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06 (금)

    이슈 애니메이션 월드

    벚꽃의 속도로 흐른 시간…오쿠야마 감독 ‘초속 5센티미터’ [인터뷰]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 애니 실사 영화

    다른 속도로 살아가는 첫사랑 두 남녀

    “미시가 거시가 되는 보편적 이야기”

    헤럴드경제

    영화 ‘초속 5센티미터’ 스틸컷 [㈜미디어캐슬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멈춘 듯 잔잔한 시간의 질감과 아련한 추억의 흔적들, 한껏 빛나는 사계의 풍경과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첫사랑의 그리움까지….

    ‘애니메이션 거장’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2007년 작품 ‘초속 5센티미터’가 실사 영화로 돌아왔다. 원작의 감성을 집요하게 구현해 낸 영화 ‘초속 5센티미터’는 2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채 맺어지지 못한 로맨스를 감도 높게 그려낸다. 같은 출발점에 서 있었지만 결국 다른 속도로 현재를 살아가는 타카키(마츠무리 호쿠토 분)와 아카리(타카하타 미츠키 분)의 이야기. 엇갈려 나가는 시간과 교차하는 장면 속에 가득 새겨진 섬세한 호흡이, 마치 한겨울에 소복이 쌓인 눈처럼 깊은 여운으로 내려앉는다.

    영화 ‘초속 5센티미터’를 연출한 오쿠야마 요시유키 감독을 최근 서울 종로구 모처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고등학교 때 처음으로 원작을 봤다는 그는 2년여 전 이 작품의 연출을 제안받았다. “부담보다는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당시 그의 나이는 신카이 감독이 원작을 제작했던 나이와 같은 서른셋이었다.

    헤럴드경제

    오쿠야마 요시유키 감독 [㈜미디어캐슬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30대 초반은 아이와 어른의 중간지점에 있는 나이잖아요. 과거에 대한 미련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 공존하는 시기죠. 그래서인지 신카이 감독이 그랬던 것처럼, 더욱 절실함을 갖고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1991년 봄, 새 초등학교에 전학해 온 아카리는 같은 처지였던 타카키와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초속 5센티미터래. 벚꽃잎이 떨어지는 속도.” 내년에도 함께 벚꽃을 보자는 아카리의 외침은, 그가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사를 하며 이뤄지지 않는다.

    두 사람은 먼 거리에서도 편지를 통해 서로의 마음을 나눈다. 그리고 1995년 겨울, 타카키 역시 먼 타지로 이사를 가게 되자 둘은 아카리가 사는 이와후네에서 만난다. 거센 눈보라를 헤치며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여정을 마친 타카키와 그런 타카키를 기약 없이 기다린 아카리. 두 사람은 하얀 눈밭 위에 둘만의 발자국을 남기며 약속한다. “2009년 오늘, 이곳에서 다시 만나자.”

    2008년 도쿄, 개발자가 된 30대의 타카키는 떠밀리듯 숨 가쁘게 매일을 살아간다. 그럼에도 타카키의 시간은 미처 나아가지 못한 채 먼 미래의 일이었던 그날의 약속에 머무른다. 도쿄의 한 서점에서 일하는 아카리는 결혼과 해외 이주를 앞둔다. 타카키에게 첫사랑이 멈춰있는 ‘추억’이라면, 아카리에게 그것은 함께 나아가는 ‘일상’이다. 같은 시간을 통과해 같은 도시에 도착한 두 사람은 이렇듯 전혀 다른 속도로 현재를 통과한다.

    헤럴드경제

    영화 ‘초속 5센티미터’ 스틸컷 [㈜미디어캐슬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헤럴드경제

    영화 ‘초속 5센티미터’ 스틸컷 [㈜미디어캐슬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원작은 주인공 남녀의 10대부터 30대까지 이야기를 3편으로 분절시킨 옴니머스 영화다. 오쿠야마 감독은 이처럼 원작 속 제각기 흐르는 시간을 하나의 줄기로 엮었다. 3개의 다른 시대를 잇기 위해 단어와 음악, 물건 등을 연결고리로 활용했다. 현재와 과거를 교차하는 방식으로 주인공 내면의 변화와 시간의 무게감을 강조하는 것은 감독의 의도적인 연출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가혹한 것인지에 대해서 느끼게 만들고 싶었어요.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 찬 눈빛을 가진 소년이 지금은 책상에서 모니터만 바라보는 삶을 사는 것처럼요. 명확한 대비를 통해 ‘이렇게 사는 것이 괜찮은가’하는 의문도 느끼게 하고 싶었어요. 무엇보다 주인공인 타카키의 변화를 가장 뚜렷하게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었다고 생각해요.”

    오쿠야마 감독은 연출을 승낙한 후 원작 애니메이션의 모든 컷을 캡처해 분석했다. 컷의 구성과 카메라의 움직임, 줌(zoom·피사체에 다가가거나 멀어지는 것)과 팬(pan·피사체를 따라 움직이는 것), 필터의 사용 유무 등까지도 빠짐없이 들여다봤다. 그렇게 200페이지 분량의 원작 분석 자료가 완성됐다. 영화 곳곳에 녹아있는 원작과의 완벽한 싱크로율은 이러한 노력의 결과다.

    “신카이 감독이 한 컷 한 컷을 어떤 의도를 갖고 만들었는지 발견하는 것이 중요했어요. 가령 신카이 감독의 작품은 광선을 일직선으로 표현하는 것이 특징인데, 그런 부분에서 필터를 썼는지까지도 파악했죠. (원작 개봉 이후) 20년이나 지났기 때문에 그것을 바꿀지 말지를 판단하는 것이 다음 단계였어요. 감독의 의도를 그대로 따라서 완전히 똑같이 한 부분도 있고, 바꾼 부분도 있죠.”

    헤럴드경제

    오쿠야마 요시유키 감독 [㈜미디어캐슬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원작 속 타카키의 내래이션도 과감히 생략했다. 대신 배우들의 연기로 캐릭터의 내면을 표현했다. 감독은 “실사가 애니메이션과 갖는 가장 큰 차이는 살아있는 인간이 연기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간이 무의식적으로 움직이는 부분이 많아요. 가령 손과 눈의 움직임, 특유한 말투 같은 것이요. 그런 것을 포착하는 것은 실사만이 할 수 있어요. 독백이나 내래이션보다, 가능하면 인간이 보여주는 아주 작은 기색이나 기미로 언어를 대신하고 싶었어요.”

    벚꽃처럼 눈이 내리는 설경, 눈처럼 내리는 벚꽃, 한여름의 햇볕을 튕겨낸 반짝이는 바다. 영화는 숨 막히게 아름다운 자연으로 시간과 감정의 여백을 대신한다. 예컨대 이와후네에서 만난 두 사람이 눈밭 위에서 입을 맞추는 순간에는 펑펑 내리던 눈이 시간이 멈춘 듯 속도를 거둔다. 1초가 영원같이 느껴졌을 두 사람의 감정을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다.

    “벚꽃이나 눈이 내릴 때 속도와 방식에 노력을 기울였어요. 그 모든 것이 인물의 감정과 통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요. 사실 우리는 일상을 살아갈 때 풍경을 보면서 무언가를 느낄 때가 많거든요. 영화를 통해 관객들이 인물의 연기만이 아니라, 풍경을 통해서도 다양한 감각을 풍부하게 느끼게 하고 싶었죠.”

    헤럴드경제

    영화 ‘초속 5센티미터’ 스틸컷 [㈜미디어캐슬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헤럴드경제

    영화 ‘초속 5센티미터’ 스틸컷 [㈜미디어캐슬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언젠가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며 했던 기약 없는 약속. 추억에 저당 잡힌 채 좀처럼 나아가지 못하는 현재. 그럼에도 미래에 대한 불안에 무작정 앞으로 질주할 수밖에 없는 현실. 주인공 타카키의 내면을 깊숙이 들여다보는 영화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통해, 누구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는 보편성을 담아낸다. 오쿠야마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서 목표로 하는 지점도 바로 여기다.

    “‘초속 5센티미터’는 마이크로(미시)가 매크로(거시)가 되는 이야기에요. 영화 촬영을 시작하며 스태프와 연기자들에게 했던 이야기도 ‘누군가의 솜털을 바라보고 있다 보면, 세계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누구나 알 수 있는 진실을 알 수 있는 영화이길 바란다’는 것이었어요. 저는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우주를 발견하는 느낌의 영화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