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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07 (토)

    [기고] 누가 '민원사주'의 증거를 지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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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타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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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 중 확인된 증거나 진술자료로는 A(류희림)가 사적이해관계자 등에게 이 건 민원을 사주한 행위가 있었다거나 없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된다.(감사원 ‘민원사주’ 감사보고서 23페이지)”

    감사원이 지난달 4일 민원사주 사건에 대한 감사결과를 발표했다. 작년 6월 감사를 시작한 이후 7개월 만에 ‘민원사주를 단정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감사원은 어떤 증거와 진술자료를 확인하고 이러한 결론을 내렸을까?

    핸드폰은 분실, PC는 초기화, 단톡방은 삭제... 사라진 증거들
    민원사주 사건은 2023년 9월 당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 위원장이었던 류희림이 윤석열 정권에 비판적인 보도를 한 방송사들을 징계하기 위해 가족과 지인들에게 민원을 넣도록 사주하고 본인이 위원장으로서 긴급심의를 주도하여 2023년 11월 방송사들에 최고 수위의 징계인 과징금을 부과했다는 의혹에서 시작됐다. 2023년 말 방심위 직원들이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에 신고하고 뉴스타파, MBC 등 언론이 보도하여 세상에 알려졌다. 그러나 류희림은 민원사주 의혹을 부인하고 오히려 직원들을 민원인 정보 유출로 수사기관에 고발했다. 이에 따라 류희림과 직원들에 대한 수사가 동시에 2년 여 넘게 진행 중이다.

    감사원은 먼저 전체 민원인들 중 25명을 조사대상으로 선정하고 류희림과의 관계, 민원내용을 분석했다. 민원인들은 류희림의 아들, 동생, 처제, 친조카(누나의 자녀), 동서(처제의 남편) 등 가족과 전 직장 관련자 등 지인들이었다. 이들이 넣은 민원은 특정 3일 동안 집중되었으며 민원의 내용뿐 아니라 분량과 문법적 오류, 특징적 문언의 표현까지 유사하여 민원사주 정황이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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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희림 전 방심위원장의 민원사주 의혹이 세상에 알려진 지 2년여만에 나온 감사원 감사보고서 표지.


    감사원은 류희림이 민원인들에게 민원신청을 사주하였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통신기록(통화내역, 문자 메시지, 대화방 내용 등)과 PC 디지털포렌식을 실시했다. 그러나 통신사실확인자료의 보관기간은 12개월로 통신사 등을 통한 객관적 확인이 불가능했고 민원인들은 이미 휴대전화를 교체하거나 대화방 등을 삭제한 상태였다. 류희림 역시 휴대전화를 두 차례 분실하여 관련 자료가 없다고 답변하였으며, 사무실 PC도 초기화해 디지털포렌식으로도 자료 확인이 불가능했다.

    조사는 대상 민원인 25명 중 협조에 응한 13명에 대해서만, 대부분 서면 위주로 실시되었다. 그럼에도 조사가 반드시 필요한 민원인들이 제외되었는데, 특히 뉴스타파의 최초 보도에서 ‘형 후배가 민원을 넣어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한 류희림의 동생과 ‘사무총장님(류희림의 동생)이 내용을 주면서 부탁해서 민원을 넣었다’고 말한 류희림의 동생이 운영하는 직장의 직원들 등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응답한 민원인 중 일부는 일시에 거의 같은 내용의 민원을 넣게 된 정황에 대해, ‘인터넷 게시판을 참고’하였다거나 ‘어떤 단체대화방에 초대되어 관련 내용을 보고 참고’하였다며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였다. 감사원은 민원인이 이미 해당 대화방에서 나온 상태라 더 이상 확인할 수 없었다고 손을 놓았다.

    애초에 확인한 증거나 진술자료 자체가 거의 없었으므로, “감사 중 확인된 증거나 진술자료로는 (중략)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된다”는 감사원의 결론은 “감사 중 증거나 진술자료를 확보하지 못하여 판단이 불가능하다”로 바뀌었어야 했다.

    감사원은 왜 민원사주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나
    제대로 된 증거와 진술을 확보하지 못하고도 마치 정당한 감사결과를 도출한 것처럼 포장한 감사원에 면죄부를 줄 생각은 없다. 그러나 감사원이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근본적 이유에 대해서는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감사원이 감사를 시작한 2025년 6월은 민원사주 사건이 국민권익위원회에 신고 된 후 무려 1년 6개월이 지난 때였다. 통신기록과 PC자료 등을 확보하기에는 이미 늦은 시점이었던 것이다.

    증거 확보 시기를 놓친 책임은 사건 신고 초기에 정권의 눈치를 보며 늑장 대응한 국민권익위원회와 적반하장의 수사를 진행한 경찰에 있다.

    신고 485일이 지나서야 감사원으로 사건을 이첩한 국민권익위원회
    방심위 직원들은 2023년 12월 23일 권익위에 류희림을 이해충돌방지법 위반과 공직자 행동강령 위반으로 신고했다. 민원내역을 통한 민원사주 정황이 뚜렷했고 언론취재를 통해 민원인들과 류희림의 관계가 드러났으므로 국민권익위원회 조사가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기대했으나, 현실은 크게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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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희림 민원사주 의혹이 국민권익위원회 신고된 지 485일만에 권익위는 감사원으로 사건을 이첩했다.


    권익위는 신고내용이 두 부서(이해충돌 담당부서와 행동강령 담당부서)에 걸쳐있다는 이유로 부서 배정에만 한 달 여를 허비했다. 그리고 두 달이 지나서야 민원인들 중 의심 가는 명단과 관계, 검색자료를 정리해달라는 요청을 해왔다. 신속한 실지 조사를 통해 민원내역을 확보하고 류희림과 민원인들에 대한 조사를 해야할 권익위가 오히려 신고자에게 뒤늦은 자료제출 요구를 하며 시간만 지연하고 있던 것이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난 2024년 4월말에야 권익위는 방심위로 조사를 나왔는데, 그마저도 본격적인 실지 조사가 아닌 몇몇 직원들에 대해 진술을 확인하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2024년 7월, 조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권익위는 당사자 간 진술이 엇갈려 위반 여부를 판단할 수 없으므로 피신고자인 류희림이 기관장으로 있는 방심위에 ‘류희림에 대한 셀프 조사’를 맡기고, 오히려 공익신고자를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이첩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7개월간 권익위가 류희림을 조사하기는커녕 류희림이 가족관계증명서 제출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민원인이 그의 가족인지 조차 확인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됐다.

    방심위의 셀프 조사는 그로부터 다시 7개월을 끌어 2025년 2월 역시 ‘알 수 없다’는 결과를 내놨다. 방심위 감사실 역시 류희림의 가족관계증명서를 감히 확인하지 못했고, 엇갈리는 진술에 대해서도 비교하거나 대질하여 검증하지 않았다. 우연하게도(!) 감사결과 발표 직후 감사실장은 승진에 필요한 최소연한을 채웠고 류희림은 그를 1급으로 승진시켰다.

    권익위는 방심위의 셀프 조사 결과를 신고자에게 통보하며 사건 종결 절차를 밟으려 하였으나, 그간 류희림에게 유리한 증언을 해온 방심위 간부가 양심선언을 하며 국회에서 증언을 번복하자 입장을 유보했다. 이후 신고자들의 재신고와 국회의 감사원 감사요구안 결의가 이어지자, 2025년 4월 21일 마침내 위반 소지가 있다며 감사원으로 신고를 이첩했다. 2023년 12월 23일 첫 신고가 이뤄진지 무려 485일만이다.

    내부고발한 직원들 수사하느라 류희림 통신기록조차 확보하지 못한 경찰
    민원사주 언론보도 직후인 2024년 1월, 경찰 수사는 두 갈래로 나뉘어 진행됐다. 류희림 대상 민원사주(업무방해) 수사는 양천경찰서가, 내부고발한 직원들 대상 민원인 정보 유출 혐의 수사는 서울경찰청 반부패수사대가 맡았다. 류희림에 대한 수사가 지지부진하며 일선 경찰서의 수사관 한명이 전담했던 데 반해, 방심위 공익신고 직원들에 대한 서울경찰청 반부패수사대의 수사는 신속하게 대규모로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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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1월 15일,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는 공익신고자의 개인정보 유출 혐의로 방심위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서울경찰청은 수사 착수 열흘 만인 2024년 1월 15일 방심위 전산팀과 민원팀 등을 압수수색하여 관련 전산기록과 민원자료를 확보했다. 이어 직원들의 휴대전화 통신내역 조회와 참고인 조사를 거쳐 8개월 뒤인 2024년 9월 10일, 새벽부터 수사관 수십 명을 투입하여 직원 3명의 신체와 자택, 사무실, 포털사이트 계정 등을 추가로 압수수색했다. 이후 수개월에 걸친 개인 휴대전화와 PC의 전자정보 등에 대한 탐색 작업을 통해 수십만 건에 이르는 SNS 메시지와 개인 대화 내용을 모두 살펴보고 선별하여 증거로 압수했다. 이 과정에서 직원들은 수십 차례 경찰에 출석해야했고 2025년 2월말 진행된 피의자 조사에서는 개인별로 하루 12시간 이상 조사를 받아야했다.

    서울경찰청은 류희림 위원장에 대해 개인적 불만을 가진 다수 직원들이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계획적으로 공모하고 외부세력과 연계하여 민원인 정보 유출을 실행했다는 거창한 가설을 세우고 1년 6개월 여 전방위적인 수사를 진행했으나, 2025년 7월 개인정보 유출 혐의로는 결국 직원 2명만을 서울중앙지검에 송치하는데 그쳤다.

    부당하게 개인 압수수색을 당한 직원 1명은 수개월 간의 강도 높은 수사를 감내한 이후에야 ‘그동안 수사에 협조하여 주신 것에 깊이 감사드립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불송치(혐의없음) 결정서를 받아들 수 있었다.

    반면 류희림에 대한 수사를 맡은 양천경찰서는 수사 착수 이후 7개월이 지난 2024년 8월 30일에야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으나, 그마저도 검찰이 기각하여 실행되지 않았다. 사주 민원으로 의심되는 민원들이 2023년 9월 4일부터 접수되었고 통신사의 통신기록 보관기간이 1년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미 증거가 사라지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사주 받은 것으로 의심된 민원을 넣은 사람들과 류희림 사이의 전화나 문자메시지 수발신 내역 등을 확인하기 위한 통신영장은 아예 신청조차 되지 않았다. 양천경찰서는 이후 두 차례 더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으나 역시 검찰에 의해 기각되었고, 그동안 류희림은 휴대전화를 두 번이나 교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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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양천경찰서는 류희림 수사 1년 7개월만에 민원 사주 의혹에 대해 '혐의 없음'으로 불송치 처분했다.


    그렇게 류희림에 대해 별다른 강제 수사 없이 두 차례 출석 조사(2025년 1월, 4월)만으로 수사를 끝낸 양천경찰서는 2025년 7월, 사주된 민원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아래와 같은 논리로 류희림의 민원사주(업무방해)에 대해 ‘혐의 없음’으로 불송치 처분했다.

    ‘사주된 민원이라 하더라도 사주 받은 사람이 사주한 사람의 의견에 동조해 민원을 낸 것이라면 진정한 민원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민원사주 재수사에 나선 경찰은 진실을 밝힐 수 있을까
    민원사주 의혹이 제기된 지 어느새 2년 3개월이 지났다.

    의혹 당사자인 류희림은 2024년 한 차례의 연임을 거쳐 2025년 국회의 감사요구안이 결의되자 사표를 쓰고 도망치듯 위원회를 떠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연인이 되었다. 내부고발한 직원들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검찰에 송치된 상태에서 검사의 기소 결정 여부를 기다리고 있다.

    그동안 민원사주 혐의에 대한 권익위 조사, 방심위 자체 조사, 양천경찰서 수사, 감사원 감사가 있었으나, 민원사주의 뚜렷한 정황에도 불구하고 어느 기관도 ‘단정할 수 없다’는 것 외에는 결론을 내지 못했다. 각 기관들이 정권의 눈치를 보며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방기하는 사이 관련인들의 통신기록과 휴대전화 등 핵심 증거들은 이미 사라졌거나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그러는 사이 류희림의 망령은 죽지도 않고 다시 방심위를 덮치고 있다. 방송미디어통신심의위원회의 새로운 상임위원으로 김우석 전 위원이 추천(국민의힘)되었는데, 김 전 위원은 류희림과 함께 사주된 민원에 근거하여 방송사들에게 과징금 부과를 결정하고, ‘밀실 호선’에 가담하는 등 류희림을 호위하는데 앞장선 인물이다.

    만약 국민권익위원회와 경찰이 민원사주 사건 신고 초기에 제대로 된 조사와 수사로 신속하게 핵심 증거와 진술을 확보하여 진실을 밝혔다면 어땠을까? 아직 서울경찰청의 재수사가 남아있다. 만시지탄이지만 이제라도 진실을 밝힐 수 있기를 다시 한 번 바라 본다.

    뉴스타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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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탁동삼(방송미디어통신심의위원회 연구위원, ‘민원사주’ 공익신고자)


    기고. 탁동삼(방송미디어통신심의위원회 연구위원, ‘민원사주’ 공익신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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