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축' 낙인과 깨져버린 합의... 파국으로 향한 치킨게임
참수 작전과 붕괴된 지도부, 70년 불신의 끝은 결국 '화염'
미국과 이란의 역사적 순간들. 상단 왼쪽부터 아약스 작전(1953)→이란 인질 사태(1979)→민항기 격추(1988)→하단 왼쪽부터 악의 축 선포(2002)→에픽퓨리 작전(2026). 챗GPT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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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지난 2월 28일 새벽, 미군과 이스라엘군이 공동으로 전개한 '에픽 퓨리(Epic Fury·장엄한 분노)' 작전은 테헤란의 심장부를 직격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이스라엘 모사드의 정밀한 첩보를 바탕으로 단행된 이번 공습은 군사 시설 파괴에 그치지 않았다. 이란의 최고권력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를 비롯한 고위층 대부분을 잇따라 제거하며 이란 지도체제는 사실상 궤멸적인 타격을 입었다.
한때 중동 내에서 미국의 가장 강력한 '헌병'이자 동반자였던 이란이 어쩌다 이토록 처참한 전장이 됐을까. 그 이면에 숨겨진 70년의 증오를 들여다보면 이번 전쟁이 단순한 정의의 심판이 아닌 엇갈린 외교와 오판이 빚어낸 비극의 결정체임을 알 수 있다.
1. '아약스'의 망령: 서구가 짓밟은 이란의 봄
미국과 이란의 악연은 1953년, 외세의 개입에서 시작됐다. 당시 이란의 모함마드 모사데크 총리는 영국이 독점하던 석유 자원을 국유화하며 이란 민족의 자존심을 일깨웠다. 그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지도자였고, 서구식 가치를 내면화한 지식인이기도 했다. 그러나 냉전의 한복판에서 석유라는 전략 자원을 잃을까 두려워했던 영미권 국가들에게 그는 '제거해야 할 장애물'일 뿐이었다.
미 CIA는 영국의 MI6와 손잡고 '아약스 작전'이라 명명된 비밀 쿠데타를 기획했다. 그들은 뇌물로 매수된 폭력배와 군부 세력을 동원해 테헤란 거리를 혼란으로 몰아넣었고, 결국 모사데크를 축출한 뒤 친미 성향의 팔레비 국왕을 절대 권력자로 복귀시켰다. 이 사건은 이란인들의 가슴 속에 "미국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타국의 민주주의도 서슴지 않고 파괴하는 제국주의자"라는 강렬한 트라우마를 남겼다. 훗날 1979년 혁명의 주역들이 외친 반미 구호의 뿌리는 바로 이 1953년의 배신에 닿아 있다.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왼쪽)과 만난 모하메드 레자 팔레비 이란 국왕. 연합뉴스 |
2. '거대한 사탄'의 탄생과 444일의 모욕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26년간 독재 정치를 펼쳤던 팔레비 국왕의 왕정은 결국 1979년 이슬람 혁명의 물결 앞에 무너졌다. 아야톨라 호메이니를 중심으로 한 혁명 세력은 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관을 점거하고 52명의 미국 외교관을 444일간 인질로 잡았다. 미국인들에게 이 사건은 국가적 수치이자 지울 수 없는 상처였다.
당시 지미 카터 대통령은 인질 구출 작전인 '독수리 발톱 작전'을 시도했으나 헬기 추락 사고 등으로 참담하게 실패하며 정치적 치명상을 입었다. 호메이니는 미국을 "거대한 사탄"이라 부르며 적대감을 고조시켰고, 미국 역시 이란을 "테러리스트 국가"로 규정하며 국교를 단절했다. 이때부터 양국은 대화가 아닌 제재와 비난으로 소통하는 '적대적 공생'의 길로 접어들었다. 444일간의 대치는 미국인들에게는 '이란은 예측 불가능한 광신도 국가'라는 인식을, 이란에게는 '미국은 언제든 우리 체제를 전복하려 할 것'이라는 공포를 심어주었다.
지난해 6월 4일 이란 최고 지도자 알리 하메네이(왼쪽)가 테헤란에서 열린 이란 이슬람혁명 창시자 루홀라 호메이니의 사망 36주년 기념식 참석을 위해 도착하면서 호메이니의 손자 하산 호메이니가 지켜보는 가운데 군중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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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80년대의 혈전과 여객기 격추
1980년대는 두 나라가 직접적인 전쟁을 하지는 않았지만, 서로를 피 흘리게 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암흑기였다. 이란-이라크 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은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에 군사 정보와 자금을 지원했다. 심지어 이라크가 이란군을 향해 국제법상 금지된 화학무기를 사용할 때도 미국은 이를 묵인했다. 이란인들에게 이는 미국이 자신들의 씨를 말리려 한다는 명백한 증거로 받아들여졌다.
결정적인 파국은 1988년 7월에 찾아왔다. 호르무즈 해협을 순찰하던 미 해군 이지스함 빈센스호가 이란 민항기 655편을 공격용 전투기로 오인해 지대공 미사일로 격추한 것이다. 이 사고로 민간인 290명 전원이 사망했다. 미국은 비극적 실수라고 해명했지만 정작 해당 함정의 지휘관에게 훈장을 수여하며 이란의 분노를 극에 달하게 했다. 이 사건 이후 이란 지도부는 미국과 대화란 불가능하며 오로지 강력한 힘만이 자신들을 지켜줄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비밀리에 핵 개발의 길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이란, 이라크, 북한을 '악의축'으로 선포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fnDB |
4. '악의 축'과 핵
21세기의 시작과 함께 갈등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2002년 이란의 비밀 핵시설인 나탄즈 지하시설이 망명 단체에 의해 폭로되자,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연두교서에서 이란을 북한, 이라크와 묶어 "악의 축"으로 선포했다. 이는 이란 내 온건파의 입지를 완전히 좁혀버렸고, '핵 개발은 주권이자 생존권'이라는 강경파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었다.
미국은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통해 이란을 전방위적으로 압박했고 강력한 경제 제재를 가해 이란의 자금줄을 묶었다. 이란은 이에 굴하지 않고 우라늄 농축 시설을 확충하며 맞섰다. 양국은 핵을 매개로 한 치킨게임을 시작했는데, 이는 중동 전체의 안보를 뒤흔드는 시한폭탄이 됐다. 2015년 오바마 행정부가 '이란 핵 합의(JCPOA)'를 이끌어내며 잠시 평화의 기운이 감도는 듯했으나 이조차도 적대적 불신이라는 거대한 벽을 넘지는 못했다.
이란에 대한 공격 발표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 |
5. 트럼프의 '최대 압박'과 솔레이마니의 죽음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015년의 합의를 "역사상 최악의 계약"이라며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이후 전개된 '최대 압박(Maximum Pressure)' 정책은 단순한 외교적 수사가 아니었다. 미국은 이란의 석유 수출을 사실상 0으로 만들기 위해 전 세계 국가들을 압박했고, 금융 거래를 완전히 차단해 이란 경제를 파탄 상태로 몰아넣었다.
갈등의 정점은 2020년 1월, 바그다드 공항에서 단행된 이란 군부의 실세 가셈 솔레이마니 사령관에 대한 드론 암살이었다. 미국은 그를 "수천명의 미국인을 죽인 테러리스트"라고 불렀지만, 이란인들에게는 "미국의 간섭으로부터 나라를 지킨 전쟁 영웅"이었다. 이 죽음은 양국 간의 대화 가능성을 완전히 소멸시켰다. 이란은 복수를 다짐하며 핵 합의에서 규정한 우라늄 농축 제한선을 차례로 무너뜨렸고, 결국 2026년 오늘의 전면적인 군사 충돌로 이어지는 도화선이 됐다.
지난 2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의 한 건물에서 연기가 치솟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지난달 28일부터 이란에 대한 공습을 이어오고 있다.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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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2026년 '극대노', 70년 전쟁의 종착역인가
그리고 2026년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은 더 이상 기다리지 않겠다는 결단을 내렸다. 이란이 우라늄 농축도를 90% 이상으로 끌어올리며 핵무기 완성을 코앞에 뒀다는 정보가 확인되자 트럼프 행정부는 '에픽 퓨리' 작전을 가동했다. 이번 공습은 과거와 달랐다. 단순한 핵 시설 타격에 그치지 않고, 혁명수비대 본부와 지도부의 은신처를 정밀 타격하는 '참수 작전'의 성격을 띠었다.
현재 테헤란의 하늘을 뒤덮은 연기는 70년 전 CIA가 모사데크를 몰아냈던 그날의 연기와 닮아 있다. 트럼프는 "이란 인민들에게 자유를 되찾아주겠다"고 말하지만,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고 유가가 치솟는 현 상황에서 진정한 자유를 얻는 이가 누구일지는 의문이다. 세계 곳곳에선 이란 지도부의 붕괴 이후 펼쳐질 '포스트 이란'의 혼돈을 두고 이라크 전쟁 이상의 재앙이 될 수 있다는 경고가 쏟아지고 있다. 앞으로 미국과 이란의 미래는 어떻게 쓰여질 것인가.
미국-이란 역사적 사건. 제미나이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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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m@fnnews.com 김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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