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원전이 기술 개발 ‘롤 모델’로 삼고 있는 프랑스 원전이 재생에너지 증가로 인해 심각한 설비 문제에 직면한 사실이 공식 보고서를 통해 확인됐다. 프랑스 또한 에너지전환이라는 세계적 흐름에 맞춰 재생에너지를 늘리고 있지만, 그 여파로 전력 과잉공급 위기와 원전의 출력조절이 급증하면서 관련 설비 유지·보수에 경고등이 켜진 것이다. 프랑스 전력 당국은 수천억 원대의 비용이 들 것으로 추산하고 있으며 일각에서는 원전 셧다운으로 인한 전력 부족 사태 우려도 나오고 있다. 세계 최고의 출력조절 기술을 확보하고 있다는 프랑스조차 원전과 재생에너지 충돌 부작용이 급증하는 상황에서 원전과 재생에너지 동시 확대를 추진 중인 우리 정부의 방침에 의문이 제기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재생에너지와 원전 동시 확대하겠다는 한국 정부.."원전 출력 조절로 가능"
지난 1월 26일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정해진 신규원전 2기 건설을 계획대로 추진하고자 한다”며 윤석열 정부의 대형원전 추가 계획을 계승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앞서 뉴스타파가 보도한 것처럼 재생에너지와 대형 원전을 동시에 늘릴 경우 전력 과잉공급으로 인한 정전 위기는 커질 수 밖에 없다.
전기는 공급이 부족해도 정전이 발생하지만, 과잉 공급일 때도 정전이 발생한다. 때문에 안정적인 전력망 운영을 위해서는 전력 수요와 공급을 일치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냉난방 수요가 적어 전력 수요가 떨어지는 봄 가을철 낮시간, 태양광을 비롯한 재생에너지의 발전량이 급격히 증가하면 가스발전소나 석탄발전소는 발전량을 줄여서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맞춘다. 그러나 원전은 전력 수요가 늘거나 줄어도 여기에 맞춰 발전량을 쉽게 조절할 수 없는 ‘경직성’ 전원이다. 전력 수요가 뚝 떨어지는 상황에서 가스와 석탄발전소가 출력을 줄인다 해도 대형 원전이 그대로 돌아가고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증가할 경우 과잉 공급에 따른 정전 위기가 커질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이 같은 근본적인 제약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명확한 대안도 없이 재생에너지의 급격한 확대와 함께 신규 대형 원전 2기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가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은 ‘원전의 출력조절 기술 향상이 몇 년 안에 가능하다’는 우리 원전 업계의 주장이다. 핵연료와 설비의 불안정성 문제 때문에 원전의 출력을 빠르고 유연하게 줄였다 늘리는 것이 극도로 어려운 것은 맞지만, 기술 향상으로 돌파할 수 있다는 취지다. 이재명 정부가 신규 대형원전 건설 추진 결정에 앞서 지난 1월 개최한 ‘바람직한 에너지믹스 2차 정책토론회(2차 토론회)’에서 신호철 한국수력원자력연구원장은 “원자력발전소의 출력을 유연하게 조절하는 출력조절 기술을 향상 시키면 원전과 재생에너지가 공존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 원전 기술 개발의 목표, 프랑스 원전
출력조절 기술의 향상을 말할 때 한국의 원전 전문가들이 빼 놓지 않고 언급하는 성공 사례가 있다. 바로 프랑스 원전이다. 실제로 2차 토론회에서 한수원 연구원이 목표치로 제시한 출력조절 기술개발 8대 과제의 목표치는 모두 프랑스 원전을 기준 삼았다. 3가지는 프랑스 수준에 도달했지만 5가지는 아직 개발 중이거나 향후 개발이 필요하다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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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 한수원연구원장이 지난 1월 개최된 ‘바람직한 에너지믹스 2차 정책토론회’에서 프랑스 대비 국내 원전의 기술 개발 현황을 발표하고 있다.
우리 원전 업계는 재생에너지 확대를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점차 그 존립마저 위협받게 될 처지에 놓여 있다. 때문에 원전 설비 규모 유지 및 확대를 위해 프랑스 수준의 출력 조절기술을 확보하는 것은 사활이 걸린 목표로 부상하고 있다.
그렇다면 세계 최고 수준의 출력조절 기술을 확보한 프랑스 원전은 아무 문제가 없는 걸까.
프랑스 전력공사가 밝힌 원전 ‘속 사정’
뉴스타파는 프랑스의 원자력 발전소 역시 재생에너지 증가 때문에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는 사실을 프랑스 전력 당국의 공식 보고서를 통해 확인했다.
프랑스 원전 57기를 독점 운영하고 있는 프랑스 전력공사(EDF)는 지난 2월 16일 ‘(원전) 출력 조절에 관한 연구’라는 제목의 60페이지 분량 보고서를 공개했다. 서두에는 “원전의 출력 조절은 과거에도 있었지만, 최근 그 발생 횟수와 강도가 매우 크게 증가했을 뿐만 아니라, 그 양상 또한 변화하고 있다”며 보고서 작성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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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전력공사(EDF)가 지난 2월 16일 발행한 ‘(원전) 출력조절에 관한 연구’ 보고서 표지
보고서는 1990년대 초에도 막대한 양의 원전 출력조절이 있었지만 최근에 벌어진 원전 출력 조절과는 그 양상이 전혀 달랐다고 밝혔다.
(90년대 초에는) 발전 용량의 급격한 증가에 비해 전력 소비는 상대적으로 느리게 진전되었으며, 이는 결과적으로 '전력 과잉' 상황과 원자력 발전소의 대규모 출력 조절을 초래했다. 이러한 출력 조절량은 1994년에 50 테라와트시를 넘어서며 역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이후 전력 수요가 늘고 남는 전기를 수출하면서 상황이 해결되는 듯 했지만 2024년부터 심각한 변화가 생겼다. 재생에너지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 프랑스 전력공사(EDF)가 지난 2월 16일 발행한 ‘(원전) 출럭조절에 관한 연구’ 보고서 내용
2024년은 원전 출력 조절에 있어 전환점이 되는 해이다.재생에너지 비중이 미미했던 2020년에는 수요가 줄어드는 심야 시간에만 원전의 출력을 감발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러나 재생에너지가 늘어난 2024년부터는 심야 시간은 물론 태양광 발전소가 활발하게 가동하는 낮 시간 대에 더 많은 원전 가동을 줄여야 하는 상황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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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내 재생에너지 발전이 지속적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최근 5년 동안 해마다 풍력은 1에서 2기가와트씩, 태양광은 연간 3에서 5기가와트씩 설비용량이 추가됐다.
- 프랑스 전력공사(EDF)가 지난 2월 16일 발행한 ‘(원전) 출럭조절에 관한 연구’ 보고서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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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전력공사(EDF)가 분석한 2000년과 2024년의 하루 중 시간대별 원전 출력 조절량 변화
CP0 및 CP1 모델 원자로 터빈과 관련하여, 약 14억 유로를 투입해 13개 축의 저압부를 교체하면 출력 조절이 해당 원자로 설비 마모에 미치는 확실한 영향을 상쇄할 수 있을 것이다.원전 설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터빈 관련 교체 비용만 대략 22억 유로에서 24억 유로 (3,700억 원에서 4,100억 원) 이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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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P2 모델의 터빈 8기 교체는 현재 단기적으로는 고려되지 않고 있다. 만약 원자력 발전소의 출력 조절로 인해 상황이 바뀔 경우, 현재 정확한 추산치는 없으나 예상 비용은 8억 유로에서 10억 유로 사이로 추산될 수 있다.
- 프랑스 전력공사(EDF)가 지난 2월 16일 발행한 ‘(원전) 출럭조절에 관한 연구’ 보고서 내용
이같은 천문학적 유지 보수 비용도 문제지만 원전 설비 문제는 심각한 에너지 부족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석광훈 에너지전환포험 전문위원은 “과거 프랑스 원전 설비에는 이른바 응력부식균열이라는 문제가 발생하면서 무려 절반에 달하는 원전이 2022년 내내 가동을 중단한 사례가 있다”며 “프랑스의 원전 무더기 가동 중단 사태 때문에 유럽 전기요금이 전체적으로 폭등하게 되는 경험을 한 바 있다”고 지적했다. 원전의 잦은 출력 감발에 따른 설비가 에너지 안보 문제로까지 확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원전 문제 커지자 재생에너지 목표 축소한 프랑스
프랑스 정부는 공교롭게도 프랑스 전력공사의 원전 출력 조절 보고서가 나오기 직전인 지난 2월 12일 에너지 계획 최종안을 발표하면서 재생에너지 확대 목표를 대폭 축소했다. 공식적으로는 전력 수요 예상치가 당초보다 낮아진 점을 이유로 들었지만, 프랑스 유력 언론은 프랑스 전력공사가 겪고 있는 원전의 출력 조절 문제를 그 배경으로 지목하고 있다. 로이터 보도를 인용한 프랑스24는 “재생에너지 목표 축소는 57기의 원자로를 운영하는 EDF를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유럽에서 풍력과 태양광 발전량이 풍부해지면서 전력 가격이 하락하고 원전 출력이 감소하자, EDF(프랑스 전력공사)는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고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프랑스전력공사 EDF의 고위 간부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단기적으로는 프랑스의 재생에너지 도입 속도를 조정해야 한다”는 노골적인 주장을 내 놓기도 했다.
결국 프랑스 전력 당국의 공식 보고서와 현지 언론의 보도를 종합하면, 재생에너지가 늘어나면서 원자력발전소의 출력 조절이 급증하고 있고 그로 인한 비용이 수천억원대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원전 진영에서는 재생에너지 확대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고 주장이 나왔고 프랑스 정부는 재생에너지 확대 목표를 축소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한국 원전업계가 롤모델로 꼽고 있는 세계 최고이 원전 선진국 프랑스의 현실이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대규모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동시에 늘리는 계획을 고수하고 있다.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은 “우리나라는 주변국과 전기를 주고 받을 수 없는 고립 계통이기 때문에 앞으로 원전 뭐 서너 개만 더 건설해도 프랑스랑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될 수 있다”며 “결국 재생에너지를 더 늘릴 수 없는 상황이 된다”고 경고했다.
지난 3월 5일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유가 문제 또는 원유 조달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 반복될 수 있는 일이고 과거에도 반복됐던 일”이라며 “이번 기회에 재생 에너지로 전환을 좀 신속하게 대대적으로 좀 하는게 어떨까 싶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프랑스 사례처럼 원전이 늘어날수록 재생에너지 확대가 어려워질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동시에 늘린다는 정부의 계획이 과연 현실성이 있는지 여전히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취재 조원일 / 촬영 김희주 / 편집 박서영 / CG 이미예 / 디자인 이도현 / 출판 허현재
뉴스타파 조원일 callme11@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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