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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06 (금)

    [이형석칼럼] ‘도파민이 코인이다’…중독지향의 변연계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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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럴드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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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빵보다 맥주가 먼저였다. 인류가 사냥과 수렵의 유목 생활을 끝내고 한 곳에 정착해 농경을 시작하게 된 것은 발효된 보리죽, 곧 맥주를 안정적으로 얻기 위해서였다. 기원전 6000년경, 수메르인들은 메소포타미아 평원에 무성하게 자라는 야생 밀과 보리가 주식이었다. 너무 거칠어 돌로 빻아 물에 불려 먹었다. 그러던 어느날 한 수메르인이 사냥을 끝내고 돌아와 보니 물에 담가놓은 곡물가루에서 독특한 향기가 났다. 발효됐기 때문이다. 부드럽고 맛도 좋았지만 난생 처음의 황홀한 기분까지 더해졌다. 맥주의 발명 혹은 발견이다. 수메르인들은 “맥주는 곧 즐거움이요, 고통은 탐험이다”라고 했다.

    술이 농업혁명의 강력한 동기였다면, 설탕은 석탄과 함께 산업혁명의 ‘연료’가 됐다. 석탄이 증기기관을 돌렸고, 설탕은 노동자들을 움직이게 했다. 특히 각성성분이 함유된 차·커피와, 저용량 고열량 식품인 설탕의 결합은 생산 효율을 높이는데 획기적이었다. 카페인은 노동자들이 피로를 잊게 했고, 정제당은 배고픔을 물리쳤을 뿐 아니라 뇌를 즐겁게 했다.

    영국 경제학자 올리버 윌리엄슨은 “차와 설탕이 없었다면 영양이 부족한 식단을 먹는 공장 노동자들은 그렇게 열심히 일할 수 없었을 것이고, 인류 산업혁명의 발전은 이뤄지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차, 커피, 설탕은 모두 유럽과 아프리카, 아시아, 아메리카 대륙을 잇는 삼각무역, 노예무역의 산물이라는 점에서도 자본주의 발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상품이었다. 유럽의 무역선들은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실어 카리브해의 커피·사탕수수 농장으로 날랐다. 본토로 돌아오는 배에는 아시아·아메리카 식민지에서 생산한 차와 원두, 설탕이 실려 있었다. 알콜, 카페인과 당에 대한 사람 뇌의 끝없는 갈구가 없었다면 농업혁명도, 산업혁명도, 자본주의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맥주가 농업혁명을, 설탕이 산업혁명을 낳았다면 정보통신기술혁명을 이끈 것은 컴퓨터와 스마트폰이다. 그렇다면 반도체칩으로 이루어진 환상적인 자극-반응 기계인 디지털기기와 알코올이나 정제당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인간 뇌의 보상 시스템을 활성화해 도파민을 분비시키는 ‘중독성’이다. 곧 컴퓨터와 스마트폰에서 클릭, 탭과 함께 즉각적으로 사용자에게 주어지는 모든 형태의 시청각적 정보는 뇌과학의 관점에선 설탕, 알코올, 카페인과 다르지 않은 ‘중독 물질’이자 ‘디지털 약물’이라는 얘기다.

    물론 그에 뒤따르는 결과로서 온·오프라인에서 상품구매와 배송, 입·출금, 투자, 베팅, 손익 등 시스템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스탠퍼드대 정신의학과 교수 애나 렘키는 인터넷을 ‘디지털 약물 주사기’라고 했다. 미국 역사학자인 데이비드 T.코트라이트는 쾌락의 보상과 습관화를 이윤의 원천으로 삼는 중독 지향의 현대사회를 일러 ‘변연계 자본주의’라고 했고, 애나 렘키는 ‘도파민 네이션’이라고 이름붙였다. 이보다 이르게 197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허버트 사이먼이 ‘주의력(관심, 주목) 경제’(Attention Economy)라고 이론화한 개념도 일맥상통한다. ‘도파민 경제’나 ‘중독 경제’ 쯤으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도파민은 화폐이자 코인

    도파민은 쾌락을 얻거나 기대할 때 뇌에서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이다. 기분 좋은 자극에 대한 뇌의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동물의 진화 과정에서 생존과 번식을 위한 원초적인 기능을 했을 것이다. 먹이를 먹거나 짝짓기에 성공했을 때 느꼈던 쾌감은, 그 대상을 보기만 해도 재생되는 학습효과로 이어졌을 것이다. 이는 특정 대상이나 자극을 선별해 신경을 집중시키고 그것을 얻기 위해 행위하게 하는, 포유류 특유의 ‘주의력’ 원천이 됐다. 도파민이 쾌감 뿐 아니라 동기부여, 학습, 집중력에 관여하는 신경전달물질이라고 설명되는 이유이자 허버트 사이먼이 ‘주의력 경제’라는 개념을 만든 이유다.

    도파민은 ‘즐거운 체험’ 그 자체보다도 ‘즐거운 체험을 예측하게 하는 신호’에 더 강하게 반응하고, ‘보상 그 자체의 쾌락을 느끼는 과정’ 보다 ‘보상을 얻기 위한 동기 부여 과정’에 더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이 최근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그러므로 도파민이 ‘행복 호르몬’이라고 하는 말은 절반만 맞는다. 도파민 자체가 행복감이라기 보다는‘행복감에 대한 기대와 갈망에서 비롯된 쾌감’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 즉 먹이를 먹을 때보다도 사냥을 할 때 도파민이 더 활성화된다는 얘기다.

    도파민은 특정한 구조를 가지는 작은 분자이자 화학물질일 뿐이다. 자극이 설탕이든, 술이든, 마약이든, 놀이이든, 게임이든, 도박이든, 성행위(포르노)이든 분비되는 도파민은 항상 같은 물질이다. 다만 더 빠르게 더 많이 분비될수록 인간의 뇌가 느끼는 쾌감은 더욱 강렬해지고, 대상·자극을 향한 갈망은 더욱 커진다. 도파민은 빠르고, 강하며, 새롭고, 예측할 수 없는 자극과 보상일수록 더 많이 분비된다. 같은 종류, 같은 양, 같은 강도의 자극에는 점점 더 도파민 수치가 낮아진다. 이것이 도파민의 내성이며, 모든 중독의 근원이다. 도파민과 자극을 일종의 ‘교환관계’라고 하면, 도파민은 다만 그 양과 크기, 회전 속도만이 문제가 되는 ‘화폐’이자 ‘코인’이라고 할 수 있다. 도파민과 거래되는 자극(대상)이 문제일 뿐, 도파민 그 자체엔 도덕이나 윤리가 없다는 점도 화폐 혹은 코인과 같다.

    더 강한 ‘맵단짠’, 더 많은 ‘알림’과 ‘구독’ ‘좋아요’

    설탕, 소금, 고추는 인간의 혀가 느끼는 쾌락의 원천이자, 인류의 생물학적·문화적 진화에 중요한 역할을 해온 식재료다. 적당한 양을 섭취하면 건강에 이롭지만, 너무 많이 먹으면 각종 질병의 근원이 되는 중독성 강한 물질들이기도 하다. 특히 화학의 발전으로 대량의 식품가공산업이 번창한 이후 더 달게, 더 짜게, 더 맵게 중독성이 강한 맛에 길들이려는 각 회사들의 경쟁이 치열해졌다. 천연 재료로부터 단 맛과 짠 맛, 매운 맛만을 추출해 인공적으로 만든 화합물의 사용도 일반화됐다. 그 결과는 당뇨, 비만, 고혈압 등 각종 성인병 유병률의 증가였다.

    설탕과 알코올같은 자극이 더 많이, 더 강하게 중독성을 추구하는 상품이라면, 디지털 콘텐츠와 온·오프라인 게임은 더 짜릿하고, 더 즉각적이며, 더 예측불가능한 보상을 제공함으로써 시간이 갈수록, 횟수를 거듭할수록 사용자의 기대와 갈망을 증폭시키는 시스템이다. 각종 ‘알림’과 알고리즘에 의한 추천, 무한 스크롤·스트리밍, 랜덤·확률형 아이템 등이 중독성을 강화하는 요소다.

    또 대부분이 무료이거나 소액 결제 시스템으로, 사용자가 체감하는 보상을 더 크고 만족스럽게 느끼도록 한다는 공통점도 있다. 그러나 플랫폼 기업이 콘텐츠 제공의 대가로 얻는 것은 단지 무료이거나 소액인 구독료 뿐 아니라 사용자, 그 자체다. 사용자의 시간과 온라인의 행위패턴을 데이터화함으로써 더 많은 광고에 노출시키고, 더 많은 서비스에 대한 추가 구독과 지불로 이어가도록 하는 것이다.

    특정 플랫폼의 생태계에 소비자를 붙들어두는 것을 ‘록-인’(lock-in)이라고 하며, 그 기간 동안 시대되는 기업의 총수익을 소비자생애가치(LTV)라고 한다. 요컨대 사용자의 관심을 끌어 도파민을 자극하고 중독성을 강화해 LTV를 극대화하는 것이 ‘플랫폼자본주의’ ‘주의력경제’ ‘도파민경제’에서 기업의 목표라고 할 수 있다.

    중독을 둘러싼 전쟁

    중독성 강한 물질들은 농업혁명, 산업혁명 뿐만 아니라 세계사의 중요한 고비마다 전쟁과 갈등의 불씨가 됐다. 19세기초, 프랑스 황제로 즉위한 나폴레옹은 유럽과 영국과의 교역을 금지하는 ‘대륙봉쇄령’을 내렸다. 무역전쟁이었고, 핵심 타깃은 영국이 독점하는 백설탕이었다. 그런데 프랑스인들은 이미 단맛에 길들여져 있었다. 영국에서 들여오던 백설탕이 끊기자 가격이 폭등했다. 나폴레옹은 대안을 마련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나폴레옹의 지원 아래 프랑스는 사탕수수 대신 사탕무를 재배해 설탕으로 정제하는 방법을 개발했고, 프랑스산은 유럽의 주 공급원이 됐다.

    미국 독립전쟁의 불씨는 사탕수수로 만든 증류주인 럼주와 차였다. 럼주는 와인보다 저렴하고 도수도 높으며 저장도 용이해 영국 해군 뿐 아니라 식민지 미국에서도 인기가 좋았다. 그런데 럼주 원료인 당밀의 영국산은 비싸고, 프랑스산은 저렴했다. 미국이 프랑스산을 밀수해 럼주를 제조하자, 영국은 이를 금지하는 것은 물론 미국산 럼주에도 세를 거두려했다. 이에 대한 미국 식민지 주민들의 반발로 일어난 것이 ‘보스턴 차사건’이다. 미국 건국의 주역인 제2대 대통령 존 애덤스는 “럼주와 당밀은 미국 독립운동의 필수 요소였다”고 했다.

    ‘아편전쟁’은 영국이 ‘좋고 약한’ 중독물질인 차를 얻기 위해 ‘나쁘고 강한’ 중독물질인 아편을 팔아 일어난 전쟁이었다. 중독과 도파민을 둘러싼 전쟁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펜타닐’(합성마약)과의 전쟁을 명분으로 중국, 캐나다, 멕시코 등과 벌이는 무역전쟁은 가히 현대판 ‘아편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 각국은 자국 플랫폼 기업들을 보호하기 위해 국운을 걸고 개방과 규제, 반독점 경쟁을 하고 있다. 구글 출신의 기술윤리학자 트리스탄 해리스는 스마트폰을 가리켜 “수(십)억 명의 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슬롯머신”이라고 했다. ‘도파맨의 무한 생성기’인 그 작은 기계 위에서 글로벌 이윤 경쟁과 중독-규제의 전쟁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호주는 최근 16세 미만의 SNS 사용을 금지했으며, 프랑스·영국·벨기에·네덜란드 등은 학교 내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하고 일부는 스마트폰 판매 제한을 추진 중이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국민에 의견을 구하는 형식으로 ‘설탕세 도입’을 언급했다. 설탕세는 주류세, 담뱃세 등과 함께 대표적인 ‘죄악세’로 꼽힌다. 술, 설탕, 담배 등은 국민 건강을 위해 정부까지 개입하는 규제·관리 품목이지만, 정부의 막대한 세입원이기도 하다. 캐나다와 미국 일부 주, 태국, 독일 등이 기호용이나 의료용의 마리화나를 합법화한 것도 유통관리와 세수가 목적이다.

    한편에선 기업들이 더 달고 더 짠 맛으로 소비자들의 미각을 중독시키기 위한 식품을 개발하고, 한편에선 식욕을 자극하는 광고, 영상, ‘먹방’들이 넘쳐나는 소셜미디어들이 있다. 그 반대편에선 위고비와 마운자로 등 비만·성인병 치료제의 거대한 시장이 있다. 중독의 ‘역설’이자 중독이 만들어낸 기업-정부-사용자의 거대한 생태계라 할 것이다.

    대부분의 중독성, 독성 물질들은 소량 혹은 적당량을 사용하면 인체에 이롭지만, 일정 수준을 넘으면 치명적이다. 이 현상을 ‘호르메시스’라고 한다. 아마도 ‘도파민 경제’ ‘변연계 자본주의’ 자체에 대해서도 ‘호르메시스’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들의 ‘중독 설계’와 규제를 통한 ‘윤리적 디자인’을 향한 정부·시민사회의 합의와 균형의 선이 ‘호르메시스’가 될 것이다. 이제 우리 사회도 중독에 대해 더 솔직하고 더 많은 논의를 해야 할 때다.

    주요 참고문헌 : ‘세계를 점령한 중독경제학’(쑤친 지음, 이든서재), ‘중독의 시대’(데이비드 T.코트라이트, 커넥팅), ‘도파민 네이션’(애나 렘키, 흐름출판), ‘도파민의 배신’(강웅구 외, 포르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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