 조립 라인이 들어선다.

    사비 칸 애플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이전에 오스틴에서 시도했던 맥 프로 생산과는 다르다고 강조했다. 맥 프로는 낮은 수요와 인력 문제로 결국 규모가 쪼그라들었다. 반면 맥 미니는 수요가 더 안정적이라는 판단이다. 칸 COO는 “미래 혁신에 필수적이고 제품 차별화에 기여하는 것들, 즉 부품·하위 조립품·첨단 실리콘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갈 길은 멀다…아이폰은 아직, 첨단 칩도 2030년 이후

    그러나 냉정하게 보면 애플의 미국 공급망은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TSMC 애리조나에서 생산되는 칩은 애플 전체 수요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최신 아이폰과 맥에 탑재되는 가장 핵심적인 칩은 여전히 대만에서만 만들 수 있다. 대만에서는 트랜지스터 크기 2나노미터(㎚) 수준의 최첨단 공정이 가동 중이지만, 애리조나는 현재 4~5나노가 한계다. 2나노 공정이 애리조나에 도입되는 것은 2030년 이후의 일이다.

    아이폰 조립을 미국으로 옮길 계획도 없다. 애플은 맥 미니보다 수백 배 많이 팔리는 아이폰을 여전히 해외에서 조립하고 있으며, 당분간 이를 바꿀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이 모든 움직임의 배경에는 대만을 둘러싼 미중 갈등이라는 지정학적 불안이 깔려 있다. 중국의 대만 무력 통제 위협, 고율 관세 리스크, 대규모 지진에 취약한 지리적 조건까지. 애플이 사막 한가운데 수십조원을 쏟아붓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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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플의 주요 제품들 모습 (WSJ 영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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