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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지금여기는 2026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 ‘포말’을 무대에 올린다. ‘포말’은 제주도 호텔 스위트룸을 배경으로, 한 가족이 여행이라는 명목 아래 모였으나 결국 각자의 상처와 기억을 마주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작품 속 호텔은 푸른 바다와 노을, 고급 인테리어와 은은한 향기로 상징되는 ‘성공과 풍요의 공간’이다. 그러나 그 화려한 공간의 중심에 놓인 침대는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닌다.
작품에서 어머니는 대부분 침대에 누워 있다. 침대는 병든 몸이 놓이는 자리이며, 가장 약한 상태가 드러나는 공간이다. 화려한 리조트의 이미지와 달리, 그 침대 위에서는 인간의 취약함과 가족의 진실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러나 어머니는 단순히 아픈 존재가 아니다. 그는 직접적으로 갈등을 폭발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대부분 침묵하고, 버티고, 눕고, 숨을 고른다. 그는 가족을 지탱해 온 인물이지만, 자신을 앞세우지 않았던 존재다. 오랜 시간 돌봄과 희생으로 가족을 유지해 왔지만, 그 중심에서 자신의 목소리는 늘 뒤로 밀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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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 위에 누운 그의 모습은 약함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가족의 시간을 온몸으로 감당해 온 흔적이다. 그 침묵은 무력함이 아니라, 버팀의 방식이다.
이와 대비되듯 아버지는 과거의 폭력과 권위에서 자유롭지 못한 채 흔들리고, 아들은 조급한 성공을 좇으며 불안을 드러내며, 딸은 오래 묻어두었던 기억을 꺼내 가족의 균열을 직면한다. 겉으로는 완벽해 보이는 호텔 방 안에서, 이 가족의 관계는 서서히 무너진다.
이번 연출은 침대를 단순한 가구가 아니라 ‘가족의 기억이 응축된 중심 공간’으로 해석한다. 침대는 휴식과 보호의 장소이지만, 동시에 상처와 갈등이 터져 나오는 자리다. 어머니가 누워 있는 그 공간은 가족의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지점이며,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진실의 자리다.
무대는 이 침대를 상징하는 중심 공간에서 여러 갈래로 확장되는 구조로 설계되었다. 이는 하나의 공간에서 출발한 가족이 서로 다른 선택과 감정의 방향으로 흩어졌음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연출은 사실적인 호텔 재현을 넘어, 침대라는 상징을 통해 가족의 내면과 관계의 균열을 드러내는 데 집중한다.
‘포말’이라는 제목처럼, 인물들의 감정은 물 위에 잠시 떠올랐다 사라지는 거품처럼 터져 나온다. 그러나 그 흔적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이 공연은 화려한 외피 아래 숨겨진 취약성과 기억을 직면하게 하며, 관객 각자의 가족을 떠올리게 하는 질문을 던진다.
화려한 호텔 침대 위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가장 약한 순간들.
‘포말’은 우리가 외면해왔던 가족의 얼굴을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마주하게 하는 작품이다.
연출 차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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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의도
‘포말’은 서로를 버티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시간을 무대 위에 그대로 놓는 데서 출발한다. 말하지 못한 말과 피한 시선, 멈춘 순간들이 공간에 축적되며 가족이라는 관계의 균열과 돌봄의 무게가 서서히 드러난다. 화려한 호텔이라는 편안한 환경은 오히려 사랑과 책임, 피로가 공존하는 구조를 또렷하게 비추는 장치로 작동한다. 연출은 조명과 음향, 배우의 호흡과 거리, 정지의 시간을 통해 관객이 어느 순간부터 불편해졌는지 모른 채 그 시간 안에 머물도록 이끈다. 다만 우리가 정말 그 관계에서 벗어난 것인지, 아니면 서로를 버티며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조용히 묻고, 그 끝에 남아 있는 애정과 삶의 온기를 바라보게 하고자 한다.
작가의도
살다 보면 ‘미안해’, ‘괜찮아’라는 말을 굳이 꺼내지 않아도 어느새 화해되어 버리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어긋난 태도와 엇박자의 말조차 어떤 관계 안에서는 사과로, 또 용서의 신호로 읽히기도 합니다. 저는 그것이 한결같지 못한 인간의 모습이 만들어내는, 숨이 트이는 자연스러운 순환이라고 생각합니다.
함께 산다는 건 그런 이해와 오해가 겹쳐지는 시간의 연속일지도 모릅니다. 우리에게 상처를 준 사람이 어떤 날에는 끔찍하지만, 또 다른 얼굴을 보여주기도 한다는 사실. 그 모순을 견디며 관계는 이어집니다.
시간이 저절로 용서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선과 악, 원인과 결과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지점이 분명 존재합니다. ‘봐준다’는 말처럼, 바라본다는 것과 넘어가 준다는 것 사이에서 우리는 조금 더 너그러워지는 법을 배워가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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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은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4월2일~5일 P.M3시/배우 박상규, 문기영, 소윤호, 김현아/드라마트루기 이유라/음악작곡 정재헌/의상 유미, 사진 우연호/포스터영상 이유신/홍보물 이상희/무대감독 강태우/조연출 황휘윤/조명오퍼 전현준
강석봉 기자 ks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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