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설화 ‘갤러리 EOS’ 선임 큐레이터는 감각을 지식보다, 질문을 정답보다 더 중요하게 여긴다. ER 이코노믹리뷰 연재 칼럼 ‘미술관 가는 길을 찾다’는 그가 현장에서 매일 마주하는 경험을 바탕으로, 관람객이 미술관을 더 쉽게 찾는 길을 안내하는 실용 가이드다. 미술 작품 앞에서 멈춰 선 순간부터 시작되는 감상법을 제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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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삶에서 '사랑'은 가장 강력한 동력입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동력이 멈추고 정적만 남았을 때, 즉 '이별'의 순간에 예술은 비로소 가장 처절하고도 찬란한 변곡점을 맞이하곤 합니다. 상실감은 작가의 붓끝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뒤틀어버립니다.
오늘은 예술가의 지독한 연애사가 어떻게 화풍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는지, 그 아프고도 아름다운 뒷이야기를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사랑이 갈아엎은 피카소의 세계관
예술과 연애사의 상관관계를 논할 때 파블로 피카소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의 붓끝이 흔들리고 화풍이 요동칠 때면, 그 곁에는 언제나 새로운 뮤즈가 있었습니다.
피카소의 첫 번째 연인이었던 페르낭드 올리비에와 함께 하던 시절, 피카소는 아직 인물의 형태를 완전히 해체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에바 구엘을 만난 이후에는 연인을 향한 애정마저 '입체적으로' 쪼개어 캔버스 위에 흩어놓기 시작합니다. 그는 입체주의의 절정에 다다랐고, 사랑의 형태조차 기하학적 파편으로 재구성했습니다.
가장 드라마틱한 변화는 도라 마르와의 관계에서 나타납니다. 사진작가였던 도라 마르는 피카소에게 정치적 의식을 심어준 예술적 동반자였습니다. 그녀는 피카소가 대작 〈게르니카〉를 작업하던 가장 치열한 시간을 곁에서 기록했습니다. 이 작품은 스페인 내전 당시 독일 공군이 바스크 지방의 게르니카를 폭격한 사건에 대한 분노에서 출발했습니다. 동시에 둘의 관계도 점점 격렬하고 고통스럽게 뒤틀려 갔습니다. 내적 갈등과 전쟁의 불안이 뒤섞여 탄생한 작품이 바로 〈우는 여인〉(1937)입니다. 거칠게 왜곡된 선과 뒤틀린 형태는 도라 마르와 격정적인 관계가 남긴 상처이자 걸작이었습니다.
실연이 낳은 마르셀 뒤샹의 혁명
개념미술의 아버지라 불리는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파격적인 행보 뒤에도 상실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뒤샹은 1917년 뉴욕의 한 전시회에 변기를 출품하며 미술계를 뒤흔들었습니다. 이른바 '레디메이드(Readymade)'의 탄생이었습니다. 예술가가 직접 만들지 않은 기성품을 예술로 선언한 이 파격적인 행보는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런데 뒤샹이 붓을 꺾고 이처럼 극단적인 방식을 선택한 데는 예술계에 대한 환멸과 함께, 1912년 한 해 동안 겪은 연이은 거절의 상처가 깊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야심차게 완성한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No.2〉가 입체파 동료들에게 조롱받았고, 심지어 믿었던 친형들마저 전시 철회를 권유했습니다. 자존심이 무너진 그해 여름, 설상가상으로 사랑마저 그를 외면합니다. 절친한 동료 프란시스 피카비아의 아내이자, 자신이 마음을 품었던 가브리엘 뷔페 피카비아에게 용기 내어 고백했지만 끝내 거절당하고 만 것입니다.
연인에게도, 가족에게도, 동료 화가들에게도 동시에 외면당한 뒤샹은 '눈을 즐겁게 하는 그림(망막적 예술)'을 버리기로 결심합니다. 철저히 고립된 그 고통의 시간 속에서, 현대 미술을 뒤바꿀 혁명적인 아이디어가 싹트고 있었습니다.
이별을 폭로한 트레이시 에민
현대에 올수록 예술가들은 이별을 점점 더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재료로 사용합니다.
트레이시 에민(Tracey Emin)은 연인과 헤어진 후 4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고 오직 보드카만 마시며 침대 속에 틀어박혀 있었습니다. 그 난장판 같은 침대를 그대로 전시장으로 옮겨온 것이 바로 <나의 침대(My Bed)>(1998)입니다.
담배꽁초, 얼룩진 시트, 빈 보드카 병뿐 아니라 사용한 콘돔, 생리혈이 묻은 속옷, 임신 테스트기까지, 누군가의 가장 사적인 이별의 잔해가 한 치의 가림도 없이 드러나 있습니다. 이별을 상징이나 비유로 포장하지 않고, 날것 그대로 '폭로'한 것이죠. 관람객은 더 이상 완성된 이미지를 멀찍이 감상하는 존재가 아닌 누군가의 처절한 이별 현장에 초대된 목격자가 되었습니다.
이별을 생중계한 아브라모비치
행위예술의 거장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와 울라이의 이별은 그 자체가 전설적인 작품이 되었습니다. 둘은 12년의 관계를 끝맺기 위해, 상징적인 퍼포먼스를 선택합니다. 각자 만리장성의 양 끝에서 출발해 90일 동안 걸어 서로를 향해 나아간 뒤, 중간 지점에서 마주 서서 짧게 포옹하고,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각자의 길로 돌아서는 작품 <연인들(The Lovers, 1988)>입니다.
이별 이후 아브라모비치의 작업은 '관계' 중심에서, 혼자 견뎌내는 '인내'와 '치유'의 예술로 옮겨갑니다. 2010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진행된 <예술가가 여기 있다>에서 그녀는 700시간 동안 의자에 앉아 관객들과 침묵의 시선을 나누었습니다. 그 수많은 관객 중 한 명으로 울라이가 나타났을 때, 두 사람은 말없이 손을 맞잡았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별 이후 22년 만의 재회였습니다. 그 순간은 이별이 한 예술가를 고독의 심연으로 데려갔다가, 다시 보편적인 인간애의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장면이었습니다.
이별은 창작의 힘
어떤 이들은 과거의 화풍을 고수하며 상실을 애도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주목한 예술가들은 과거와의 연속성을 끊어내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물론 변화를 이별 한 가지 요인으로만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수많은 외부 요인이 함께 작용합니다. 다만 그 복잡한 변화의 한가운데서, 이별은 특히 강렬하고도 개인적인 '기폭 장치'로 작동합니다.
왜 이별은 예술가들에게 그토록 강력한 변곡점이 되는 걸까요?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것은 그저 한 사람이 떠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쌓아 올렸던 세계가 금이 가고 무너져 내리는 경험이 되기 때문입니다. 연인과 함께였던 '우리'라는 정체성이 사라지면서, 예술가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본적 질문 앞에 다시 서게 됩니다. 이 혼란스러운 과도기에 많은 예술가들이 기존의 스타일을 버리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은, 단순히 아픔을 표현하기 위해서만이 아닌, 새로운 자아를 구축하기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입니다. 창작 행위 자체가 산산조각 난 자아를 다시 조립하는 과정이 되는 것입니다.
이별을 상상하세요
우리가 미술관에서 마주하는 거장들의 '새로운 시도' 뒤에는, 밤을 지새우며 이별의 아픔을 캔버스에 쏟아냈던 한 인간의 처절한 몸부림이 숨어 있습니다.
그들이 겪은 이별은 과거의 자기 자신과 결별이었으며, 더 깊은 심연으로 내려가 진짜 예술을 건져 올리는 통과의례였습니다. 다음에 색깔이 확 바뀐 어느 작가의 도록을 보게 된다면, 그의 삶에 어떤 폭풍 같은 이별이 지나갔는지 상상해 보세요. 그 아픔의 깊이가 곧 캔버스 위에 새겨진 변화의 폭이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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