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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06 (금)

    [논현논단] 인종주의 벽 마주한 ‘글로벌 K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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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대근 한국외대 디지털콘텐츠학부 교수/세계문화예술경영연구소장/한국영화학회장

    음악 통해 세계시민 가치 키웠지만
    차별·혐오 시선 극복과제로 떠올라
    문화자문 상설화 등 제작 고도화를


    이투데이

    첫 번째 장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K팝 밴드 ‘데이식스’ 콘서트. 보안요원이 망원카메라를 든 한국 관객을 제지한다. 이 장면이 사진으로 찍혀 ‘엑스’에 올라온다. 현지 팬들은 ‘무례한 관객’을 비판하는 글과 사진을 잇달아 올린다. 이에 질세라 한국 네티즌이 몰려가 동남아시아인의 외모와 음식 문화를 비하하며 인종차별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한국 대 동남아 구도가 된 온라인 설전이 최근까지 이어진다.

    두 번째 장면. 프랑스 파리의 파리패션위크 ‘생로랑’ 패션쇼. 블랙핑크 로제와 영국 가수 찰리xcx, 미국 모델 헤일리 비버, 배우 조이 크라비츠가 함께 사진을 찍는다. 패션 잡지 ‘엘르UK’는 이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면서 로제 부분을 잘라 버린다. 한국 네티즌은 이런 행위를 인종차별이라 비판한다.

    K팝은 이미 국가의 경계를 넘고, 음악의 장르를 넘어서 세계 곳곳의 문화와 사회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K팝 가수들은 그저 노래만 부르는 게 아니다. 글로벌 패션쇼는 물론이고, 유엔 총회에 참석해 연설하고, 기후 위기 캠페인을 펼치고, 국제 구호와 교육에 참여한다. 예를 들면 ‘K팝포플래닛’은 이런 경향을 잘 보여준다.

    글로벌 대중이 열광하는 K팝은 음악과 ‘세계시민’이라는 가치를 결합하면서 존재감을 키운다. 그런데 때로는 K팝과 팬덤이 스스로 인종차별과 같은 갈등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우리가 인종차별을 당했다고 여겨지면, 가차 없이 상대를 비판한다. 그러나 누군가 우리를 불편하게 하면 상대에게 인종차별 언사를 서슴지 않는다. 상반된 선택을 하는 두 집단은 모두 ‘한국 네티즌’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서구에서 K팝이 여전히 이국적인 볼거리로 소비되는 것은 사실이다. 이들은 K팝 가수들을 세계적인 스타라고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종종 이들을 향한 문화적 위계를 드러낸다. 카메라 구도, 인터뷰 순서, 포토라인 설치 등에 있어 교묘한 방식이 동원된다. 2024년 미국 패션 행사인 ‘멧갈라’에선 파파라치들이 K팝 그룹 스트레이 키즈를 촬영하면서 “점프해 봐” “감정이 없다”라는 등 야유와 조롱을 보냈다.

    K팝 내부에서도 때때로 인종주의를 연상케 하는 재현이 이뤄진다. 흑인, 남미인, 동남아시아인 등을 향한 비하가 버젓이 벌어지기도 한다. 2025년 걸그룹 ‘키스오브라이프’는 멤버 쥴리의 생일을 축하하는 라이브 방송에서 흑인 래퍼 흉내를 냈다. 서양 네티즌은 흑인 문화를 존중하지 않는 태도로 이들을 조롱했다고 비판했다.

    K팝은 글로벌화에 힘입어 세계로 뻗어나갔다. 영어로 부르는 가사와 만국 공통의 움직임을 활용한 댄스는 K팝의 확산을 더욱 촉진하는 요인이다. 그러나 이런 확산은 동시에 서로 다른 관습과 갈등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잠재 요인도 갖고 있다. “잘 몰랐다”라거나 “그럴 의도가 없었다”라는 해명은 어설픈 변명일 뿐이다.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해도 이미 쏟아져 나온 말과 행동은 당사자의 고정관념이 되어 겉잡지 못할 결과를 만든다.

    아시아는 서양을 대하는 태도에서는 연대하지만, 내부의 위계와 혐오 앞에서는 또 다른 구별 짓기를 기획한다. 한국과 동남아 네티즌 사이에 인종차별 발언이 오간 최근 사례는 불편하지만 주목해야 할 신호다. K팝은 아시아 팬덤 덕분에 시장을 키웠지만, 현실에선 동남아 지역을 마치 ‘2등’처럼 대하는 태도가 끈질기게 남아 있다. 플랫폼 알고리즘은 이런 멸시와 분노의 감정을 증폭한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K팝은 아시아 시장을 확장하면서 동시에 아시아를 갈라놓는 역설에 빠지고 만다. K팝이 동남아에서 신뢰를 잃게 되면, 도덕성은 물론 지속가능성도 사라진다.

    K팝은 세계를 얻었지만, 인종주의라는 차별과 혐오의 문제도 함께 마주치게 되었다. 이제 K팝의 실력은 무대 위 퍼포먼스만이 아니라, 무대 밖 타자를 향한 관심과 환대로 평가받게 되었다. K팝은 이를 위한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우선 제작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기획 단계에서 문화 자문을 상설화해야 한다. 음악 콘셉트, 가수의 의상과 언어, 제스처가 특정 인종이나 문화를 희화화하는지 검토하는 장치를 가동해야 한다. 또한 해외 행사에서 언론을 접촉할 때는 상호 존중에 관한 조항을 명문화해야 한다. 인터뷰, 포토라인, 편집과 화면 처리에서 차별로 여겨지는 사안이 일어나면 어떻게 대응할지 계약에 기록해야 한다. 더불어 팬덤 커뮤니티의 자율적 규범을 활성화해야 한다. 혐오 표현이 팬덤으로 포장되면 플랫폼을 제재하고 절연하는 각오를 가져야 한다.

    [이투데이 (opinio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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