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석유사업법 23조는 ‘석유 판매가격 최고액 결정·고시 제도’를 규정하고 있다. 석유의 수입·판매 가격이 현저하게 등락하거나 등락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 산업통상부 장관이 석유 정제업자·수출입업자 또는 판매업자에게 최고액을 설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기름값 상한제’라고 할 수 있다.
1차 오일쇼크의 여파가 지속되던 1977년 정부가 개최한 '에너지 10% 절약 열관리 궐기 대회'의 모습. /국가기록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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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유 최고가격 제도 1970년부터 존재… 2000년대 이후 발동 사례 없어
석유 판매가격 최고액 결정·고시 제도는 지난 1970년 석유사업법 제정 당시부터 있었다. 예컨대 1994년 2월 15일부터 3월 14일까지 한 달 동안 최고액 결정·고시가 발령된 바 있다. ℓ(리터)당 도매(제조장 반출) 가격이 무연 휘발유 171원79전, 경유 128원73전 등으로 결정된 것이다. 소비자 가격의 상한은 ℓ당 휘발유 608원, 경유 216원이었다. 이런 조치는 1996년 말까지 이뤄졌다.
이후 1997년부터 석유 제품 가격 자유화가 이뤄졌다. 석유 제품 가격을 국제 시세에 연동해 정유사가 자유롭게 정하도록 한 것이다. 석유사업법도 2005년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으로 이름을 바꿨다. 정부 관계자는 “2005년 법 이름을 바꾼 뒤에는 석유 판매 가격 최고액 결정·고시를 발동한 사례가 없다”고 말했다.
1994년 2월 상공자원부(산업통상부의 전신) 장관이 고시한 '국내 석유류 제품 최고 판매가격'의 내용. |
◇ “법 조항 모호한 개념 많고 정부의 가격 개입은 예외적”
최근 중동 전쟁을 계기로 정부가 석유 판매 가격 최고액 결정·고시 제도 적용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상당 기간 사실상 사문화돼 있던 법 조항을 꺼내든 셈이다.
전문가들은 “실제 발동하려면 몇 가지 걸림돌이 있다”고 지적한다. 우선 법 조항 자체가 모호해 발동 요건이 갖춰진 것인지 여부를 판단하기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
‘석유 수입·판매 가격이 현저하게 등락한 경우’에 최고액 설정이 가능한데 기존보다 얼마나 가격이 올라야 현저했다고 볼 수 있는지가 분명하지 않다. 또 ‘국민 생활 안정과 국민 경제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될 때’ 최고액 고시를 할 수 있는데 추상적 조항이라 현재 상황이 여기에 해당하는지를 단정하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
미국과 이란 전쟁 여파로 국제 유가가 상승하고 있는 지난 4일 서울 서초구 경부고속도록 만남의광장 주유소에서 시민들이 주유를 하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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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적으로는 시장 경제 시스템에서 가격을 정부가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 강하다. 김재경 에너지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번처럼 정부가 가격을 직접 통제하려는 조치는 예외적이라고 볼 수 있다”면서 “과거 국제 유가가 크게 오를 때 정부가 유류세 탄력세율 인하 등 다양한 시도를 했지만 시장의 자율적인 기능과 권한을 가능한 존중하면서 최소한, 간접적인 개입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 위원은 “만약 정부가 최고액 결정·고시를 실제로 발동한다면 좋지 않은 선례가 될 수 있다”면서 “직접적인 시장 개입이 빈번해지는 것이 아닐지 우려된다”고 했다.
세종=박소정 기자(soj@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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