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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26 (목)

    이슈 가상화폐의 미래

    [기고] 스테이블코인은 왜 퍼블릭 블록체인으로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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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럴드경제


    1990년대 후반 한국의 PC통신은 ‘망’이 곧 ‘서비스’였다. 천리안·나우누리·하이텔은 각자 전용 세계를 만들었고, 이용자는 그 안에서 뉴스도 보고 채팅도 했다.

    그러나 시장의 방향은 더 큰 전용망이 아니라 더 개방적인 표준으로 기울었다. TCP/IP(인터넷표준프로토콜) 위의 HTTP(하이퍼본문전송규약)와 브라우저가 보급되자 누구나 같은 규격으로 접속하고, 누구나 같은 규격으로 서비스를 만들 수 있게 됐다. 경쟁의 축은 폐쇄형 인트라넷에서 개방형 인터넷 생태계로 이동했다.

    지금 스테이블코인시장에서 벌어지는 변화도 본질은 유사하다. 겉으로는 “어느 코인이 더 크냐, 어느 발행사가 더 신뢰받느냐”의 경쟁처럼 보이지만 더 근본적인 질문은 ‘돈이 흐르는 레일이 어디로 수렴하느냐’다.

    향후 스테이블코인은 글로벌 퍼블릭 블록체인 위의 표준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

    허가형 네트워크(프라이빗 원장) 기반 스테이블코인은 초기에는 통제와 관리 측면에서 안정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네트워크가 서로 연결되지 않으면 규모와 유동성은 제한된다. 특정 네트워크 안에서만 사용 가능한 돈은 글로벌 환경에서 통화라기보다 포인트에 가까워질 수 있다. 연결되지 않은 돈은 확장되지 않는다.

    반면 퍼블릭 블록체인은 동일한 규칙을 공유하는 참여자들이 하나의 원장을 유지하며 거래를 검증한다. 이 위에서 스테이블코인은 특정 애플리케이션의 기능이 아니라 결제·정산·송금의 공용 인프라로 작동한다. 마치 HTTP가 웹서비스의 공용 레일이 됐듯이 스테이블코인은 ‘인터넷 위의 돈’으로서 API처럼 호출되고 다른 서비스와 결합될 수 있다.

    특히 AI 에이전트가 자동으로 결제하는 환경에서는 이러한 구조적 특성이 더욱 중요해진다.

    AI 결제는 원자성, 합성 가능성, 최종성을 동시에 요구한다. 거래는 부분적으로 실패할 수 없고 한 번에 확정돼야 하며, 다른 로직과 자연스럽게 결합돼야 하고, 상태는 지연 없이 최종적으로 확정돼야 한다.

    분절된 네트워크나 다층 구조에서는 이런 조건을 구현하기 어렵다. 단일 합의 레이어 위에서 작동하는 구조가 기술적으로 더 적합한 이유다.

    규제가 퍼블릭 레일을 제약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그러나 준비금, 상환, 공시, 감사라는 신뢰의 표준이 정교해질수록 오히려 거래 기록과 감사 가능성이 큰 구조가 유리해질 수 있다. 핵심은 퍼블릭이냐, 프라이빗이냐의 이분법이 아니라 상환 신뢰를 제도와 운영으로 표준화해 누구나 연결하기 쉬운 돈을 만드는 데에 있다.

    이 지점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전략도 달라진다. 단순히 국내 결제망을 대체하는 수단에 머문다면 확장성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반대로 24시간 B2B(기업 간 거래) 지급, 국경 없는 정산, 글로벌 플랫폼·콘텐츠 정산과 같이 기존 인프라가 느리고 비싼 영역에서 공용 레일로 기능한다면,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은 자연스럽게 글로벌 네트워크와 접점을 만들 수 있다. 글로벌 본질을 전제로 설계할 때만 글로벌 기회가 열린다.

    PC통신 시대의 교훈은 분명하다. 시장은 더 높은 담장이 아니라 더 넓은 표준으로 움직인다. 스테이블코인의 다음 장은 ‘어떤 코인이냐’가 아니라 ‘어떤 레일 위에 서느냐’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오은정 토큰스퀘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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