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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05 (목)

    “지금 그린 그림이 제일 힘 있다”…77세 화가 이명미[문화人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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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손갤러리 서울·대구 동시 개인전

    원색의 강렬한 화면, 놀이 같은 회화

    “그림이 너무 슬퍼지면 안 돼…희망의 에너지 담아”

    뉴시스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5일 이명미 작가가 우손갤러리 서울에서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2026. 03.05. hyun@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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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지금 내가 일흔일곱 살인데, 지금 그린 그림이 제일 힘이 있어요.”

    5일 서울 성북로 우손갤러리에서 만난 이명미 화백은 강렬한 원색의 그림 앞에서 환하게 웃었다. 캔버스에 번지는 색처럼 그의 표정도 밝았다. 작품만 보면 요즘 젊은 작가의 그림처럼 보일 만큼 화면은 경쾌하고 힘차다.

    밝고 명랑한 화면이지만 그 안에는 동서양을 가로지르는 존재론적 질문과, 삶의 굴곡에서 길어 올린 ‘찬란한 슬픔’이 함께 스며 있다.

    대구에서 성장한 중학생 시절 그의 꿈은 화가가 아니었다. 판사가 되고 싶었다. 공부도 잘했고 책 읽기를 좋아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는 기자가 되고 싶기도 했다. 역사와 글쓰기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마음이 흔들렸다. 미술반으로 향하는 친구들을 보며 “그림이 그리고 싶다”는 충동이 올라왔다. 언니가 이미 미대를 다니고 있어 처음엔 같은 길을 가는 게 싫었다. 신문방송학과나 역사학과 진학도 고민했다. 하지만 끝내 마음을 눌러두지 못했다.

    “어릴 때부터 그림을 좋아했어요. 그런데 언니가 미대를 다니니까 따라 하는 것 같아서 일부러 다른 길을 가려고 했죠. 그런데 도저히 못 견디겠더라고요.”

    뉴시스

    Landscape, 2025, acrylic and cloth on canvas, 130.3x162cm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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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 진학했다. 아카데믹한 분위기보다 실험적 기류가 강했던 홍대가 더 맞았다. 68학번 대학 시절 동기로는 단색화 ‘벌집’ 작업으로 알려진 故 김태호, 김용익 등이 있다.

    다만 그는 “무리를 짓는 작가”는 아니었다.

    “나는 홍대에서 단체 활동 같은 건 잘 안 했어요. 맹수는 혼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집안 환경도 작가의 감각을 키웠다. 일본 중앙대 출신의 판사였던 아버지와 독서를 좋아하던 어머니 덕분에 집에는 책이 많았다. 언니 ‘향미’와 자신의 이름 ‘영미’ 역시 어머니가 읽던 소설에서 따온 것이다. 사진이 취미였던 아버지는 집 안에 암실까지 만들었다.

    “집게로 사진을 들어 올리는 순간 색감과 이미지가 변하는 게 너무 신기했죠. 아마 그때 색에 대한 감각이 자연스럽게 생긴 것 같아요.”

    삶의 굴곡도 있었다. 이란성 쌍둥이였던 딸을 먼저 보냈고 미대를 같이 다니던 향미 언니도, 남편도 세상을 떠났다. 위암 수술도 받았다. 그럼에도 그는 “그림 앞에서는 슬픔에만 잠기지 않겠다”고 했다.

    “그림이 너무 슬퍼지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슬픔이 있으면 거기서 도망도 가야죠. 그림은 재미도 주고 꿈도 줘야 하잖아요.”

    작업 방식도 자유롭다. 사전 스케치 없이 화면 위에서 바로 시작한다.

    “스케치 같은 건 거의 안 해요. 그냥 생각나는 대로, 변덕나는 대로 그려요. 그게 더 재미있어요.”

    이명미의 회화는 강렬한 원색과 단순한 형태, 문자와 기호가 뒤섞인 화면으로 잘 알려져 있다. 1970~80년대 한국 화단이 단색화와 미니멀리즘으로 기울던 시기에도 그는 알록달록한 색채의 회화를 밀고 나갔다. 박서보, 권영우, 이동엽 등의 ‘흰색 단색 회화’가 주류였고 일본에서는 모노하의 거장 이우환이 주목받던 때였다. 당시 동경화랑에서도 개인전을 열었던 그는 그 흐름에 휩쓸리기보다 자신만의 색채 회화를 선택했다.

    홍익대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한 그는 국전을 비롯해 ‘앙데팡당전’, ‘서울현대미술제’, ‘한국실험작가전’ 등에 참여하며 활동 영역을 넓혔다. 1974년 대구현대미술제 창립 멤버이자 최연소 여성 참가자로 이름을 올리며 일찍부터 화단의 주목을 받았다. 단색화와 개념미술 중심이던 당시 흐름 속에서도 감성과 직관을 앞세운 회화적 언어를 구축하며 독자적인 작업 세계를 이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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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ndscape,181.8x227.3cm,acrylic+cloth on canvas,1990-2026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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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미, Follow me, 2000-2026, acrylic and cloth on canvas, 181.8 x 227.3 cm (150F)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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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작업 세계는 ‘놀이’다.

    “그림은 저에게 일종의 플레이예요. 놀이이기도 하고 게임이기도 하죠. 인간이 ‘호모 루덴스’라고 하잖아요. 결국 몸과 마음이 캔버스 앞에서 어떻게 움직이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또 그는 “할 말이 많다고 화면까지 구석구석 붙어서 설명하면 짜증난다”고 했다. 음식에 비유하면 재료를 과하게 얹는 순간 오히려 맛이 흐려진다는 것이다. 자신의 그림을 비빔냉면과 물냉면에 빗대며 색감이 강한 그림과 절제된 그림의 차이를 설명하기도 했다. “고춧가루를 넣느냐, 빼느냐의 차이 같은 거죠.”

    “음식도 재료가 너무 많으면 지저분해지잖아요. 잔치국수도 재료가 적을수록 좋을 때가 있듯이요. 그림이 작가를 괴롭히면 안 된다는 주의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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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 산보 A Night Walk, 60.6x72.7cm, Acrylic on canvas, 2025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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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그림이 한 방향으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큰 그림은 눕혀 놓고 사방에서 작업한다.

    “우리가 운동장에 들어갈 때 정문으로도 들어가지만 담을 넘어 들어가기도 하잖아요. 그림도 그렇게 여러 방향에서 들어갈 수 있어요.”

    최근 이명미는 ‘제26회 이인성미술상’ 수상자로 선정되며 지역 미술계와 오랜 시간 쌓아온 성취를 다시 한 번 인정받았다.

    우손갤러리는 5일부터 5월 9일까지 서울과 대구에서 이명미 개인전 ‘얼마나 많은 이명미가 필요한가’를 연다. ‘Follow Me’(2000~2026), ‘Landscape’(1990~2026) 등 30여 년에 걸친 작품과 최근작을 함께 선보인다.

    서울 전시는 원색의 소품과 연작 중심으로, 대구 전시는 텍스트 콜라주와 대형 작업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화면에 등장하는 텍스트는 어린 시절 즐겨 읽었던 고우영 만화 ‘삼국지’의 흔적이기도 하다. 영어로만 쓰던 글귀는 한글로도 변화했다.

    그는 언어의 사용이 거창한 선언이라기보다 “지금의 감각을 붙잡는 메모”에 가깝다고 했다. “나이가 들수록 입에서 나오는 건 더 ‘한식’처럼 한국적인 감각이 된다”고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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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5일 이명미 작가가 우손갤러리 서울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6. 03.05. hyun@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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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은 나이를 먹지 않는다. 이번 전시는 회고가 아니다. 오히려 현재 진행형의 작업을 보여주는 자리다.

    “예술은 없는 걸 찾아가는 길이잖아요.”

    그는 자신의 작품 앞에서 “이 나이에 이런 그림은 나밖에 못 그린다”고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작업에 대한 확신이 묻어났다.

    “나는 지금 77살인데 앞으로가 더 기대돼요. 멈추지 않고 계속 걸어갈 겁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hyu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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