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어다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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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나 보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물줄기 낮은 숨 몰아쉬며 잠에서 깨는 걸 보니. 이 비 그치면 강가의 풀빛 점점 짙어지고, 물 위를 스치는 바람은 흙냄새 짙게 품은 아지랑이 흔들어 깨우겠지. 그러면 먼 바다로 나간 은어떼도 다시 돌아올까. 따뜻한 햇살 받아 보석처럼 반짝이는 은어다리에 서서 저 강물 힘차게 거슬러 오르는 은어가 싱그러운 봄님 몰고 오는 풍경을 상상한다.
세계일보 여행면. 편집=김효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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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여행면. 편집=김효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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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맞으러 은어다리 가볼까
비 내린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메마른 대지 촉촉하게 적시며. 아직 꽃샘추위 남았겠지만 하루가 다르게 기온이 오르는 걸 보니 계절의 바뀜이 피부에 와 닿는다. 서둘러 오는 봄 내음 즐기러 차를 몰아 경북 울진으로 달린다. 울진군 근남면 수산리 은어다리인증센터 주차장에 내리자 남대천을 가로 지르는 아름다운 은어다리가 단숨에 눈길을 사로잡는다. 진짜 은어다리다. 하천을 가로지르는 다리 양쪽 끝에 커다란 은어 두 마리가 서로 마주 보고 섰다. 몸통을 휘저으며 강을 거슬러 오르는 역동적인 모습의 은어 조형물의 소재는 스테인리스 스틸로, 따뜻한 햇살을 받아 진짜 은어처럼 반짝인다. 길이 243m, 폭 3m 은어다리를 남대천에 만든 이유가 있다. 우리나라 최대 은어 서식지이기 때문이다. 한국, 일본, 러시아 연안 등 북서태평양에 주로 분포하는 은어는 물이 깨끗하고 산소가 풍부한 강을 좋아하는 바다빙어목 어류. 길이 약 15cm로 등 쪽은 어두운 청록색이지만 배 쪽은 은빛이라 은어라 불린다.
은어다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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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어를 기다리는 마음은 곧 무르익을 봄을 기다리는 일이다. 수박향이 나는 은어는 9월쯤 강에서 태어나자마자 동해로 나가 성장하고 겨울을 지나 3∼5월이면 산란을 위해 태어난 곳으로 회귀하기 때문이다. 그 눈부신 생명력이 물길을 가를 때 비로소 산천에 초록의 온기가 번지고 꽃봉오리들은 하나둘 입을 열기 시작한다. 그런 은어를 제대로 만날 수 있는 곳이 은어다리다. 봄에 다리에 오르면 찬란한 햇살을 받아 은빛 비늘을 보석처럼 반짝이는 은어가 떼를 지어 강물 위로 마구 튀어 오르며 거센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장관이 펼쳐진다.
은어에 얽힌 재미있는 얘기가 전해진다. 은어는 돌에 붙은 이끼를 주식으로 삼는데 한여름인 7~8월에는 장마와 큰비가 자주 내려 강물이 불어나고 물살이 세지면서 이끼들이 씻겨 내려가거나 흙탕물에 덮인다. 이때 은어가 많이 굶어 죽어 ‘칠팔월 은어 굶듯’이란 속담도 생겼다. 보행 및 자전거 전용 교량인 은어다리는 조형물 안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도록 만들었다. 저녁노을이 내리고 땅거미가 지면 화려한 LED 조명으로 빛나며 낮과는 전혀 다른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5초마다 색이 바뀌며 은어 조형물은 남대천에 그림자를 드리워 낭만적인 여행을 선사한다.
은어다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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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어다리 근처에는 여행할 곳이 많다. 20만평의 왕피천 생태공원에는 유전자보호림으로 지정된 수령 200년 이상의 소나무 천 그루가 짙은 녹음을 만들어 놓았다. 2005년, 2009년 울진세계친환경농업엑스포가 열린 뒤 지역 랜드마크로 자리 잡은 생태공원은 잔디밭, 꽃정원, 산책로가 조성돼 계절마다 변화하는 풍경을 즐기기 좋다. 아름다운 왕피천 위를 나르는 왕피천케이블카도 추천한다. 왕피천공원정류장∼해맞이공원정류장 왕복 1.43km를 운행하며 정상에서 망양해수욕장 남쪽 바닷가 언덕에 서 있는 관동8경 망양정(望洋亭)을 만난다. 정자에 오르자 고풍스러운 기둥 사이로 펼쳐지는 울진 바다가 가슴을 시원하게 열어준다. 조선 숙종이 관동8경 중 망양정 경치가 최고라며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 현판을 하사했다.
국립해양과학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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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즐기는 바닷속 모험
솔숲이 아름다운 후정해변을 끼고 있는 죽변면 국립해양과학관은 아이들과 여행하기 좋다. 해류, 심해 생물, 해양 환경 등을 입체적으로 배우고 체험하는 상설전시관과 바다를 테마로 한 야외시설 파도소리놀이터를 갖춰 가족 단위 방문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입구로 들어서면 야외광장에 설치된 다양한 해양생물 조형물이 여행자를 반긴다. 한국 귀신고래를 형상화한 분수대를 시작으로 버려진 양은 냄비로 만든 우락부락한 심해어 바이퍼피시, 거대한 산호의 형상을 수천 개의 철 조각으로 이어 붙여 완성한 레이스산호, 고래 형태를 단순화된 작은 조각들로 나눠 입체적으로 구성한 소워비부리고래, 문어와 닮은 심해 생물 뱀파이어오징어 등으로 꾸며져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바닷속전망대 가는 바다마중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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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의 하이라이트는 별도의 장비 없이 수심 7m 아래 바닷속을 직접 관찰하는 바닷속전망대. 과학관에서 전망대까지 이어지는 길이 393m 바다마중길에 올라서자 선명하고 강렬한 코발트블루와 한적한 후정해변이 환상적으로 어우러지는 예쁜 수채화를 만난다. 수중전망대로 들어서자 마침 물이 아주 맑아 연산호류, 바닷물고기, 해조류가 또렷하게 보인다. 용치놀래기, 황놀래기, 쥐치, 말쥐치, 멍게, 전복 등 다양하다. 2층 전망대에는 망원경이 설치돼 있다. 죽변은 우리나라에서 직선거리로 독도와 가장 가까운 곳이라 날이 좋은 날 독도가 아주 선명하게 보인다.
붉은대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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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 별미 대게 먹어 봤나요
울진 여행에서 빠뜨리면 섭섭한 음식이 하나 있다. 바로 울진 대게와 붉은 대게다. 나흘 동안 진행된 대게 축제가 지난 2일 끝났지만 통통하게 살이 오른 대게는 3월까지 즐길 수 있다. 후포항으로 가면 된다. 오전 7시. 후포항으로 나서자 밤새 조업을 마치고 돌아온 고깃배들이 싱싱한 울진 대게와 붉은 대게를 쏟아내고 있다. 오전 8시가 되자 위판장에서 경매가 시작된다. 도매·소매상, 식당 주인장이 서로 좋은 가격에 최고 품질의 대게를 차지하려고 치열한 눈치싸움을 벌이는 덕분에 활기가 넘친다.
맛과 영양이 풍부한 울진 대게와 쫄깃하고 담백한 풍미가 뛰어난 붉은 대게는 임금님 수라상에 올랐을 정도로 별미 중의 별미. 찬바람이 불어야 속이 차기 시작하는데 보통 11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제철이다. 하지만 살이 제대로 통통하게 오른 대게는 2~3월에 맛볼 수 있다. 이런 대게의 원조마을은 울진으로 생산량 전국 1위다. 실제 동국여지승람과 대동지지에는 고려시대부터 대게가 울진의 특산물로 자리 잡았다고 소개된다. 조선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이산해(1539~1609)는 울진에 귀양 왔다가 대게가 많다는 뜻에서 ‘게 해’자를 써 ‘해포(蟹浦)’라는 이름을 지었다. 울진 대게의 고향은 후포항에서 동쪽으로 23㎞ 떨어진 왕돌초 일대다.
죽변우성식당 대구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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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포항에는 식당들이 즐비해 제철 대게를 맛있게 즐길 수 있다. 왕돌회수산으로 들어서자 대게 찌는 고소한 냄새가 식욕을 강하게 자극한다. 껍질만 빼고 모두 먹을 수 있는 대게는 찜통에 10~15분 찌기만 하면 끝이다. 다리 살을 쉽게 쏙쏙 빼먹는 비법이 있다. 마디 양쪽 끝을 전용 가위로 절반 정도만 자른 뒤 부러뜨려 살살 당기면 살이 통째로 뽑혀 나온다. 살이 통통하게 제대로 오른 대게 살을 입으로 밀어 넣자 후포항 바다가 통째로 밀려들며 잠자던 미각세포가 기지개를 켠다. 게 뚜껑에 갓 지은 밥을 올려 쓱쓱 비며 먹으면 밥 한 공기가 순식간이 비워진다. 붉은 대게는 울진 대게와 맛이 좀 다르다. 생김새는 비슷하지만 몸 전체가 짙은 주홍색을 띤다. 주로 심해에서 잡히며 껍질이 단단하고 짠맛이 강해 대게보다 가격이 훨씬 높다. 또 울진 대게보다 살이 오르는 기간이 더 길어 늦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도 즐길 수 있다. 이 식당에서는 단맛이 제대로 오른 강도다리회도 즐길 수 있다.
경남식당 산채도토리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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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끼고 있는 울진은 해산물이 넘쳐나는 미식여행의 보고다. 후포항 호암수산과 죽변항 죽변우성식당에선 술꾼들의 소울푸드 물곰(꼼치)이 기다린다. 요즘 물곰이 잘 안 잡혀 몸값이 귀해졌다. 뽀얀 물곰 속살은 흐물흐물해 씹을 것도 없이 입속으로 후르르 흘러 들어가기에 과음으로 속이 더부룩할 때 특히 진가를 발휘한다. 죽변우성식당에서는 살이 제대로 오른 대구탕도 만난다. 담백한 감칠맛과 짭조름한 바다향이 한 몸처럼 어우러져 미식여행의 정점을 찍는다. 근남면 성류굴 인근 경남식당에선 봄 내음 가득한 산채도토리묵이 입맛을 돋운다. 사실 이곳은 은어 전문식당. 은어회, 은어구이, 은어튀김, 은어매운탕 등 은어로 만든 모든 요리를 한자리에서 즐길 수 있다.
울진=글·사진 최현태 선임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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